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철 산불 주범 '논·밭두렁 태우기' 이로운 곤충만 다 죽인다

윤희일 선임기자 2021. 2. 28.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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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논두렁태우기 장면. 경향신문 자료사진


소방청이 2011년부터 2020년까지 10년간 발생한 산불 4737건의 원인을 분석했더니 ‘입산자 실화’(1594건, 33.6%), ‘논·밭두렁 태우기’(717건, 15.1%), ‘쓰레기소각’(649건, 13.7%) 등이 주된 원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 다음은 ‘건축물 화재’(5.3%)와 담뱃불 실화(4.9%) 순으로 나타났다.

산림당국과 농정당국은 이중 농민들이 해충방제를 이유로 관행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논·밭두렁 태우기’를 주목한다. 해충방제 효과가 거의 없는데도 전국 곳곳에서 이루어지면서 대형 산불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28일 충남도농업기술원과 농촌진흥청 등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늦겨울이나 초봄에 많이 이루어지는 논·밭두렁 태우기는 농작물의 병·해충 방제에 효과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기관이 논과 논두렁에서의 월동기 곤충류 발생 양상을 조사한 결과, 농사에 도움이 되는 익충류(거미류, 기생벌류, 반날개류 등)의 비율은 지역별로 80∼97%에 이르는 등 월동기 밀도가 압도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해충류(애멸구류, 파리류, 응애류 등)의 밀도는 5~7%에 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충남도농업기술원 관계자는 “논·밭두렁을 태우는 주된 목적이 해충 박멸인데, 해충을 없애기는 커녕 해충의 천적을 사라지게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실제 농촌진흥청의 과거 조사 결과를 보면, 충청·경기지역 논둑 3곳(1㎡)에 서식하는 전체 미세동물의 89%(7256마리)가 거미·톡토기 등 해충의 천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거미는 해충을 잡아먹고 톡토기는 풀잎을 분해해 지력을 높여주는데 논두렁 등에 불을 지르게 되면 이들 벌레들까지 모두 죽게 되는 것이다.

농업기술원 관계자는 “벼에서 주로 문제가 되는 벼멸구·혹명나방·멸강나방 등은 이 시기에 발생하지 않고, 먹노린재는 인근 야산에서 주로 월동하기 때문에 봄철 논두렁 태우기로 방제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논두렁을 태우고 나면 논과 논두렁 내 익충의 밀도가 크게 감소하며, 소각 이후 4주가 지날 때까지 밀도 회복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덧붙였다.

농업기술원은 건조한 봄철에 이루어지는 논·밭두렁 태우기는 큰 산불로 번질 수 있는 불씨를 만들고, 날로 심각해지는 미세먼지를 다량 배출하는 등 사회적으로 큰 문제를 일으키는 만큼 자제해줄 것을 당부했다.

충남도농업기술원 농업해충팀 서화영 연구사는 “논·밭두렁 소각은 유익한 곤충을 더 많이 없애고 미세먼지와 산불을 유발하는 불필요한 작업”이라며 “농정당국이 제공하는 병해충 발생 정보에 따라 적기에 방제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윤희일 선임기자 yh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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