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돌, 그래서 된다는 거야? 안 된다는 거야?

반기웅 기자 입력 2021. 2. 28.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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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관세청과 리얼돌 업체가 끝나지 않는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2019년 6월 대법원이 리얼돌 수입 금지는 위법하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지만 리얼돌은 통관을 넘지 못했다. 관세청이 리얼돌을 ‘관세법에서 규정한 풍속을 해치는 물품’으로 보고 통관을 불허하면서다. 대법원 소송 당사자 외 업체들은 다시 소송절차를 밟아야 한다. 리얼돌 업체도 물러서지 않았다. 관세청을 상대로 수입통관 보류처분 취소 소송과 손해배상 소송을 이어갔다. 업체 측은 관세청이 사법부의 판결을 무시한 제재라며 반발하고 있다.

리얼돌 전시 매장 / 반기웅 기자


■전선 넓히는 리얼돌 전쟁

예술계도 리얼돌로 홍역을 앓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리얼돌을 다룬 정윤석 작가를 ‘2020 올해의 작가상’ 후보로 선정한 것이 화근이 됐다. 여성단체는 “여성의 신체를 성적 도구화하는 ‘섹스돌’ 내용을 전시한 것은 공공성에 맞지 않는다”며 전시 중단과 후보 자격 박탈을 주장했다. 이를 두고 예술계 내부에서 과도한 ‘표현의 자유 침해’라는 목소리가 나오면서 갈등이 일었다. 이정우 널 위한 문화예술 치프 에디터는 “국립현대미술관이라는 권위 있는 기관에서 리얼돌이라는 예민한 소재를 소홀히 다룬 게 가장 큰 문제”라며 “주최 측이 작가의 작품 의도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논란을 키웠다”고 말했다. 다만 이 에디터는 “표현의 자유는 그 어떤 사람도 규제할 권리가 없다”고 강조했다.

리얼돌을 둘러싼 충돌은 젠더 갈등으로 전선을 넓히고 있다. 여성계는 리얼돌이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고 성폭력 범죄의 연장선상에 있다며 수입과 유통에 반대한다. 반면 리얼돌 금지 조치는 개인의 성적 결정권 침해라는 시각도 있다. 리얼돌 이슈가 지나간 SNS 공간은 전쟁터로 변한다.

그 사이 리얼돌은 현실로 들어왔다. 온라인 판매 채널이 자리 잡았고, 직접 만져보고 구매할 수 있는 리얼돌 숍도 문을 열었다. 국내 자체 제작 루트도 열렸다. 음지에서는 리얼돌 체험방이 성행한다. 이미 해외에서는 리얼돌을 뛰어넘는 섹스로봇 시장도 열렸다. 이런 가운데 한국은 여전히 섹스로봇의 ‘원형’을 두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리얼돌은 규제대상인가. 막는다면 어느 수준까지 막아야 할까. 그렇다면 리얼돌 이후 섹스로봇은 어떻게 할 것인가.

“잠깐 세팅 좀 할게요.” 김종석씨(가명·매장 운영 2년차)가 매장 블라인드를 내렸다. 마음 편히 제품을 둘러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려라고 했다. 숍 방문도 예약제다. 1인 방문이 기본, 최대 2인까지만 동시 방문을 허용한다. 관할 구청의 영업 허가도 받았고, 청소년 보호를 위해 학교와 멀리 떨어진 곳에 매장을 열었다. 김씨는 1시간에 걸쳐 제품설명을 했다. 외형과 재질, 옵션에 따라 100만원에서 700만원이 넘는 고가의 제품으로 나뉜다.

제품을 주문하면 몸과 머리 부분을 나눠 따로 두차례 배송하는데 받아서 간단히 조립만 하면 된다고 했다. 제품 설명을 하는 동안 김씨는 리얼돌은 불법이 아니라는 사실을 수차례 강조했다. 김씨는 “불법이 아닌데도 세관에서 수입을 막으니 억울하다”며 “외부 시선 때문에 단체나 협회를 만들 수도 없는 처지여서 장사를 하려면 업자들이 개별적으로 법적 대응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에는 쓰레기 테러를 당했다. 누군가 매장 앞에 쓰레기 더미를 쏟아 놓고 달아난 것이다. 김씨는 “K리그 경기장에 리얼돌을 설치했다는 뉴스가 나오고 리얼돌 반대 여론이 확산했던 시기”라며 “그 뒤로 리얼돌 관련 뉴스가 나오면 누가 해코지를 하는 것 아닌지 걱정부터 된다. 이런 상황인데도 정치권에서는 문제해결은 하지 않고 이슈가 필요할 때만 툭 건드리고 방치한다”고 말했다.

관세청을 상대로 22건(행정·민사 포함) 소송전을 벌이는 부르르닷컴의 이상진 대표도 같은 견해다. 30년 전부터 제작돼 전 세계에 유통하고 있는 제품을 왜 대한민국에서 갑자기 문제삼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리얼돌에 문제가 있다면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쪽에서 학문적 연구를 토대로 근거를 제시한 뒤에 규제하는 것이 순서”라며 “리얼돌이 해가 된다는 근거도 없이 일방적으로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리얼돌 관련 법안을 만든다면 공청회를 열어 관련 업계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밟는 게 기본 아닌가. 그런데 국회에서는 우리 의견을 듣지 않고 법을 만들고 있다. 토론이든 공청회든 참석할 의사가 있는데 아무도 부르지 않아 답답하다”고 덧붙였다.

