[말글살이] 나만 빼고 / 김진해

한겨레 2021. 2. 28.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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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쟁이의 역설'은 논리학의 오랜 주제다.

참이라고도, 거짓이라고도 할 수 없는 발언.

강원도 출신인 내가 '강원도 사람들은 모두 거짓말쟁이래요'라 한다면, 이 말은 참말일까, 거짓말일까? 참말이라면 강원도 출신인 나도 거짓말쟁이이므로 이 말도 거짓말이 된다.

거짓말이라면 나는 참말만 하는 강원도 사람이 되므로 이 말은 참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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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글살이]

김진해|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거짓말쟁이의 역설’은 논리학의 오랜 주제다. 참이라고도, 거짓이라고도 할 수 없는 발언. 에피메니데스의 역설이라고도 한다. 강원도 출신인 내가 ‘강원도 사람들은 모두 거짓말쟁이래요’라 한다면, 이 말은 참말일까, 거짓말일까? 참말이라면 강원도 출신인 나도 거짓말쟁이이므로 이 말도 거짓말이 된다. 거짓말이라면 나는 참말만 하는 강원도 사람이 되므로 이 말은 참말이 된다. 헷갈린다고? 해맑도다, 그대의 두뇌.

자기 머리를 스스로 깎지 않는 사람의 머리만 깎아 주는 이발사가 있다. 그는 자기 머리를 깎을까, 못 깎을까? 자기 머리를 깎는다면, ‘머리를 스스로 깎지 않는 사람’만 깎아야 하는데 스스로 머리를 깎았으므로 깎으면 안 된다. 머리를 깎지 않는다면, 자기 머리를 스스로 깎지 않는 사람에 속하므로 머리를 깎아 주어야 한다. 장군이 ‘내 명령에 따르지 말라’고 명령하면, 따를까, 말까? 모르겠다고? 복되도다. 그대의 투명한 두뇌.

말장난으로 보이겠지만, 많이들 쓴다. 어른은 아이에게 ‘딴 사람 말 듣지 마!’ 남자친구는 애인에게 ‘남자는 다 늑대니 조심해.’ 운전자는 화를 내며 ‘오늘 왜 이리 차가 밀려!’

‘나만 빼고’ 생각하면 가능하다. 말하는 이는 말에서 분리된다. 듣는 이도 말하는 이를 빼고 이해하므로 꼬투리를 잡지 않는다. ‘당신도 딴 사람이고, 당신도 남자고, 당신도 차를 몰고 나왔다’며 정색하지 않는다. 안전한 이율배반.

우리는 ‘나만 빼고’ 식 말하기에 익숙해서 분열증에 걸리지 않는다. 부조리에 분노하되 공범인 우리도 함께 생각하면 좋겠다, 나만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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