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희의 영화 같은 하루] [7] 내겐 지켜야 할 약속과 잠들기 전 가야 할 길이 있다
멕시코 국경에서 출발하여 미 대륙을 종단하고 캐나다 국경에서 끝나는 종단길 PCT(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하이킹 경험이 없는 셰릴은 겁도 없이 자기보다 큰 배낭을 메고 4300km나 되는 이 험난한 길을 혼자 걷는다.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영화 ‘와일드(Wild ·2015)’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힘이 되던 존재, 어머니를 잃고 약과 술로 스스로를 망가뜨리던 셰릴이 무작정 나선 PCT 종주에서 자신을 치유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PCT는 강도의 위험은 물론, 위험한 들짐승과 마주칠 수도 있고 탈진한 채로 죽을 수도 있는 길고도 험한 길이다. 요령이 없는 셰릴은 몸도 마음도 벼랑 끝까지 몰린 채로 혼잣말을 하며 터벅터벅 걷는 수밖에 없다.
‘몸이 그댈 거부하거든 몸을 초월하라(If your nerve deny you, go above your nerve).’ ‘내겐 지켜야 할 약속과 잠들기 전 가야 할 길이 있다(I have promises to keep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 멍하니 에밀리 디킨슨과 로버트 프로스트의 말을 되뇌며 간신히 한 걸음씩 발을 떼는 셰릴. 그저 한 걸음씩이라도 발을 떼는 것밖에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게 몸과 마음 모두 탈진한 채로 모든 걸 비우고 야생을 걸은 지 94일째, 셰릴은 드디어 종착점에 도착한다. 구체적인 조언을 건네는 누군가도 없었고 손을 꼭 잡아주며 위로하는 누군가도 없었다. 그저 수없이 자문하고 걸었을 뿐. 그렇게 모든 것을 텅 비운 후에야 깨달음에 도달한다.
‘무성한 슬픔의 숲에서 나를 잃어버린 후에야, 숲에서 빠져나오는 길을 찾아냈다(After I lost myself in the wilderness of my grief, I found my way out of the woo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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