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우표에 중국 여과학자와 일본계 군인이 등장한 까닭은

정지섭 기자 2021. 2. 28.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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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폭탄 제조계획 참여했던 '우젠슝' 기념우표 등장
미-중 갈등국면 지속되는 '미묘한 시점' 평가
2차 대전에 참전했던 일본계 미군 기념우표도 연내 나와
Physicist Dr. Chien-Shiung Wu standing amidst tubes of a particle accelerator at Columbia University. (� Robert W. Kelley/The LIFE Picture Collection/Getty Images)

중국 전통 의상 치파오를 입고 머리를 단아하게 틀어올린 중년의 여인이 진지한 눈빛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지난 11일부터 미국 전역에 판매되기 시작한 55센트짜리 우표 도안이다. 바로 핵물리학자 우젠슝(1912~1997·吳健雄)이다.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뒤에도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긴장 국면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핵 과학 발전에 초석을 쌓은 여성 과학자가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이는 우표 인물로 등장하자 미묘한 타이밍이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중국계 여성 핵물리학자 우젠슝을 기념해 발행된 미국 우표 /USPS

우젠슝은 누구이고 어떻게 해서 미국 우표의 주인공이 됐을까. 우젠슝은 1912년 중국에서 태어났다. 1년전 일어난 신해혁명으로 최후의 왕조 청나라가 멸망하던 해였다. 청조 말기의 권력자 위안스카이와는 친척 지간으로 알려졌다. 스물 네 살이던 1936년 미국으로 이주한 그는 4년 뒤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UC버클리)에서 핵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으며 천재 여성 과학자로 두각을 나타냈다. 우젠슝은 1944년 중대한 직책을 제안받고 수락한다. 2차 대전 종전을 위해 미국이 극비리에 추진하던 원자폭탄 제조 작전인 ‘맨해튼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우라늄 농축과 방사선 감지 작업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우젠슝은 1급 기밀 연구를 수행해 프로젝트 진행에 혁혁하게 공헌했다. 2차 대전 종전 후 우젠슝은 미국의 대표적인 명문대인 프린스턴대 물리학과에 역사상 처음으로 교수로 임용됐고, 이후 콜럼비아 대학교로 적을 옮겼다.

우젠슝은 콜럼비아대에서 베타 붕괴(beta decay·원자핵내에서 전자 또는 양전자를 방출해 다른 핵종으로 변환하는 방사성 붕괴)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특히 우젠슝의 물리학 실험은 같은 중국계 과학자인 리정다오와 양전닝이 1957년 나란히 노벨 물리학상을 받는데 절대적인 도움을 준다. 그럼에도 여성인 우젠슝이 수상자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 훗날 과학계의 여성 차별이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우젠슝은 남성이 지배하던 과학계에서 40여년간 최고의 과학자로 활동하면서 ‘핵연구의 여왕’ ‘물리학의 퍼스트레이디’ 등의 칭호를 얻었고, 1975년 국가 과학 훈장을 비롯해 수많은 상을 받았다.

중국인으로 태어나 미국인으로 살아간 그는 고향인 중국과 대만 등 중화권에서도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다. 이번 기념 우표 발행의 계기는 국제 여성 과학인의 날(2월 11일)이고, 우표 발행 계획은 작년 11월에 공식 발표됐다. 통상 미 우정사업본부(USPS)는 발행년도 기준 2~3년전부터 외부 추천과 자체 조사 등을 통해 신규 발행 우표에 담을 디자인을 결정하고 전년도 말에 발표한다. 이런 절차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바이든 행정부를 거치면서도 미국·중국의 갈등국면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핵강국 미국의 초석을 다진 중국 출신 여성 과학자가 ‘미국의 얼굴’로 알려지는 상황이 됐다.

올해 발행 예정인 일본계 미군 2차 대전 참전 기념우표 /USPS

올해 미 우정사업본부는 또 다른 아시아계 관련 우표도 발행한다. 바로 2차 대전 참전 일본계 미군 기념 우표다. 미국과 일본이 적국으로 맞섰던 2차 대전에서 미군으로 참전한 3만3000여명의 일본계 이민자 및 후손들을 기리는 취지에서 발행이 확정됐다. 일본계 병사가 주축이 됐던 100보병대대와 442연대 전투팀의 부대 구호인 ‘전부를 걸고(Go For Broke)’라는 모토와 함께 군복에 철모를 쓴 일본계 동양 군인의 얼굴이 그려진다. 새 정부 출범 뒤에도 미국과 일본은 인도·태평양 동맹으로 찰떡궁합을 과시하고 있고, 최근에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2차 대전 당시 미 당국의 일본계 미국인 강제 수용 정책에 대해 거듭 사과했다.

올해 발행 예정인 멕시코 죽은 자의 날 기념우표 /USPS

이런 상황에서 발행되는 일본계 군인 참전 기념 우표는 두 나라의 공조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2차 대전 승전의 숨은 주역으로 중국에서 온 핵물리학자와 일본 출신의 젊은 남성을 소개하는 모양새가 됐다. 이민자 권익과 다양성 가치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이든 행정부 첫해인 올해에는 신규 우표 디자인에서도 다양성 테마가 강조되는 양상이다. 올해에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코코’를 통해 알려진 멕시코의 전통 세시풍속 ‘죽은 자의 날’을 테마로 한 우표도 처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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