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는 일본에 위협 아닌 새로운 미래"
양국정부 반일·혐한 감정 악화 막지 못해
남·북·미 화해·협력 분위기에 日배제 실책
美의 한계 메우는데 지렛대 활용 했어야
日, 남북통일이 자신들 안보 흔들까 걱정
한반도발 평화 특수가 가져올 이익 간과
협력으로 다져진 안보틀, 中 패권 견제 가능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일본의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을 바라보는 한국과 일본의 시선은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일본은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철강, 조선 및 탄광 산업의 발전상과 급속한 산업화”의 증거로 여긴다. 반면 한국은 여기에 포함된 군함도 등에서 이뤄진 강제징용의 가혹한 피해를 알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군함도 등에 대한 평가는 ‘근대’를 바라보는 양국의 엇갈리는 시선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여기에 기반을 둔 각자의 국가적 정체성이 충돌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시작된 근대라는 시간은 일본에게는 ‘영광의 역사’이지만 한국에게는 ‘저항의 역사’인 것이다.
일본 구마모토현립극장 강상중 관장은 ‘한반도와 일본의 미래’에서 양국의 역사갈등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사정을 이렇게 분석했다. 그는 또 이 책에서 남북한의 화해, 협력에 일본의 역할이 중요하며, 그것이 일본의 미래에 긍정적으로 기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저자는 “‘전후 최악의 한·일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지금까지의 경위를 되짚어 봐야 한다”며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일 관계의 네 가지 한계를 인식해야 한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역사 문제는 인구, 환경문제, 북한이라는 지정학적 문제와 더불어 네 가지 한계 중 하나다.
해방 이후 역사 문제는 양국이 벌이는 갈등의 소재가 아니었던 적이 없으나 “한·미·일 삼국의 협력, 이를 바탕으로 안보, 경제 협력을 역사 문제와 분리해 우선 관리한다는 기조”를 비교적 잘 유지해 왔다. 특히 김대중과 오부치 게이조 양국 정상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발표한 1998년부터 드라마 ‘겨울 연가’의 히트로 상징되는 한류 열풍이 시작된 2004년 즈음까지는 최고의 관계를 구축했다.
그러나 이런 기조가 뒤집히며 한·일 관계는 수렁으로 빠졌다. 책에 따르면 일본 내에서 “혐한을 관과 민이 함께 공유하게 된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정권 말기에 행한 독도 방문과 천황에 관한 발언” 때문이었다.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독도를 방문해 한국의 영토임을 선언하고, 일왕의 방한과 관련해 “독립운동가들을 찾아 진심으로 사죄할 생각이면 오라”고 한 것이 일본의 감정을 건드렸다는 것이다. 박근혜정부가 중국에 크게 기울어지는 경향을 보인 것은 균열을 한층 심화시켰다.
미국의 압력에 떠밀려 2015년 ‘일본군위안부 합의’를 하고, 이듬해 방위 협정 ‘지소미아’까지 체결하며 갈등은 일단 봉합되는 듯했다. 하지만 문재인정부에서 2018년 강제징용 피해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을 인정하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고 ‘위안부 합의’에 따른 ‘화해치유 재단’이 해산되면서 갈등의 골은 깊어졌다.
이후 벌어진 사태가 현재진행형임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한국을 ‘수출 관리 화이트국’에서 배제한 일본에 한국은 같은 조치로 맞대응했고, 민간에서는 대규모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벌어졌다. 한국 정부의 지소미아 파기 검토는 “또 다른 파란”을 낳았다. 저자는 문재인정부의 국방비 증액이 일본에 대한 견제도 있을 것이란 분석도 내놨다. 저자는 최근 몇 년 사이 이런 흐름이 “경제, 안보, 역사의 영역이 한데 뒤섞이며 전면 대립의 양상을 띠고” 있으며 “양국의 정부는 ‘혐한’과 ‘반일’의 국민감정이 악화되는 것을 막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한반도의 평화는 일본의 미래”
저자는 양국의 갈등을 독해하기 위한 키워드로 ‘분단 체제’를 제시했다. 몇년 전 남북한과 미국이 극적으로 만들어 낸 한반도 화해, 협력의 분위기에 일본을 끌어들이지 못한 문재인정부의 실책을 지적하고, “분단 체제의 항구적 존속에 사활을 거는 듯한” 일본 정부의 태도를 꼬집으며 적극적인 역할을 조언한 대목이 흥미롭다.
2018년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여 이후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 남·북·미 정상의 판문점 만남이 이뤄지며 한반도에는 이전에 없던 평화의 분위기가 조성됐다. 하지만 일본은 뒷전으로 밀렸다. 저자는 “문재인정부는 남북의 우호와 화해를 도모하는 일과 한국과 일본의 의사소통을 강화하는 일,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추진해 나가는 복안적 외교 전략을 간과했다”고 적었다. 이는 미국의 제약으로 남북의 합의가 실천되지 못할 때 기대어 볼 수 있는 지렛대를 잃는 결과를 낳았다. “국력이나 친밀도라는 측면에서 한국 이상으로 미국에 중요한 우방”인 일본을 “한국이 가진 한계를 메우는 데” 활용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브레이크만 밟은 일본”을 향한 지적도 매섭다. 남북한의 화해가 “한반도 허리에 고착됐던 휴전선이 대한해협까지 남하해 일본의 안보를 흔들 것이라는 걱정”에 사로잡혀 ‘한반도발 평화 특수’가 가져올 이익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1960년대 한국과 국교를 정상화하며 60조엔 이상의 이익을 거둬들였다. 북한과의 국교가 정상화되면 여기에 못지않은 특수를 누릴 것이라는 게 저자의 판단이다. 그는 한반도에 얽힌 남북한과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의 이해를 일본이 주도하며 조정할 경우 “북한의 위협이 줄어들어 일본의 안전보장 비용 역시 큰 폭으로 줄일 수 있다”며 “중국의 패권 확대를 다국 간 안보의 틀 안에 가두는 동시에 미국과 중국 간의 소모적인 대립도 억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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