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영열차 안에서' 3개월 대박 누리다 진짜 군대 갔다

홍장원 2021. 2. 2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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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쿨오브락-181] 세상에는 탁월한 실력을 갖추고 뜻을 펼쳐보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고도 일이 꼬이는 사례가 허다하다. 가수 김민우가 딱 그런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데뷔 앨범 하나로 이 정도로 성공한 가수는 거의 없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 열풍과 비견될 수 있을 정도다. 아이돌로 치면 2016년 데뷔곡 '휘파람'으로 국내 음원차트 1위를 휩쓸며 걸그룹 음악방송 최단 기간 1위 기록을 따낸 블랙핑크의 열풍, 혹은 2006년 '거짓말'로 음원 차트에서 7주 연속 1위를 기록한 빅뱅의 선전에 비유될 만하다(솔직히 말하자면 김민우가 거둔 성과가 블랙핑크와 빅뱅의 데뷔 시절보다 몇 배 더 강렬했다고 생각한다). 소속사 차원에서 체계적인 지원 시스템이 아무래도 부족했던 1990년대에 이 같은 성적을 낸 것은 그야말로 '찐' 팬심이 바탕이 됐던 덕분이다.

김민우의 데뷔 시절 성적표를 보면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 1990년 5월에 데뷔한 그는 "자고 나니 스타가 됐다"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의 '벼락 인기'를 누렸다. 첫 타이틀곡인 '사랑일뿐야'는 나오자마자 길보드 차트를 점령했다. 곱상하게 생긴 20대 미소년이 부르는 사랑 노래에 소녀 팬들 호응이 엄청났다. 당대 최고 작곡가였던 하광훈이 작사·작곡을 전담한 이 노래는 김민우의 뼈를 깎는 노력이 더해지며 그를 '준비된 가수' 대열에 들어서게 했다.

그가 당대 최고 음반기획자였던 김광수 밑에 들어가 윤상, 하광훈, 박주연 등 송메이커와 함께 스파르타식 지도를 받은 세월만 꼬박 2년이었다. 지금이야 수 년째 연습생 생활만 하다 데뷔도 못하는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2년간 체계적인 가수 준비를 한 것은 상당한 공을 들인 과정이었다. 이 과정에서 하도 노래를 많이 부르다 보니 어디에서 숨을 쉬어야 하는지, 어느 부분에서 발성 포인트를 옮겨와야 하는지 몸이 기억할 정도로 숙련이 됐다.

노래도 좋고 얼굴도 잘생긴 데다 가창력까지 뛰어난 20대 젊은 가수가 등장하자 가요계 팬심이 일제히 김민우에게 집중됐다. '사랑일뿐야'가 가요톱10 골든컵(5주 연속 1위)을 따낸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후속 곡 '입영열차 안에서'로 신인이 한 앨범으로 가요톱10 골든컵을 두 개나 차지하는 기록을 세웠다. 이 기록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는 앞선 기록표를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당시 가요톱10 권위는 다른 어떤 차트와 비교해도 확실한 우위에 있었다. 가요톱10 골든컵을 받고 명예 졸업을 했다는 것은 그해 그 곡이 가요계에서 가장 인기 있었다는 의미였다고 해도 아무도 토를 달 사람이 없었다.

한 앨범에서 골든컵을 2회 따낸 가수는 김민우 외에 조용필, 박남정, 신승훈, 서태지와 아이들, 임창정밖에 없다. 한 해에 골든컵을 2회 따낸 가수로 범위를 넓혀봐도(앨범이 한 해에 두 개 나올 수 있다) 조용필, 윤수일밴드, 박남정, 신승훈, 서태지와 아이들, 룰라, 임창정에 불과하다.

시기를 불문하고 골든컵을 김민우보다 더 많이 3회 이상 수상한 가수 명단은 조용필, 이선희, 신승훈, 김건모, 서태지와 아이들에 불과하다. 1990년 김민우는 앨범 단 하나로 역사에 길이 남은 기라성 같은 가수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아티스트 반열에 오른 것이다.

