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로 간 평화의 소 후손 추적기

2021. 2. 27.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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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필국 앵커 ▶

24년 전 홍수로 떠내려왔다가 김포 유도에서 구출됐던 '평화의 소'와 그 후손에 대한 추적기, 지난주 방송해드렸는데요.

◀ 차미연 앵커 ▶

네, 이번주엔 예고해드린대로 그 핏줄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또 하나의 공간, 제주도로 가보겠습니다.

이상현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 리포트 ▶

북한에서 홍수로 떠내려왔다 1997년 1월, 김포 유도에서 구출된뒤 제주 출신 암소를 신부로 맞이했던 '평화의 소'.

이들이 낳았던 송아지 7마리중 첫째였던 '평화통일의 소'가 새천년을 맞았던 2000년 1월 1일 새해 첫날, 엄마의 고향인 제주로 보내집니다.

김포에서 환송식을 거친 이 특별한 소는 비행기로 제주공항에 도착한뒤 차량을 타고 성산포항에, 그리고 배를 타고 우도에 입성했고, 우도에선 환영식도 펼쳐졌습니다.

이후 우도의 한 축산농가에 맡겨졌던 당시 두살배기 숫소 '평화통일의 소'는 제주의 암소들과 짝짓기를 해 수십마리의 새끼를 번식시킵니다.

[정현일/'평화통일의 소' 사육자(2002년 2월 26일)] "이게 (평화의소) 3세야 3세!..제일 큰딸..잘 생겼지?"

'평화통일의 소'가 사육되던 이 축산농가엔 기념 현판이 내걸렸고, 지역의 새로운 명소가 되면서 관광객들이 몰렸습니다.

또 왕성한 번식력을 보여주던 2005년엔 제주도민 체육대회에서 성화봉송 주자로까지 나서며 지역 주민들의 뜨거운 관심을 한몸에 받기도 했습니다.

그랬던 '평화통일의 소'와 그 새끼들, 지금은 어떻게 됐을까요?

지난주 김포에서 '평화의 소' 5세와 6세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던 취재진은 이제 또다른 '평화의 소' 후손을 확인하기 위해 그 우도로 향했습니다.

21년전 '평화의 소' 장남이었던 '평화통일의 소'가 옮겨질 때처럼 성산포항에서 배를 타고 십여분만에 도착한 우도.

바다에 누운 소의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해서 소 우 섬 도, 우도라 이름붙여졌다는 이 '소의 섬'에 소를 찾아간건데요.

섬 오른쪽 우뚝 솟은 봉우리엔 오래전부터 목장이 있었다고 합니다.

[김철수/제주도 문화관광해설사] "우도봉에 가면 분화구(가 있는데요), 우도에서 신생대 제4기 홍적세, 약 2백만년 전에서 1만1천여년 전에 수성화산이 폭발했는데 그 분화구가 조선시대 국유목장이었다고 합니다."

거센 바람으로 선박운항이 제한되는 날이 많아 한번 가보기가 힘들다는 우도의 선착장.

'소의 섬'답게 배에서 내리면 가장 먼저 소의 조각상을 마주하게 됩니다.

[관광객] "제주도 왔다가 우도 오기가 쉬운게 아니잖아요. 우리 일행이 제주도 3번 왔다가 오늘에서야 지금 온거에요. (바람 불어가지고 여기 온다고 왔다가도 (배를) 못타고 못타고 그랬어요.)"

이 선착장에서 100미터정도만 가면 나타나는 2층짜리 민박집.

[이상현 기자/통일전망대] "과거 평화통일 소가 사육됐던 축사가 있던 곳입니다. 이렇게 기념비도 만들어졌었는데요, 지금은 글자를 알아볼수 없을 정도로 많이 훼손돼 있습니다."

세월의 흔적이 새겨진 이 기념현판을 뒤로 하고 들어간 민박집 안쪽에선 과거의 축사가 지금은 창고와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었습니다.

5년전 소를 키우던 농장주인이 세상을 달리한 이후, '평화의 소' 후손들을 포함해 한때 백마리에 달했던 소들은 모두 팔려나갔다고 합니다.

새천년 첫날, 환영식까지 받으며 이곳에 왔던 '평화의 소'의 장남 '평화통일의 소'는 이곳에서 쭉 키워졌습니다.

[고흥범/제주 우도면 주민자치위원장] "신기해서 저희들도 평화통일 소가 어떤건지 구경한번 왔었는데 아 그냥 똑같은 소로구나..그 뜻이 좋아서 관광객들도 상당히 많이 왔다간걸로 알고 있어요."

그랬던 '평화통일의 소'는 2013년쯤 사망했고, 수십마리로 추정되는 그 새끼들 역시 축사가 없어지면서 이곳저곳으로 뿔뿔이 흩어졌다고 합니다.

우도 면사무소와 지역 주민들의 협조를 받아 흩어진 그 새끼들을 수소문해봤습니다.

그 결과, 지금은 우도에서 거의 유일하게 100마리 가까운 소를 키우고 있다는 농장을 알아냈고, 섬을 구석구석 찾아다닌 끝에 농장 주인을 만날수 있었습니다.

그 농장주의 안내를 받아 마주하게 된 육중한 암소 한마리.

[양희진/'평화의 소' 후손 사육] "북한서 내려온거니까 한번 키워보자 해가지고, 형님('평화통일의 소' 사육자)한테 송아지 한마리 파세요 하니까 한 세번째 낳은걸 (저한테) 팔아줬지요. 다른 송아지하고 비교하면 소가 틀리더라고요."

2005년쯤 '평화통일의 소'의 새끼, 그러니까 '평화의 소' 증손녀뻘인 3세 한 마리를 분양받았고, 그 소가 낳았던 송아지가 성장해 7~8년전 생산했던 암송아지, 그러니까 '평화의 소' 5세를 마침내 찾아낸 겁니다.

[양희진/'평화의 소' 후손 사육] "새끼 잘 낳고, 크고, 뚱뚱하고, 또 잘 먹고 그래서 이건 유심히 지켜봤죠. 거기(북한)서 온거니까.."

왕성한 식욕을 자랑하며 풀을 뜯고 있던 이 '평화의 소' 5세는 소띠인 이 사육자가 가장 아끼는 소라고 합니다.

"저도 소띠에요 (저도 소띤데) 저는 60년만에 오는 신축생이에요 신축생..올해 61세거든요."

'평화의 소' 5세는 지금까지 모두 5마리의 새끼를 낳았는데, 축사에서 다른 소들과 섞여 키워져서 지금은 구분하기가 어려워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배속에 6번째 새끼, 그러니까 '평화의 소' 6세를 임신한 상태여서 반년쯤 지나면 또다른 핏줄이 세상에 나오게 됩니다.

김포와 똑같이 제주에서도 '평화의 소' 5세와 6세가 확인된 셈입니다.

24년전 우연한 기회에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 됐던 '평화의 소'.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그 핏줄과 의미는 우리 사회 위쪽 끝에서 아래쪽 끝에서까지 살아 숨쉬고 있었고, 남북의 평화와 통일이 이뤄지는 그날까지, 지금처럼 대대손손 '우직하게'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통일전망대 이상현입니다.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replay/unity/6102552_2911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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