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썰] '10리' 등굣길, 직접 보면 이렇습니다
학교에 가려면 10리 길을 가야 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10리면 4km, 하굣길까지 생각하면 8km입니다. 산속 마을이 아닌, 경기도 삼동 아이들 얘기입니다.
JTBC 밀착카메라팀은 지난 24일 이 소식을 전했습니다.
◆ 관련 리포트
[밀착카메라] 매일 8㎞ '험난한 등굣길'…십수 년째 발만 동동
→ 기사 바로 가기 https://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993861
뉴스가 나갈 때 "너무 위험해 보이는 화면"이라는 의견을 준 분들도 있었습니다. 등굣길로 걸어가는 기자 바로 옆으로 화물차가 지나가는 장면이었습니다. 당시 방송에 다 담지 못했던 아이들의 등굣길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11살 유나가 개학이 달갑지 않은 이유
유나) 엄마 차로요.
기자) 힘든 건 없었어요?
유나) 학교가 멀리 있어서 화장실이 급했는데 힘들었어요.
유나 어머니 강 모 씨는 3년 전, 직장을 그만뒀습니다. 10년간의 직장 생활을 접었던 이유는 오직 유나를 학교에 안전히 차로 데려다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삼동에 사는 유나가 중대동의 A초등학교로 배정됐는데, 걸어선 도저히 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습니다.
"솔직히 요즘엔 맞벌이하지 않고서는 집을 하나 사기도 쉽지 않은 시대잖아요. 그런데도 아이의 의무 교육을 해주기 위해서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게 그게 최선이었어요."
취재진은 유나 집 근처에서 A초등학교까지 걸어가 봤습니다. 큰 도로로 나가자마자 바로 옆으로 화물차가 지나갔습니다.
좁은 인도를 따라 걷다가 중간에 갑자기 길이 끊기는 곳도 많았습니다.
차도에 그어져 있는 선 안쪽으로 몸을 움츠려 걸어야 하기도 했습니다. 구석에 붙어서 걷자니, 아래 도랑이 있어 자칫하면 빠질 뻔하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학교까지 73분 동안 5486걸음을 걸었습니다. 아이들이 걷는다면 훨씬 더 오래 걸릴 겁니다. 거리도 거리이지만, 도로 환경이 험하다 보니 아이들을 절대 혼자 못 보낸다는 학부모들의 마음이 이해됐습니다.
A학교는 삼동에서 4km 떨어져 있습니다. 법적으로 초등학교는 통학 거리 1.5km, 걸어서 30분 이내에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학교를 설립할 때의 입지 선정 기준입니다. 삼동 아이들이 다니는 A학교가 지어진 건 1951년인데 그 이후 주거지역이 들어온 현실은 반영되지 못했습니다.
결국 A학교에 다니는 학생 1100여 명 중 300여 명이 원거리 통학을 합니다. 3명 중 1명꼴입니다. 삼동엔 2023년에 아파트가 들어오는데, 그 아이들도 A학교에 가야 합니다. A학교는 자꾸만 학생이 늘어나니 지금 증축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교육지원청은 삼동의 학령인구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학교를 지으려면 3년에서 5년이 걸리고, 400억에서 500억 원이 듭니다. 교육부의 중앙투자심사를 받아야 하는데 그때 기준이 되는 조건이 36학급 1080명입니다. 물론 모든 학교가 처음부터 이 조건을 충족시킨 채 지어지는 건 아닙니다. 처음엔 10개 학급도 안 됐지만 개교한 사례들이 있습니다. 교육지원청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순차적으로 늘어서 36학급이 되는 겁니다. 모든 학생이 개교 시점에 다 들어오는 게 아니거든요. 아파트 개발 시점도 있고, 중장기적으로 자연 증가하는 학생 수도 있고요. 그런데 삼동은 학령인구도 부족하고 개발계획도 없기 때문에 학교 설립이 어려웠던 겁니다."
#"이제 공적 영역이 책임져야 할 때"
준연이 어머니 손주미 씨는 최근 아이가 다니는 학원에서 한 통의 문자를 받았습니다. 그동안 학원 통학 버스로 아이들의 등하교를 도왔는데 이제 그렇게 할 수 없게 됐단 내용이었습니다. 지난해 도로교통법이 바뀌면서 동승보호자가 의무적으로 함께 탑승해야 하는데, 추가 비용 등 여건이 어렵다는 겁니다.
'학교 통학만큼은 공적 영역(지자체, 교육청)에서 책임지고 운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침 등교 걱정으로 힘드실 부모님 생각에 여러 날을 고민하였지만 어쩔 수 없이 힘겨운 결정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손 씨는 학원 선생님들께 감사했다고 말했습니다. 여러 학부모가 삼동의 통학 여건이 안된다는 민원을 시청과 교육청에 꾸준히 넣었지만 바뀌는 게 없는 상황에서 학원들이 아이들을 위해 봉사했다는 겁니다. 동시에 손 씨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학원 차는 더는 이용할 수 없고, 다른 아이 엄마에게 준연이도 태워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언제까지나 계속할 순 없기 때문입니다.
기사에는 담지 못한 손 씨의 표정이 있습니다. 인터뷰하게 된 계기를 물었을 때입니다.
기자) 이 문제를 알려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손 씨) 사실 안타까웠던 게……. 아, 잠시만요. 갑자기 울컥해가지고……. 안 될 것 같아요. 눈물이 날 것 같아요.
잠시 시간이 필요했던 손 씨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지자체와 교육청에서 좀 더 현실적으로 삼동에서 학교에 가는 보도 상황을 봐줬으면 좋겠어요. 현장은 보지 않고 자료로만 하는 답변을 늘 들어왔어요. 학생들을 좀 더 생각하는 입장에 있다면 서운하지는 않았을 텐데, 항상 무책임한 답변이 돌아와서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 은설이 엄마가 인터뷰를 결심한 이유
교육지원청은 당장 학교는 세우지 못해도 중장기적으로 초중통합학교를 운영하는 방안을 협의 중이라고 했습니다. 통학 버스도 빠르면 3월 하순부터 운영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업체를 선정하고 아이들이 타고 내리는 거점도 지정해야 해 시간이 걸린다고 했습니다.
이제 곧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8살 은설이의 엄마 김 모 씨는 학교 문제가 해결됐습니다. 삼동 빌라에서 태전동 아파트로 이사를 왔는데, 걸어서 4분 거리에 학교가 있기 때문입니다. 대단지 아파트 곳곳에 학교가 3개나 있습니다. 물론 남편의 출퇴근은 좀 더 멀어졌고, 아파트로 오면서 대출을 많이 받아야 했지만 그래도 아이는 안심하고 학교에 보낼 수 있다는 생각에 위안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아직도 거기에는 저희 아이 친구들이 많이 살아요. 딱 두 가지 방법밖엔 없었어요. 자차로 가거나, 학원 차에 타거나. 그런데 그마저도 안된다고 하니까 정말 더는 방법이 없어요. 너무 많은 아이들이 안전하지 않은 채로 다녀요. 그 안에서 불편함을 느끼는 건 저희 성인들이 아니라 아이들이거든요. 관계 기관들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지 말고 책임 있게 살펴봐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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