데뷔곡 '사랑일뿐야'도 엄청났지만 후속곡 '입영열차 안에서'는 폭발적이었다. 노랫말을 보면 당대 상황을 잘 짚어낼 수 있다. 1990년대를 떠올리면 입영열차 안에서(작사 박주연·작곡 윤상)의 가사 '어색해진 짧은 머리를 보여주긴 싫었어/ 손 흔드는 사람들 속에 그댈 남겨두긴 싫어/ 삼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댄 나를 잊을까'가 떠오른다. 당시 군 복무기간이 이 정도로 길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또 하나의 곡은 015B가 만들고 윤종신이 노래 부른 명곡 '텅 빈 거리에서'다. '떨리는 수화기를 들고 너를 사랑해/ 눈물을 흘리며 말해도 아무도 대답하지 않고/ 야윈 두 손에 외로운 동전 두 개뿐'이란 가사에서는 당시 공중전화가 널리 보급됐고 요금은 20원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공교롭게도 김민우와 윤종신은 대원외고 3학년 같은 반 단짝 친구로 함께 음악활동을 하던 사이다.

문제는 '입영열차 안에서'의 성공에 자극받은 소속사가 노래처럼 김민우를 군입대시키는 최악의 패착을 둔 것이다. 사랑하는 연인을 두고 군입대하는 가수의 노랫말이 현실에 그대로 반영되도록 시나리오를 짰다. 노래의 가치를 최대한 증폭시키려는 고육지책이었다.

그래서 김민우는 멀쩡히 활동하던 무대를 놔두고 진짜 입영열차를 타게 된다. 시점도 어찌나 빨랐던지 '입영열차 안에서'로 받은 가요톱10 골든컵 트로피를 본인이 받지 못하고 가족이 대신 수상했을 정도다. 극적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시도였을지는 몰라도 이제 막 데뷔해 인기몰이를 하는 신인이 약 3개월간 활동하다 바로 군대에 가는 상황이었으니 다분히 무리수라 할 수밖에 없다.

그는 1992년 2월에 전역하고 활동을 재개했는데, 김민우의 데자뷔라 보일 정도로 쇼킹한 데뷔를 펼친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하며 가요계 판도가 흔들린 게 문제였다. 서태지와 아이들 역시 김민우와 마찬가지로 데뷔 앨범으로 골든컵 트로피를 2개나 들어올리게 된다. 문제는 김민우가 '구세대의 끝자락' 이미지였다면 서태지와 아이들은 '신세대의 선두주자'로 인식됐다는 점이다. 김민우는 활동기간이 3개월 남짓에 불과할 정도로 여전히 풋풋한 신인이나 다름없었는데 팬들은 서태지와 아이들 등장과 함께 2년 전 히트한 발라드 가수를 '한물 간 캐릭터'로 받아들이고 말았다. 그래서 이후 김민우 앨범은 데뷔앨범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흥행 랠리에서 멀어지고 만다. 1997년에는 빚을 내 만든 녹음실이 정신이상자의 방화로 전소되는 불운을 맞으면서 그는 신용불량자가 되고 만다.

이후 밤무대를 전전하던 그는 2004년 수입차 딜러 세계에 입문하며 피나는 노력 끝에 '스타 세일즈맨' 자리에 오르지만 이후 가족에게 다가온 불운으로 또 한번 좌절하는 상처를 겪는다.

김민우는 활동 기간 대비 임팩트가 가장 컸던 가수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그가 데뷔앨범으로 제대로 활동한 것은 고작 3개월. 그 3개월 사이에 골든컵 2개를 따냈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개인적으로 김민우는 '2옥타브 라'의 장인이라 부르고 싶다. '사랑일뿐야'의 최고음은 '그대는 나의 온몸으로 부딪혀 느끼는 사랑일뿐야'에서 '으'에 걸리는 '2옥타브 라'다. '휴식같은 친구'의 최고음 역시 후반부 클라이막스 '너를 자랑스러워 한다는 걸'의 '걸'에서 걸리는 '2옥타브 라'다. 요새 워낙 고음을 괴물같이 잘 소화하는 가수가 많아서 2옥타브 라의 가치가 폄하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김민우의 그것은 다르다. 음표가 2옥타브 파~솔 부근에 집중적으로 찍혀 있어 이를 소화하느라 피로한 성대를 이겨내고 깔끔하게 2옥타브 라를 질러야 한다. 또한 김민우는 이 구간을 풀톤 진성으로 지르기 때문에 여기서 음이 하나더 치솟아 내는 '2옥타브 라'의 느낌이 더욱 귀하다. 여러모로 잊힌 가수로만 남기에는 아까운 존재다. 최근 들어 그는 종종 음악활동을 하고 있다. 50대가 된 김민우는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할까.

[홍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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