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증명하는 인간의 선한 본성

조성민 2021. 2. 27. 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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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이기적 존재로 여겨왔지만
프레임 깨고 발상의 전환 요구할 때
인류사회, 시작부터 이타성에 기초
모두 이기적이면 공동 생활 불가능
전쟁·재난 등 위기 때 이타성 보여줘
코로나시대 상상못할 연대 등 가능
2017년 8월 허리케인 ‘하비’로 물에 잠긴 미국 텍사스주의 한 도로에서 구조대원이 아이를 안은 여성을 대피시키고 있다. 당시 피해복구에 한창이던 텍사스주에는 12년 전 허리케인 ‘카트리나’ 때 도움을 받았던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 주민들의 지원금과 성원이 되돌아왔다. 트위터 캡처
휴먼카인드/뤼트허르 브레흐만/조현욱 옮김/인플루엔셜/2만2000원

인간의 본성이 선한가 아니면 악한가에 대한 논쟁은 문명의 역사와 함께했다. 치열한 논쟁이 계속됐지만, 근대 이후 점차 인간은 이기적이고 본질적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라는 가정이 우위에 서는 것처럼 비쳐졌다. 인간은 ‘이기적 유전자’, ‘루시퍼 이펙트’, ‘방관자 효과’ 등 다양하고도 악한 성향을 가진 모습으로 그려졌다.

현대 국가체계 역시 대부분 사회구성원을 이기적인 존재로 간주하고 설계됐다. 법과 제도, 규칙은 인간이 자신의 이익을 지나치게 추종하며 그에 따라 행동한다는 가정하에 만들어졌다. 세계 전반에 걸친 자본주의 경제 역시 인간이 자신의 욕구를 채우려는 동기를 기반으로 한 시스템이다.

책은 이렇게 덧씌워진 인간 본성에 대한 ‘프레임’을 깨고 발상의 전환을 요구할 때라고 주장한다. 인류 사회는 시작부터 이타성에 기초했다. 서로 따라 하면서 빠르게 학습했던 ‘모방을 통한 사회적 학습능력’을 통해 호모 사피엔스는 다른 종을 물리치고 살아남았다. 대규모 집단으로 살면서 서로 협력하는 과정을 통해 빠르게 공동학습했다는 것이다. 모두가 이기적이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전쟁과 재난 등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도 인간이 어김없이 선한 본성을 드러냈다는 사실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타이타닉호 침몰, 9·11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영화 ‘타이타닉’을 본 사람이라면 아마 모든 사람이 공황상태에 빠졌다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사실 당시 목격자에 따르면 대피는 매우 질서정연하게 이뤄졌다. 2001년 9월11일 일어난 미국 대폭발 테러사건 당시에도 빌딩이 불타오를 때 수천 명이 자신의 생명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침착하게 계단을 걸어 내려왔다. 그들은 심지어 소방대원이나 부상자가 지나갈 수 있도록 옆으로 길을 비켜주고, 서로 양보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당시 생존자들은 회상했다.

실상과 다르게 비친 모습은 우리의 기억을 왜곡시켰다. 저자는 범인으로 부정적인 현상만을 집중적으로 보도하는 미디어를 지목한다. 언론이 무수한 평화로운 순간들은 외면하고 예외적인 사건들만을 전파하기 때문에 부정적인 세계관을 확산한다는 것이다.
뤼트허르 브레흐만/조현욱 옮김/인플루엔셜/2만2000원
2005년 8월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뉴올리언스를 강타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폭풍이 지난 뒤 이 지역의 주택 80%가 물에 잠겼고 최소 1836명이 숨졌다. 그 주간 내내 신문은 도시 전역에서 벌어진 성폭행과 총격 사건으로 지면을 채웠다. 경찰서장은 언론 브리핑에서 도시가 무정부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델라웨어대 재난연구센터 연구팀이 당시 뉴올리언스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밝혀낸 것은 그로부터 몇 개월이 지난 뒤였다. 총소리처럼 들린 것은 가스탱크의 안전밸브가 펑하고 뽑히는 소리였다. 경찰서장은 공식적으로 보고된 강간이나 살인이 1건도 없었다고 인정했다. 약탈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으나 살아남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저지른 일이었다. 오히려 연구팀은 재난 속에서 일어난 행동 대부분이 친사회적이었다는 것을 밝혀냈다. 물에 갇힌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텍사스주에서 함대가 몰려왔고, 민간인 수백 명이 자발적으로 구조대를 조직했다. 이기심과 무정부 상태로 보였던 뉴올리언스에서는 실상 용기와 자선이 넘쳐났다.

위기 속에서 오간 친절과 온정은 연대의식을 이뤄냈다. 2017년 8월 허리케인 하비가 텍사스를 강타하자 뉴올리언스 시민들은 카트리나 때 받은 성원을 갚겠다며 지원물자를 보내고 자원봉사에 나섰다. 델라웨어대 재난연구센터에 따르면 1963년 이후 연구된 700여건의 재난 현장에서 살인, 강도, 강간 등 범죄율은 평소보다 감소하고 물품과 서비스를 분배하는 이타주의적 행태는 증가했다.

책의 제목인 ‘휴먼카인드’는 남성이 인간을 대표하지 않도록 ‘맨카인드(mankind)’ 대신 ‘휴먼카인드(humankind)’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인간은 친절하다(human is kind)’라는 메시지를 정확하게 전달한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인간 본성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얻을 뿐만 아니라 타인을 덜 냉소적이고 덜 적대적으로 보게 될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전 세계적인 위기를 함께 겪고 공멸과 연대의 갈림길에 선 우리에게 이 책이 주는 메시지는 적지 않은 희망이 된다. 인간 본성이 이기적이라는 프레임을 깬다면 지금까지 상상하지 못한 연대와 협력이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조성민 기자 josungm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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