FC서울이 관중석에 설치한 리얼돌의 모습 / 연합뉴스


■리얼돌 유해성 두고 갑론을박

업계 주장처럼 리얼돌 규제는 근거없이 이뤄지는 것일까. “(대법원)판결이 났으면 그와 유사한 사건들은 통관을 허용하는 게 원칙이라고 봐야 할 것 같은데 그 부분도 국민정서라든가 이런 것들이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통관금지를 유지할 생각입니다”(김영문 전 관세청장, 2019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 대법원에서 허용한 리얼돌을 관세청이 언제까지 막을 수 있겠냐는 유승희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대한 답이다. 이어 유 전 의원이 “국민 정서는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리얼돌 수입을 막을 수 없다”며 구체적인 대안 마련을 주문하자 김 전 청장은 여성가족부를 중심으로 대안을 논의하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논의는 진전되지 않았고 대안도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리얼돌 통관을 불허한 국민정서는 무엇일까. 당시 국감에서 유 전 의원은 최근의 국민 정서를 “여성의 성적 대상화와 여성 혐오주의에 대한 우려”라고 설명했다. 윤김지영 교수(건국대 몸문화연구소)는 ‘리얼돌, 지배의 에로티시즘’ 논문에서 여성들이 리얼돌을 반대하는 이유는 음란물이기 때문이 아니라 여성의 인격권과 초상권, 시민권에 대한 침해행위로 보기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김 교수는 리얼돌에서 시뮬레이션한 일방적인 성적 행위로 구조화된 남성의 성욕이 여성의 신체를 남성의 삽입구나 배설그릇으로 인식하거나 여성에 대한 공격성을 정당화한다고 설명했다. 리얼돌이 그릇된 성인식을 고착시켜 여성 인격 침해와 성범죄를 양산한다는 것이다.

리얼돌 규제법안을 준비 중인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리얼돌을 단순한 ‘성기구’나 ‘성 풍속을 해하는 물품’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리얼돌을 한국사회의 뿌리 깊은 성폭력과 성매매 문화의 연속선상에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용 의원은 “인격은 있지만 저항하지 않고 수동적인 여성의 모습을 재연한 것이 리얼돌”이라며 “여성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한국사회의 문화와 시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말했다.

■아동·청소년 리얼돌은 규제 추진

리얼돌은 유해한가. 김태경 카이스트 겸직교수(심리철학 전공)는 리얼돌이 유해하다고 결론을 내리기엔 논거가 부족하다고 본다. 김 교수는 “리얼돌이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고 성범죄의 연장선상에 있고, 그런 결과가 예측된다면 실제 사례가 있어야 하는데, 현재까지 그런 사례는 보고되지 않았다”며 “결국 사물이나 현상에 부정적 의미를 부여한 뒤에 부정적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주장하는 건데 이런 논증 방식은 우연적이고 임의적인 상징적 의미에 근거한 상징적 결과 논증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리얼돌 반대 진영은 남성의 성을 폭력적인 것으로만 묘사하는데 성적 욕구 해소는 폭력적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폭력적인 부분만 부각해 해석하면 리얼돌 문제를 제대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예컨대 칼은 살인도구로 쓰일 수도 있고, 요리도구로 쓰일 수 있는 만큼 칼을 매개로 한 범죄가 칼이라는 도구로 인해 발생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리얼돌 일러스트/ 김상민


현재까지 리얼돌과 관련해 일부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지점은 ‘아동·청소년 형상’ 리얼돌에 대한 규제다. 지난 1월 최혜영 민주당 의원은 아동·청소년 신체를 형상화한 성기구를 제작하거나 수입, 판매, 대여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해외에서도 아동·청소년 형상 리얼돌은 규제하는 추세다. 미국과 호주는 엄격한 금지를, 영국은 수사 기소 지침과 판례를 통해 규제를 추진하고 있다. 국내 리얼돌 수입업체와 제조업체에서도 아동·청소년 형상 리얼돌 규제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성인 형상 리얼돌을 어떻게 해야 할까. 국내에서는 아동·청소년 형상뿐만 아니라 성인 리얼돌에 대한 전면 규제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 용혜인 의원은 “여성이 분노하는 지점은 여성의 대상화 그 자체와 여성의 대상화가 가져올 성폭력 문제다. 논란은 있겠지만 리얼돌과 같은 여성 형태의 성기구는 전면 규제할 수 있다고 보고 관련 법안을 준비 중이다”라고 말했다.

리얼돌 전면 규제법안이 나오더라도 국회 문턱을 넘기는 쉽지 않다. 김한균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성인의 성적 용품과 기구는 형사적 규제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에 개인의 자유에 맡기는 게 바람직하다”며 “리얼돌 규제법안은 개인의 성적 취향과 자유를 국가가 제한하겠다는 취지가 아니라 체험방과 같은 유사 성행위 업소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입법을 전제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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