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지는 오렌지 짜내 전기 만들겠다는 스페인

이정호 기자 2021. 2. 28.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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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건물 2~3층 높이의 키 큰 나무에 테니스공처럼 생긴 주황색 열매가 주렁주렁 달렸다. 한 그루당 수십개가 훌쩍 넘을 만큼 열매의 양은 많다. 인구 150만의 대도시인 스페인의 세비야는 중세의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는 건축물로도 유명하지만, 이 도시에 들어선 관광객의 눈길을 먼저 끄는 건 가로수로는 생소한 오렌지 나무다. 세비야에서 자라는 오렌지 나무는 무려 4만8000그루에 이른다.

스페인 세비야 대성당 앞의 오렌지 나무. 세비야 시 당국은 시내 4만8000그루에서 열리는 오렌지를 모아 친환경 발전에 사용할 계획이다. 위키피디아


그런데 세비야에서 나무를 흔들어 오렌지를 따려는 사람을 찾긴 어렵다. 이유는 간단하다. 맛이 없기 때문이다. 달콤한 감귤을 생각하며 베어 물었다간 낭패를 본다. 세비야에서 자라는 오렌지 품종은 매우 시고 쓰다. 이 때문에 설탕에 재워 만드는 일종의 잼인 ‘마멀레이드’로 일부가 가공돼 다른 나라로 수출된다. 이 도시의 오렌지는 비료로도 사용되지만 적지 않은 양은 한국 길거리의 은행처럼 길가에 방치된다. 자동차 바퀴나 사람 발에 뭉개지면서 도시 미관을 해친다. 시 당국은 오렌지를 전문적으로 수집하는 인력만 200여명을 고용하고 있다.

이런 ‘천덕꾸러기’ 오렌지가 청정에너지로 거듭나게 됐다. 지난주 영국 언론 가디언은 세비야 시 당국이 오렌지에서 전기를 일으켜 정수장 운영에 사용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오렌지 과육을 발효시켜 메탄을 뽑아내 발전기를 돌리겠다는 것이다.

시는 우선 35t의 오렌지를 사용해 시험 운영을 할 예정이다. 현재 세비야에서 생산되는 오렌지는 1만5000t에 이른다. 일종의 도시 문제였던 버려지는 수많은 오렌지를 생산적으로 쓸 수 있을지 과학적으로 타진하겠다는 것이다.

시는 시험 운영이 성공하면 ‘오렌지 발전’이라는 독특한 아이디어의 활용 범위를 적극적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정수장 운영에 들어가는 전기를 보조하는 것을 넘어 시민에게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정식 전력공급망에 오렌지로 만든 전기를 편입시키려는 계획인 것이다.

일견 엉뚱해 보이기까지 하는 세비야 시의 태도에는 이유가 있다. 세비야에서 수확할 수 있는 오렌지 양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오렌지 1t으로는 50kWh의 전기를 만들 수 있는데, 시 전체의 오렌지를 모두 활용한다면 하루 동안 7만3000가구에 전기를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시 당국은 추산했다. 저장했다가 나눠 쓰면 에너지 자급률을 높이고 친환경적인 발전을 할 연료가 된다.

후안 에스파다스 세하스 세비야 시장은 가디언을 통해 “이번 계획은 탄소 배출량 감소와 순환 경제 달성이라는 목표에 도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버려지는 과일을 깨끗한 에너지로 만들려는 세비야의 도전이 어떤 성과로 나타날지 주목된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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