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김문수.. 경기지사들의 대권 실패는 도청사 탓?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2021. 2. 27.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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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규의 國運風水]
[아무튼, 주말]
경기도청사·도지사 관사 풍수
경기도청사 인근, ‘방화수류정’이라는 누각이 보이는 화성의 용연(龍淵). 정조 임금은 이곳을 왕기가 서린 곳이라고 했다. 김두규 교수

불길한 운명으로 끝날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을 징크스(Jinx)라고 한다. 역대 경기도지사들의 연속된 대권 실패를 근거로 경기도지사들의 징크스를 이야기한다. 민선 이후 이인제·임창열·손학규·김문수·남경필 도지사들은 유력 잠룡에 꼽혔다. 정치인의 존재 이유이자 목적인 ‘권력에 대한 의지(Wille zur Macht)’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 도지사를 끝으로 맥없이 주저앉았다.

책임이 무거운 정치인에게는 생가와 선영보다 현재 그가 사는 일터와 집터의 영향이 일반인의 그것보다 훨씬 크다. 조선왕조 지관(地官) 고시과목 ‘탁옥부(琢玉斧)’에 “바람 부는 숲에서 새가 어찌 편히 잘 것이며, 센 물살 속에 물고기가 어찌 자유롭게 놀겠느냐(風林宿鳥焉有寧翼, 急水遊魚豈有縱鱗·풍림숙조언유녕익, 급수유어기유종린)”라는 문장이 있다. 바람[風] 부는 숲과 센 물살[水]은 잘 자리와 일터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한 까닭에 역대 경기도지사의 대권 실패가 청사와 관사 터의 잘못이라는 속설이 굳어졌다. “도청사의 혈처(穴處)는 팔달산에다 등을 대고 지어진 화장실 터이며, 그 주변인 신관·구관 터가 아니다. 청사 인근에 있는 지사 관저의 경우 용맥을 제대로 받지 못하였다. 산의 얼굴이 아닌 뒤통수에 자리하기에 혁명이나 배신을 할 터이다.”(권근호 풍수사). 그러나 ‘손가락 하나 굽었다고 온몸이 병든 것은 아니고, 뒤통수가 없으면 얼굴도 없다’는 것이 풍수 격언이다. 티가 있다고 옥이 아닌 것이 아니듯, 공간 배치 잘못이라고 길지가 흉지가 되지는 않는다.

과거 지식인들은 풍수설을 ‘불가신불가폐(不可信不可廢)’라고 하였다. ‘믿을 수도 없지만, 없앨 수도 없다’는 뜻이다. 나쁜 땅이라고 예단하자면 그 근거를 댈 많은 풍수서가 있다. 좋은 땅이라고 말하려면 그것을 뒷받침할 풍수서도 얼마든지 있다. 누구 말을 따라야 하며, 어떤 책을 믿어야 할까? 정조 임금이 그 답이다. 그는 조선 임금 가운데 가장 풍수에 정통했다. 그가 남긴 ‘홍재전서’ 57·58권은 오롯이 풍수서이다. 풍수 고전뿐만 아니라 당시 활동하던 풍수 관리와 재야 술사 수십 명의 주장들을 집대성하였다.

그런 그가 경기도청과 관사가 있는 팔달산을 왕기 서린 땅으로 보았다. 팔달산은 수원의 진산이다. 경기도 진산인 광교산이 구불구불 뻗어오다가 수원시를 관통하는 수원천을 만나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멈춰 서면서 일자(一字) 모양의 낮은 산(146m)으로 솟아난 것이 팔달산이다.

1794년 1월 18일, 정조 임금은 팔달산에 올라 이곳 지형 지세를 살핀다. 팔달산 정상은 “하늘이 만들고 땅이 지어낸[天造地設] 자리”이고, 관청이 들어설 곳은 “평지돌출 언덕으로 기가 모인 곳”이며,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명당수는 “버들잎[柳] 모양이므로 성을 쌓을 때 버들잎처럼 남북으로 길게 쌓아야 한다”고 했다. 또 북쪽 성곽이 들어설 산능선은 왕기를 상징하는 “一字文星(일자문성: 면류관 모습)”이며, 성 안으로 물이 유입되는 곳[得水處]에는 거북과 용이 서로 마주하는 형세라고 하였다. (현재 ‘방화수류정’이란 누각이 있는 언덕과 연못 ‘용연’을 가리킴). 정조의 이러한 발언은 제왕의 땅임을 말하고자 함이었다.

제왕의 땅인 경기도청사와 관사는 왜 여태껏 제왕 배출을 거부했을까? 정조는 터가 억만년 왕업을 이어지려면 “인화(人和)”가 필수라고 하였다. 그가 말한 ‘인화’는 무엇일까? 성곽을 쌓을 때 몇몇 민가들이 철거될 예정이었다. 이를 본 정조는 성곽 때문에 민가가 철거된다면 그것은 “인화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즉 ‘인화’란 ‘국민의 삶’이다. 역대 도지사들의 대권 실패는 ‘인화’에서 틀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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