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와 추신수의 동행 뒤에선 정용진이 움직여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2021. 2. 28.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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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 구단 신세계, 27억원으로 빅리거 영입

(시사저널=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단숨에 최강 전력으로 부상지난해 포털사이트에 올린 메이저리그 일기에 그는 이렇게 적었다. "만약 내년에도 선수 유니폼을 입고 타석에 들어설 수 있다면 딱 한 번만이라도 재미있게, 야구를 즐기고 야구와 어울리고 놀고 싶다."

추신수는 올해도 선수 유니폼을 입는다. 무대는 20년 만에 바뀐다. 메이저리그에서 KBO리그로. 그의 나이 마흔 살, 추신수는 야구의 신세계를 열까. 분명한 것은 추신수가 "야구를 즐기고 야구와 어울리고 놀 것"이라는 점이다.

ⓒ연합뉴스

부산 출신인 추신수를 향한 '인천 야구'의 14년 구애 

부산 토박이인 추신수가 신세계 구단과 전격 계약한 이유는 2007년 있었던 해외파 특별 드래프트 때문이다. 당시 아마추어 신분으로 미국 구단과 계약할 경우 국내 복귀 시 2년 출장 정지 조항이 있었고 이를 면책시켜주기 위해 KBO가 특별히 드래프트를 열었다. 당시 KIA 타이거즈와 롯데 자이언츠는 우선적으로 연고지 선수였던 최희섭과 송승준을 지명했다. 나머지 구단들은 지명권 순서 추첨을 했는데, 이때 SK 와이번스가 1순위 지명권을 뽑았다. 

그때 SK는 의외의 선택을 했다. 당장 계약이 가능한 류제국·채태인·이승학 등을 놔두고 2005년 미국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추신수를 지명한 것. 당시 추신수는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로 트레이드된 뒤 자주 주전 외야수로 등장하는 등 팀 내 위상이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때문에 모두들 "지명권을 그냥 버리는 선택"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SK 수뇌부는 추신수 설득에 나섰다. 당시 단장이었던 민경삼 현 신세계 야구단 사장이 미국 현지로 날아가 추신수를 만나기도 했다. 

추신수는 실제로 흔들렸다. 집세를 내기도 빠듯할 만큼 경제 상황이 안 좋았고 팔꿈치 부상까지 당한 터였다. 군대 문제도 있었다. 고생하는 가족들이 안쓰러워 진지하게 국내 복귀를 고민했으나 아내가 말렸다. "꿈을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미국 잔류 결정을 한 뒤 추신수와 아내 하원미씨는 부둥켜안고 펑펑 울었다고 한다. 그만큼 미국의 삶이 힘들었지만 더 버텨보기로 했던 것. 추신수는 꿈을 좇았고 SK는 꿈을 접었다. 

이후 절치부심한 추신수는 클리블랜드에서 풀타임 주전으로 승승장구했고, 2010년에는 광저우아시안게임 대표팀에 뽑혀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군 문제까지 해결했다. 신시내티 레즈로 적을 옮긴 뒤에도 꾸준하게 커리어를 쌓은 그는 2013 시즌 뒤 텍사스 레인저스와 7년 1억3000만 달러(약 1467억원)의 초대형 계약을 했다. 이 때문에 '추신수의 국내행'은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 돼 갔다. 

그러나 초유의 바이러스가 추신수의 미래를 바꿨다. 공교롭게 2020 시즌은 그가 텍사스와 계약한 마지막 해였다. 코로나19로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메이저리그는 초단축 시즌(60경기)으로 치러졌고, 추신수는 부상(손목 인대 염좌 부상)과 부진 속에 아쉬운 성적(타율 0.236, 5홈런 15타점 6도루)을 남겼다. 

올해 추신수의 선택지는 애초 두 개였다. 현역 은퇴를 할 것이냐, 아니면 메이저리그 타 구단으로 이적해 명예 회복을 할 것이냐. 여기에 1월초부터 선택지가 하나 더 늘어났다. SK 구단 인수를 결정한 신세계그룹이 지속적으로 접촉하면서 국내행을 타진한 것. 추신수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메이저리그 타 구단으로 이적한다 해도 적지 않은 나이 탓에 많은 출장 기회를 보장받을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반면 KBO리그 팀이라면 그에게 최대한 출전 기회를 보장해 줄 터였다. "늘 마음속에서 KBO리그에 대한 그리움을 지울 수 없었다"던 그다. 

