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논란, '판도라의 상자' 열렸다

정덕현 문화 평론가 2021. 2. 27. 16:0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미투' 양상으로 논란 확산..진위 확인할 새로운 접근방식 필요

(시사저널=정덕현 문화 평론가)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처럼 학교폭력 논란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면서 과거의 간헐적인 양상과는 사뭇 다르게 전개되고 있다. 마치 '미투' 운동처럼 번지고 있는 학교폭력 논란. 어째서 이런 양상이 생겨나고 있고, 그 의미와 더불어 우려되는 점은 뭘까. 

최근 스포츠계와 연예계에서 학교폭력 논란이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오고 있다. E채널 《노는 언니》와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도 나왔던 여자 프로배구선수 이재영·이다영 쌍둥이 자매는 여러 피해자들의 학교폭력 폭로가 사실로 드러나며 무기한 출장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고 방송도 이들의 흔적을 지워버렸다. 하지만 이들의 학교폭력 논란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남자 프로배구선수 송명근, 심경섭, 박상하로도 이어졌다. 송명근과 심경섭은 잔여 경기 출장을 포기했고, 박상하는 아예 은퇴를 선언했다. 이제 스포츠계의 학교폭력 논란은 배구에서 야구로까지 번져가고 있다. 

스포츠계의 학교폭력 논란이 들불처럼 번져가면서 연예계에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TV조선 《미스트롯2》에 출전했던 진달래가 학교폭력 사실을 인정한 후 스스로 하차했고, JTBC 《싱어게인》의 톱6까지 올랐던 요아리와 KBS 《트롯전국체전》의 우승자 진해성도 학교폭력 논란에 휘말렸다. 또 최근 JTBC 《SKY캐슬》에 이어 OCN 《경이로운 소문》으로 한껏 주가를 올리고 있는 조병규, 걸그룹 (여자)아이들의 수진, 세븐틴 민규, 《SKY캐슬》에 조병규와 함께 출연했고 최근 《인간수업》으로 주목을 받았던 김동희, 영화 《스윙키즈》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으로 존재감이 커지고 있는 박혜수, 심지어 14년 차 가수인 현아까지 학교폭력 논란이 이어졌다. 물론 이 가운데 학교폭력 사실을 인정한 건 진달래 단 한 명뿐이고, 나머지 논란이 제기된 이들은 이를 모두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억울함을 호소하며 사실무근임을 토로해도 논란의 불길은 좀체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대로라면 향후에도 더 많은 이에 대한 논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저 자신만의 일로 치부하며 굳이 꺼내놓지 않았던 아픈 상처들을 이제는 꺼내놓을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또한 그 폭로가 해당 가해자에게 영향력을 미칠 만큼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는 사실은 수면 아래 놓여 있던 더 많은 과거사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릴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SBS·넷플릭스·스포츠조선 제공

왜 스포츠·연예계이고, 지금인가 

학교폭력 논란이 여타의 다른 논란과 다른 지점을 가장 잘 보여준 건 아마도 2019년 밴드 잔나비의 멤버였던 유영현의 사례가 아닐까 싶다. 과거 학교폭력 가해자로 지목되면서 결국 밴드 탈퇴를 하게 됐던 당시 사례에서, 피해자는 SNS에 자신을 가해했던 유영현이 거기 있다는 사실을 모를 때까지 잔나비의 팬이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즉 그 전까지는 아름답게 들리던 노래가 그 멤버 중 한 명이 과거 자신을 괴롭혔던 가해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는 결코 그렇게 들을 수 없게 됐다는 것. 여기에는 학교폭력이라는 사안이 가진 몇 가지 특징이 담겨 있다. 

먼저 학교폭력 논란은 연예계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논란과 달리 현재가 아닌 과거에 벌어졌던 사건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학교폭력 논란은 이제 연예계처럼 대중들의 사랑을 전제로 하는 비즈니스에 대중들의 '인성적인' 요구가 더욱 커졌다는 걸 드러낸다. 상품 구매에 있어서도 '좋은 소비' 같은 가치소비를 하게 된 대중이 이제 연예계에도 이 같은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가치소비의 전제로 필요한 것이 대중 스스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인프라인 것처럼, 이들의 인성을 과거사까지 찾아 검증할 수 있게 된 건 다름 아닌 인터넷 게시판이나 SNS 같은 공간이 있어서다. 이런 공간은 누구나 쉽게 아픈 과거의 상처를 꺼내놓고 그 가해자를 폭로할 수 있게 해 준다. 이번 학교폭력 폭로의 양상이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인물들에 대해 터져 나오게 된 데는 이런 인프라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또 한 가지 유영현의 사례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런 논란이 어느 순간에 생겨나는가 하는 점이다. 그 시점은 다름 아닌 과거 그 폭력을 저질렀던 인물이 유명해져 스포트라이트를 막 받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이번 논란에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이 대부분 최근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인물이라는 사실은 사안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여자 프로배구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의 이다영(왼쪽)과 이재영ⓒ연합뉴스

폭로의 이중성…새로운 시스템 필요 

학교폭력 논란이 과거사를 현재의 사안으로 끌어온다는 점은 이중성을 갖는다. 즉 이 논란은 학창 시절 마치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실수 정도로 치부하며 넘어가곤 하던 학교폭력 문제의 심각성과 중대함을 드러낸다. 그것이 피해자들에게는 평생 아물지 않는 상처로 남는 일이고, 가해자들 역시 후에라도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수 있는 과오가 되는 일이라는 걸 이 논란이 드러내준다. 

특히 스포츠계의 학교폭력은 엘리트 체육과 맞물리며 너무나 고질적이고 관성화된 면이 있다. 심지어 사실은 폭력인 '징벌성 훈련'을 자행해 온 코치와 감독들이 있을 정도니, 학생들 간의 폭력은 오죽했을까. 이런 현실을 들여다보면 현재 스포츠계와 연예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학교폭력 논란은 이 고질화된 문제에 대한 개개인의 경각심을 드러내고, 시스템적인 해법을 고민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 순기능이 있다. 이제 연예기획사에서도 능력이나 끼만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인성이 연예인 지망생을 선별하는 데 중요한 기준으로 자리하게 될 가능성도 높아졌다. 그게 아니라면 결국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바로 그 시점에 터져버린 과거사로 추락하게 되는 엄청난 손실을 떠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과거사라는 점은 그 진위 여부를 현재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논란의 가해자로 지목된 많은 연예인이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는 것처럼, 만일 이러한 폭로가 누군가의 악의적인 의도로 제기된 허위사실이라면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 폭로자는 익명이지만, 지목된 가해자는 연예인이라는 사실은, 진위 여부와 상관없이 해당 연예인의 이미지에 치명타를 안긴다. 바로 이 점은 실제 과거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그나마 당시의 가해자에게 줄 수 있는 벌일 수 있지만, 그건 사실이라는 전제하에서만 바람직할 수 있는 일이다. 

학교폭력 논란이 가진 이중성은 그래서 좀 더 신중한 결론을 요구한다. 제기된 폭로만으로 섣부른 예단을 하기 어렵고, 그렇다고 이런 폭로 자체가 가진 순기능을 무시할 수도 없다. 증거를 통해 진위의 판정을 얻기보다는 폭로와 맞대응에 의해 생겨나는 여론에 좌지우지되는 현실이다. 이 사안의 진위를 제대로 판정해 내는 어떤 새로운 시스템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Copyright ⓒ 시사저널(http://www.sisajournal.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