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제재하며 "암살 배후" 왕세자는 제외..바이든의 '모순'
[경향신문]
미 ‘카슈끄지 살해 지시’ 기밀보고서 공개하면서도 ‘면죄부’
“대가 치르게 하겠다”더니…동맹관계 외교비용 득실 따진 듯
조 바이든 미국 정부가 사우디아라비아의 실권자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사진)의 반인권 범죄 혐의에 대해 사실상의 면죄부를 줬다. 무함마드 왕세자가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를 지시했다고 인정하면서도 제재 대상에서 그를 제외한 것이다. 동맹국과의 관계 악화를 우려해 이중잣대를 적용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미국 국가정보국(DNI)은 지난 26일(현지시간) 무함마드 왕세자가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카슈끄지 살해를 지시했다고 결론 내린 기밀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는 “왕세자는 카슈끄지를 왕국에 대한 위협으로 봤고 그를 침묵시키기 위한 폭력적 조치를 광범위하게 지원했다”고 평가했다. 특히 카슈끄지 살해팀에는 무함마드 왕세자의 왕실경호대 요원 7명이 포함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우디 요원들이 왕세자의 승인 없이 이러한 성격의 작전을 수행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결론 내렸다.
미국으로 망명해 사우디의 언론 탄압을 비판해온 카슈끄지는 2018년 10월 터키 이스탄불의 사우디 영사관에 결혼에 필요한 서류를 떼러 갔다가 살해됐다. 대낮에 영사관에서 벌어진 대담한 살해 작전에는 무함마드 왕세자의 국부펀드가 소유한 전용기 두 대와 왕세자의 왕실경호대 요원 등이 투입됐다. 미 정보기관은 무함마드 왕세자가 배후라고 결론 내렸지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보고서 공개를 거부했다. 보고서는 조 바이든 정부가 들어선 뒤에야 공개됐다.
미국 재무부는 보고서 공개 후 왕실경호대원 등 카슈끄지 암살에 관여한 사우디인 76명에게 경제 제재를 가하고 미국 비자 발급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작 암살을 지시한 무함마드 왕세자는 제재 대상에서 제외됐다. 알자지라는 “미국이 하급 공무원만 제재함으로써 무함마드 왕세자와 전 세계의 권위주의 지도자들이 반체제 인사들을 계속 박해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비판했다.
바이든 정부가 무함마드 왕세자에게 사실상 면죄부를 준 것은 동맹국인 사우디와의 관계를 고려했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는 “바이든 정부는 왕세자 직접 처벌에 대한 외교 비용이 너무 높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로이터통신은 “백악관은 가장 오래된 아랍 동맹국이자 중동에서 이란에 대한 주요 균형추 역할을 하는 국가를 무너뜨릴 여유가 없다”고 했다. 사우디는 미국에 원유를 싼값에 공급하고, 미국은 사우디를 군사적으로 지원하면서 이란을 견제해왔다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기간 무함마드 왕세자 등을 향해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결과적으로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됐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27일 “우리가 한 일은 관계를 파열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이익과 가치에 더 부합하도록 재조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안에서도 바이든 정부의 이중잣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일한 오마르 하원의원은 “미국이 편리할 때만이 아니라, 일관되게 전 세계의 인권과 인간 존엄성을 지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밥 메넨데스 상원 외교위원장은 보고서 공개가 “악랄한 범죄에서 무함마드 왕세자가 한 역할에 대해 개인적 책임을 지우려는 행정부의 첫 조치이길 바란다”고 했다.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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