그러나 한국행을 결정할 경우 가족을 미국에 두고 와야만 했다. 이번에는 아내가 동의했다. 2020 시즌이 못내 아쉬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추신수는 또 다른 '꿈'을 위해 신세계와 1년 27억원(10억원 기부)의 계약을 했다. SK에서 시작된 영입 노력이 신세계에 이르러 마침표를 찍은 셈. 추신수로서는 2001년 부산고 졸업 후 20년 만의 국내 복귀가 된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뉴시스

정용진 부회장의 관심 "추신수가 우리 선수라면서요?"

추신수의 국내 복귀에는 SK 구단의 전격 인수를 주도했던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막후에서 영향력을 발휘한 것으로 알려졌다. 새로 출범하는 팀을 띄워야 하는 입장에서 빅리그 출신 최강 타자인 추신수 영입은 폭발력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실제 정 부회장은 구단 인수 후 "추신수가 우리 선수라면서요?"라며 SK가 기존에 보유했던 우선지명권에 대해 물었다고 한다. 평소 친분이 있던 한 야구인도 정 부회장에게 추신수 영입을 권유했다는 전언이다. 민경삼 사장이 추신수 영입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배경이다.

한국 야구 초짜 구단인 신세계는 KBO리그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메이저리그 베테랑 추신수를 영입했다. 일단 관심 끌기에는 성공했다. 단숨에 2021 시즌 인기 구단으로 등극했다. 첫 단추가 잘 꿰어진 신세계와 추신수의 동행. 그들의 레일 끝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추신수는 10개 구단 중 최강의 2번 타자 될 것"

추신수는 국내 선수뿐만 아니라 외국인 선수들조차 다 아는 빅리거다. 매트 윌리엄스 KIA 감독 또한 추신수를 잘 안다. 그는 "매우 환상적인 선수다. 타격은 물론 수비에서도 매우 좋은 기량을 가지고 있다"고 추신수를 평가한다. 

나이가 걸림돌이기는 하지만 이승엽을 생각해 보면 그리 부정적인 것만도 아니다. 이승엽은 마흔 살이던 2015 시즌에 타율 0.332, 26홈런 90타점을 기록하면서 팀의 정규리그 우승을 도왔다. 이후로도 2년 동안 꾸준하게 20홈런 이상 치는 등 안정된 활약을 보이다가 은퇴했다. 이승엽과 달리 추신수는 중장거리 타자지만 몸 관리가 철저하다는 점은 둘이 똑같다. 더군다나 신세계 홈구장으로 쓰일 인천 행복드림구장은 타자 친화적인 구장이다.

신세계 구단에는 추신수 말고도 최정·로맥·한유섬(개명 전 한동민)·최주환(전 두산) 등 '한 방' 있는 타자들이 즐비하다. 이들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 분명하다. 김원형 신세계 초대 사령탑은 "추신수를 2번 타자로 기용할 것"이라면서 "2번부터 6번까지 상대에게 강한 압박감을 줄 것"이라고 했다. 더군다나 추신수는 선구안이 아주 좋다. 나쁜 볼을 걸러낼 줄 아는 눈이 있다. 발도 빠르다. 이보다 '강한 2번'이 있을까. 

앞서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던 한국인 타자가 KBO리그에 처음 입성했던 사례로는 최희섭(전 KIA)이 있다. 시카고 컵스 등에서 뛰었던 최희섭은 2007년 시즌 중반 KBO리그에 데뷔했고 그해 52경기에 출장해 타율 0.337, 7홈런을 기록했다. 잦은 부상으로 이렇다 할 활약을 보이지 못하다가 2009년 비로소 만개해 33홈런(2위), 100타점(3위)으로 KIA 우승에 이바지했다.

추신수는 KBO리그 흥행 면에서도 엄청난 파급 효과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2012년 '코리안특급' 박찬호가 한화 이글스 유니폼을 입고 국내에 복귀했을 때 그가 등판하는 경기마다 표가 매진됐던 것에 버금갈 것으로 보인다. 시즌 초반의 '추신수 효과'를 어떻게 중반, 후반으로 끌고 갈지가 문제다. 코로나19로 인한 관중 제한이 얼마만큼 풀리느냐도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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