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외무성 고위 관료, 램지어 빌미로 '한국 거짓말' 주장하려다 철회"

2021. 2. 27.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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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외무성 홈페이지 / 사진 = 홈페이지 캡쳐

일본 외무성의 고위 관료가 '위안부는 매춘부'라고 주장한 존 마크 램지어 교수의 논문을 위안부 역사 왜곡의 증거로 삼으려다 철회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지니 석 거슨(한국 이름 석지영) 교수는 현지시간 26일 미국 매체 '뉴요커'에 올린 장문의 글을 통해 다니엘 스나이더 스탠포드대 교수와 나눈 대화의 내용을 공개했습니다. 스나이더 교수는 스탠포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 부소장을 역임한 인물로 전쟁의 기억이 아시아 국제관계에 어떤 관계를 미쳤는지 연구하는 아시아 전후역사 전문가입니다. 2015년 박근혜 정부 때 이뤄진 한일 위안부 합의의 배후에 미국 정부의 개입이 있었던 사실을 확인했다고 주장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기자로 일한 경력도 있습니다.

지니 석 거슨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 / 사진 = 본인 홈페이지

석 교수의 기고문에 따르면 스나이더 교수는 램지어 교수의 주장이 일본의 우익 역사수정주의자들의 주장과 일치한다고 말합니다. 석 교수는 또 "스나이더 교수가 말하길 일본의 고위 외무성 관료가 램지어 교수의 논문을 '한국의 입장이 거짓임을 나타내는 증거'로 인용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역사학자들이 램지어 교수의 논문을 검토한 뒤에는 램지어의 주장을 수용할 의도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고 전했습니다. 일본 극우세력의 주장을 '복붙'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램지어 교수의 논문을 빌미로 일본 정부가 '위안부 왜곡'을 정당화하려다, 논문의 결함이 드러나면서 발을 뺀 것으로 해석됩니다.

스나이더 교수는 램지어 교수를 둘러싼 한국 여론에 대한 우려도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석 교수는 기고에서 스나이더 교수가 "한국인들이 램지어를 뒤쫓을수록, 일본에서는 더욱 많은 사람들이 그를 옹호하려 할 것"이라면서 "이것은 해로운 역학관계"라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일본의 우익성향 언론들은 '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닌 자발적 매춘부'라는 램지어 교수의 논문을 소개하면서, 램지어 교수가 광적인 한국인들의 공격을 받고 있다는 취지로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석 교수에 따르면 램지어 교수는 논문에서 위안부 계약의 증거로 '오사키'라는 10세 일본인 소녀의 사례를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램지어 교수는 논문에서 옛 문서를 인용하면서 "오사키가 10살이 됐을 때 위안부 모집책이 300엔의 선급금을 제안했다. 오사키는 그 일이 수반하는 것이 뭔지 알았기 때문에 모집책은 그를 속이려고 하지도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10세 소녀가 스스로 성관계에 동의할 능력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에이미 스탠리 노스웨스턴대 교수가 동료들이 살펴본 결과 해당 문서에는 '오사키'가 위안소 업자에게 "이런 일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고 우리를 데려와 놓고 이제 손님을 받으라니, 당신은 거짓말쟁이다"라고 말한 대목이 적혀 있었습니다. 해당 문서에는 "첫날밤을 보낸 뒤 우리는 공포스러웠다. 남자와 여자가 하는 일이 이런 일인 줄 미쳐 몰랐다. 나는 너무 무서웠다. 우리는 좀처럼 믿을 수가 없었다"는 오사키의 말도 기록돼 있었습니다.

야마자키 토모코의 책 '산다칸 8번 매춘업소 : 일본 하층여성의 역사 탐구(Sandakan Brothel No.8: Journey into the History of Lower-class Japanese Women)' / 사진 = 아마존

오사키의 이야기는 1999년 발간된 야마자키 토모코의 책 '산다칸 8번 매춘업소 : 일본 하층여성의 역사 탐구(Sandakan Brothel No.8: Journey into the History of Lower-class Japanese Women)'에 담겨있는 내용입니다. 영문판 역자 서문에는 오사키가 '강제로(forced)' 매춘을 하게 됐다고 적혀있습니다. 당시 오사키가 간 곳은 인도네시아의 보르네오섬이었습니다. 일본 남단에서 3000km 이상 떨어져 있는 곳입니다. 램지어 교수는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때에 10세 소녀가 먼 이국의 전쟁터에서 군인에게 매춘을 했다는 사례를 바탕으로 '위안부는 매춘부'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 신동규 디지털뉴스부 기자 / easternk@mbn.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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