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연 경이..차 몰고 달려야 제 맛 느끼는 미 서부 여행
재작년 여름이었다.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출발해 자동차로만 꼬박 2박3일간 그랜드캐니언 등이 있는 미국 서부 '그랜드 서클(Grand Circle)' 지역을 돌았다. 핵심 관광지만 빠르게 순회하는 당일치기 버스투어 상품도 있었지만 직접 운전해 다니며 주변도 둘러보고 뻥 뚫린 도로를 달려보고 싶어 로드 트립을 택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얼마나 먼 거리를, 얼마나 오랫동안 달려야 하는지 피부로 와닿지 않았다.
우리는 크게 그랜드캐니언과 앤털로프캐니언, 호스슈벤드 정도를 돌아보기로 하고 라스베이거스에서 반시계 방향으로 돌았다. 첫날은 와이너리(와인 양조장)가 모여 있는 애리조나주 코튼우드까지 4시간 반을 쉬지 않고 달려 도착했다. 평평한 사막 한가운데 일직선으로 곧게 뻗은 길. 간간이 다른 차가 스쳐 지나간 걸 제외하면 사방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처음 만끽해보는 완연한 해방감이었다.
둘째 날 아침에는 플래그스태프를 거쳐 그랜드캐니언으로 향했다. 그랜드캐니언에서 불과 97㎞ 떨어진 플래그스태프는 그랜드캐니언 관광 거점 중 하나다. 자유 여행으로 이곳에 왔더라도 플래그스태프에서 현지 가이드 투어 상품을 선택하기도 한다. 플래그스태프는 그 자체로 좋은 여행지다. 아름다운 호수와 산으로 둘러싸인 그림 같은 대자연 속에서 하이킹, 캠핑, 다운 힐 스키 등을 즐길 수 있다. 북애리조나 박물관과 로웰 천문대도 가볼 만하다. 또 가까운 거리에 선사시대 원주민 생활상을 볼 수 있는 월넛캐니언 국립기념지와 우팟키 국립기념지가 있다.
문제는 그랜드캐니언에서 나온 뒤였다. 마지막 날 라스베이거스로 돌아가는 길에 앤털로프캐니언과 호스슈벤드를 갈 계획이었기 때문에 이동 시간을 고려하면 하루 전 그쪽에 가까운 애리조나주 페이지로 이동해야 했다. 그런데 그랜드캐니언에서 일몰까지 보고 나오니 주차장에서 줄이 길어져 시간이 늦어진 것이다. 그랜드캐니언에서 페이지까지 걸리는 시간은 3시간30분. 경로는 단순했지만 초행 길인 데다 늦은 밤 쌩쌩 달리는 대형 트럭들 사이에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결국 자정이 다 돼서야 숙소에 도착했다.
앤털로프캐니언은 페이지 동쪽 나바호 땅에 있는 슬롯 협곡으로, 수백 년에 걸쳐 사암을 관통한 물에 의해 침식되면서 형성됐다. 특히 몬순 기간 범람한 빗물이 모래를 휩쓸어가면서 계곡이 더 깊어졌다. 나바호족 언어로 ‘바위를 통해 물이 통과하는 곳(Tsé bighánílíní)’으로 불린다. 어퍼캐니언 기준으로 깊이가 1200㎞ 정도 된다.
앤털로프캐니언 인근의 호스슈벤드는 주차장에서 꽤 먼 거리였다. 계단이 있긴 했지만 그늘 하나 없는 오르막길을 편도 30분을 가야 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도착한 뷰포인트. 아래를 내려다보니 굵은 콜로라도 강줄기가 아찔한 협곡 사이를 휘감아 흐르고 있었다. 이 잠깐의 한 장면으로 대자연의 경이로움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호스슈(horseshoe)'라는 이름처럼 그 모습은 정말 말발굽을 닮아 있었다.
[송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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