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나타나면 우리는 안도했다

김은지 기자 2021. 2. 27.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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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15일 백기완 선생이 향년 89세로 세상을 떠났다.

김진숙 지도위원의 말처럼, "노무현 정권 시절 그야말로 재야가 사라지고 오롯이 노동자들만 남아 '철없는' 투쟁을 할 때도" 선생은 노동자와 함께 싸우는 거의 유일한 어른이었다.

5일 동안 치러진 장례의 공식명은 '노나메기 세상 백기완 선생 사회장'이다.

노나메기는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그리하여 모두가 올바로 잘사는 세상'이라는 뜻이라고 백 선생이 생전에 설명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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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진연구회

2월15일 백기완 선생이 향년 89세로 세상을 떠났다. ‘김미숙·김진숙 힘내라’는 그의 생전 마지막 글귀를 접하고 나니, 좋은 어른을 잃었다는 사실이 새삼 더 다가왔다. 낮은 곳에서 삶의 존엄을 이야기하는 이들에게 끝까지 응원을 보내며, 해고 노동자 김진숙의 복직과 제대로 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마련하라는 과제를 산 자들에게 남겼다. 그의 장녀 백원담 성공회대 교수는 ‘세월호 분들에 대해 아버지가 가장 가슴 아파했다’고도 전했다. 백 선생의 시선은 언제나 상처 나고 여린 곳을 향해 있었다.

김진숙 지도위원의 말처럼, “노무현 정권 시절 그야말로 재야가 사라지고 오롯이 노동자들만 남아 ‘철없는’ 투쟁을 할 때도” 선생은 노동자와 함께 싸우는 거의 유일한 어른이었다. 1932년에 태어나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어온 선생은, 교과서에 나오는 역사의 현장부터, 알려지지 않거나 보도되지 못한 각종 시위와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거리를 떠나지 않았다. 특유의 흩날리는 백발과 까만 두루마기 차림의 그가 나타나면, 현장을 지키는 이들은 안도했고 위로받았다.

민주화운동가, 빈민운동가, 노동운동가, 통일운동가 등으로 주로 기억되는 백 선생은 ‘우리말 지킴이’이기도 했다. 주로 대학교 1학년생을 일컫는 ‘새내기’, 이제는 서클·클럽보다 훨씬 더 익숙하게 쓰는 ‘동아리’, M.T(Membership Training)를 대신한 ‘모꼬지’ 등의 단어를 처음 만들어 널리 알린 사람이 선생이다. 그의 우리말 사랑은 장례식에도 투영됐다. 5일 동안 치러진 장례의 공식명은 ‘노나메기 세상 백기완 선생 사회장’이다. 노나메기는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그리하여 모두가 올바로 잘사는 세상’이라는 뜻이라고 백 선생이 생전에 설명한 바 있다.

그의 입담 또한 유명했다. 1987년 민중 후보로 제13대 대선에 나선 백 선생은 사자후를 뿜으며 청중을 사로잡았다. 명연설가이자 이야기꾼이기도 했다. ‘조선의 3대 구라’로 꼽힌다는 구전이 돌아다닐 만큼 백 선생은 많은 이야기를 남겼다.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 가사의 모태가 된 장편시 ‘묏비나리’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노래는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로 시작해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로 끝난다. 선생의 유지는 이제 남은 자들의 몫이다.

김은지 기자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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