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빚은 적을수록 좋을까 [박상영의 Re:코노미]

박상영 기자 2021. 2. 27.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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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정부는 재정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과감하게, 실기하지 않고 충분한 위기극복 방안을 강구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4차 재난지원금 지급 방안을 두고 더불어민주당이 보편지급, 기획재정부가 선별지급론을 각각 내세우며 대립하는 양상을 빚자 지난 1월 8일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 모두발언에서 이같이 말했다.

언론은 문 대통령의 이 발언을 두고 보편지급 주장이 제기될 때마다 줄곧 ‘재정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던 기재부에 사실상 손을 들어줬다고 분석했다. 실제 여당은 코로나19 상황이 진정되면 보편지급을 다시 논의하는 것으로 정리가 됐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발언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않은 부분이 있다.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재정의 범위가 어디까지인가’라는 질문이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 헤밀턴 호텔 뒤 상가에 코로나19 때문에 임시휴업을 한다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 우철훈 선임기자


■부채 총량에만 초점 맞춘 재정당국

사실 문 대통령도 이에 대해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문 대통령은 2019년 5월에 열렸던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미국은 107%, 일본은 220%,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이 113%인데 우리나라는 40%가 마지노선인 근거가 무엇이냐고 했다. 재정당국은 그동안 40%를 국가채무비율의 마지노선으로 간주해 왔다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의 발언에 대한 지적이었다.

재정여력은 국가가 감당할 수 있는 최대한의 부채를 말한다. 세율을 올리면 조세수입이 늘어날 수 있지만, 세율이 지나치게 높아지면 투자를 하거나 굳이 일할 필요가 떨어져 오히려 조세수입은 감소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국가가 빚을 낼 때도 한계가 있다. 문제는 그동안 재정여력을 평가할 때는 부채의 절대량에만 초점이 맞춰졌다는 점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 과정에서 국가채무비율이 상승하자 재정당국은 2012년까지 30% 미만으로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국가채무비율이 40%로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자 2016년에는 명목성장률(4.2%)보다 예산 증가율(3.0%)이 낮은 긴축 예산안을 편성하기도 했다.

국가채무비율을 최대한 낮게 유지하면 국가부도 위험성은 낮아질까.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18년 기재부 의뢰로 작성한 ‘지속 가능한 재정운용을 위한 국가채무 수준에 관한 연구’를 보면 국가부도를 경험한 나라의 경우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중앙값은 약 60%로 2018년 기준, 미국(106.9%), 프랑스(122.5%), 일본(224.1%) 등 선진국과 비교해 오히려 낮은 수준이었다. KDI는 “국가부도를 경험한 나라들의 35%는 부채비율이 일반적인 위험 수준에 한참 못 미치는 40%였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며 “국가부도 위험을 결정하는 기본요인으로 다양한 국가별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채무비율을 산정할 때 금융성 채무까지 포함한 점도 고려해야 한다. 국가채무는 크게 세금 등으로 상환해야 하는 ‘적자성 채무’와 대응자산이 있어 별도의 재원 조성이 없어도 되는 ‘금융성 채무’로 나뉜다. 2019년 적자성 채무가 차지하는 비중은 57%, 금융성 채무는 43%였다. 결국 빚을 갚기 위해 세금을 추가로 걷어 갚아야 하는 부분만 산정한다면 국가채무비율은 GDP 대비 21.2%로 낮아진다.

재정건전성을 평가할 때는 부채의 총량뿐 아니라 질도 평가해야 한다. 돈을 적게 빌리더라도 빌리는 기간이 짧거나 이자가 높다면 빚을 못 갚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은 돈을 빌리는 기간인 국가채무 만기가 꾸준히 증가했다. 2015년에는 국가채무 평균 만기가 7.2년이었지만 2019년에는 9.7년으로 늘어났다.

1년 이내로 갚아야 하는 빚이 얼마인지, 외국인에게 얼마나 빚을 졌는지도 중요하다. 2019년 기준, 1년 이내에 상환해야 하는 국채 비중은 7.3%에 불과했다. 이는 주요 선진국 평균(20.4%)보다 낮은 수준이다. 이탈리아는 단기 채무비중이 40.4%, 스웨덴은 33.2%, 프랑스는 23.7%에 달한다. 그동안 유럽 일부 국가와 일본 등 선진국의 전유물이었던 50년물 초장기 국고채도 2016년을 시작으로 매년 꾸준히 발행하고 있다.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대외신인도가 높아진 결과이다. 외국인이 국채를 보유하는 비중(14.1%)도 주요 선진국 평균(25.7%)과 비교해 낮은 수준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20년 10월 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한국형 재정준칙 도입방안 브리핑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 기획재정부 제공


■국채 만기 길어지고 이자비용은 줄어들고

최근 저금리가 이어지면서 이자비용도 줄었다. 2015년 2.15%였던 국고채 평균 조달금리는 2019년에는 1.68%까지 감소했다. 이 때문에 국가채무 규모는 매년 증가하고 있지만, 이자비용은 2015년(19조7000억원)보다 되레 2019년(18조원)이 적어졌다. 결국 돈을 갚아야 할 기간은 길어지고 비용은 낮아진 것이다. 허리띠를 졸라매기보다 적극적으로 투자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 오히려 미래세대의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재정학 분야 석학으로 꼽히는 알렌 쉬크 미국 메릴랜드대학 교수는 지난해 발간한 <현대적 공공지출 관리: 예산편성 및 분석 방법론> 한국어판 번역본에 ‘그동안 변한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이라는 특별 기고문을 실었다. 쉬크 교수는 “재정준칙이 완전한 회복을 지연시키고 공공서비스 수준을 저하시키는 긴축정책을 채택하도록 정부를 유도할 우려가 있다”며 “돌이켜보면 유럽연합 등 국제기구가 그리스와 이탈리아 등 경제가 취약한 국가들에 긴축정책을 택하도록 한 것은 오류였다”고 했다. 국가채무비율을 일정 수준 이내로 관리하도록 강제하는 재정준칙을 각국이 도입하는 데 기여한 재정학자가 기존 입장을 정면으로 뒤집은 것이다.

코로나19 이후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다양한 정책실험도 시도되고 있다. 정부는 국민에게 돈을 직접 주고, 중앙은행은 부실한 회사채를 매입하는 데 도움을 줬다. 모두 코로나19 이전까지는 정부와 중앙은행의 역할이 아니라고 하는 영역이었다. 이 와중에 재정당국은 재정준칙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재정당국은 국가채무비율 목표치를 내놨지만 정작 그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를 내놓지는 못했다. 재정이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보다는 ‘채무는 줄이면 줄일수록 좋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불평등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정부의 역할과 책임이 커지고 있다. 이제는 ‘재정 여력은 어디까지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해야 할 때다. 이 답은 재정당국의 의지에만 미뤄야 할 일도 아니다.

박상영 기자 s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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