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 코리아] ‘정권 방탄’ 거부한 민정수석에게 벌어지는 일

최경운 정치부 차장 2021. 2. 27.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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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보호, 檢인사 정상화 사이에서 중재 시도했지만
정권 변호인 되기 거부하자 주류 세력의 경고와 조리돌림
사퇴소동 끝에 출근한 신현수 민정수석이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 참석해 앉아있다. /연합뉴스

2019년 10월, 더불어민주당 사람들의 ‘짜증’ 지수는 치솟고 있었다. 검찰의 조국 전 법무장관 수사 때문이었다. 그즈음 윤석열 검찰총장을 상대로 열린 국회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사람들의 짜증이 폭발했다. 평소 합리적이란 평을 들었던 한 여당 의원이 야당에 “조국팔이 좀 그만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더니 윤 총장에게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를 비교하면 어느 정부가 검찰 중립을 보장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윤 총장 대답이 뜻밖이었다. 그는 “이명박(MB) 정부 때 수사가 쿨했다”고 답했고, 이 의원은 당황한 듯 화제를 돌렸다.

윤 총장이 MB 정부를 수사하기 ‘쿨’했던 시절로 꼽은 속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최근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 사표 파동에서 이 장면을 떠올렸다. 윤 총장은 당시 대검 중수부 등에서 근무하면서 대통령 최측근을 수사했다. 이 측근은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해외로 나가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정권 창출에 공(功)이 있는 측근을 비리 혐의로 구속하겠다고 달려든 검찰에 대통령은 난감한 처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검사 출신 민정수석이 대통령을 설득했고, 결국 이 측근은 귀국해 검찰 수사에 응했다고 한다.

정치권에서 민정수석은 ‘대통령의 변호인’으로 불린다. 검사 출신 법조인들도 “대통령 주변 인사 수사에 쿨한 민정수석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고 말한다. 검사 출신인 신 수석도 검찰 인사·조직을 정상화해달라는 윤 총장의 요구를 어느 정도 수용하면서도, 검찰의 권력 인사 관련 수사의 불똥이 대통령에게 튀는 것은 막으려 했을 것이다. 정권 실력자 비리를 수사하다 좌천된 검사를 수사권 없는 골방에 계속 박아두고 정권 방탄에 앞장서온 친(親)정권 검사를 유임·영전하는 인사안(案)에 신 수석이 사표로 맞선 것도, 검찰 편을 들었다기보다 ‘쿨한 민정수석’과 ‘대통령 변호인’ 사이 어디쯤에서 절충점을 찾으려다 좌절한 것 같다고 그의 한 지인은 전했다.

이 지인은 “신 수석은 민정수석이 ‘대통령 변호인’에서 더 나아가 ‘정권 전체의 변호인’이 되기를 바란 정권 주류 세력의 벽에 막힌 것 같다”고 했다. 지난 1월 초 부임한 신 수석은 여당이 추진하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에 우려를 나타냈고, 대통령도 ‘속도 조절’을 주문했다고 한다. 그러나 신 수석을 향해 “왜 우리 편에 서지 않느냐”고 압박한 여당은 신 수석 사표 파동 이후 더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검찰 수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진 여당 인사들이 그 선두에 섰고, 여당 출신 법무장관은 “당(黨)이 정하면 따르겠다”고 했다. ‘당 우위’를 내세우며 검찰을 무력화하려는 여당 주류 세력에 맞서, 민정수석이 대통령을 설득해 타협책을 모색하는 건 애초 불가능했다.

과거 정부 때 집권당의 최고 실력자는 자기가 추천한 인사에 대한 민정수석실의 검증이 깐깐하게 진행되자 “대선 때 몇 만표를 갖고 온 사람인지 아느냐”며 민정수석을 압박했다고 한다. 그 뒤로도 인사가 빨리 진행되지 않자 여의도 정가에 민정수석 일가(一家)의 재산 관련 의혹이 흘러다녔다. 현 여당 의원은 “이런 행태는 비열하다”고 했지만, 때마침 신 수석이 사의를 굽히지 않자 그의 부동산 증여 내용이 정가에 돌았다. 사의를 굽히지 않은 신 수석은 후임자 물색이 끝날 때까지 일하기로 하고 청와대로 복귀했다고 한다. 그런 신 수석에게 “왜 다시 돌아왔느냐”고 하는 친문 인사들도 있다고 한다. 그는 지금 ‘정권 방탄’ 역할을 거부했다가 권력의 거친 조리돌림을 경험하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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