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그 소설의 결말, 나만 궁금했던 게 아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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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원평의 소설 '아몬드'(2017년)에는 몇몇 끔찍한 장면이 묘사돼 있다.
그중에서도 크리스마스이브에 벌어진 한 남성의 살인사건 장면은 책장을 덮은 뒤에도 생각이 난다고 하는 독자들이 많다.
손원평은 그랬던 그가 한 소녀의 선의를 마주하며 바뀌는 내용을 별도의 단편소설로 내놓았다.
김려령은 이번 책에서 '언니의 무게'를 통해 동생 천지가 죽은 뒤 남겨진 언니 만지의 안부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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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혹한 장면을 목격하고 홀로 남겨진 윤재를, 우리와 같은 시선에서 바라본 소설 속 인물은 없었을까. 작가는 사고 현장에서 스무 걸음쯤 떨어져 있던 한 남자를 주목한다. 그에게는 어린아이를 구해주다 트럭에 깔려 만신창이가 된 형이 있다. 남자는 형을 보면서 ‘절대로 나와 상관없는 일에 뛰어들어서는 안 된다’고 다짐한다. 크리스마스이브 사건 때 그가 나서지 않은 이유다. 손원평은 그랬던 그가 한 소녀의 선의를 마주하며 바뀌는 내용을 별도의 단편소설로 내놓았다.
이 단편 소설집은 기존 발표 작품에서 주인공이 아닌 주변 인물의 시선에서 본 새로운 세계를 담았다. 어떤 소설의 결말은 너무 소중해 다음을 생각할 수 없다지만, 독자로선 내심 마음 쓰이던 인물의 안부가 그리울 때도 있다.
이 책은 이런 아쉬움을 해소해준다. 이현의 ‘1945, 철원’(2012년) ‘그 여름의 서울’(2020년), 김종미의 ‘모두 깜언’(2015년), 구병모의 ‘버드 스트라이크’(2019년), 이희영의 ‘페인트’(2019년), 백온유의 ‘유원’(2020년) 등 8개 작품의 뒷이야기를 엮었다. 이 책은 창비청소년문학 100권째 발간을 기념한 기획이기도 하다. 이름을 올린 작가들은 ‘창비청소년문학상’이나 ‘좋은 어린이책’ 공모전 대상 수상자들이다.
김려령의 ‘우아한 거짓말’(2009년) 독자들도 등장인물들과 오랜만에 반가운 인사를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한 번쯤 ‘남은 사람들은 잘 살까?’라는 질문을 되뇌었을 법하다. 우아한 거짓말에는 엄마 현숙과 언니 만지, 막내 천지가 나왔다. 셋 중 가장 밝았던 천지가 갑작스레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됐다. 만지는 우연히 천지가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한 사실을 알게 됐다. 천지는 죽기 전 5명에게 편지를 남겼는데, 등장인물들의 회상과 천지의 독백으로 과거의 일이 서서히 밝혀졌다.
김려령은 이번 책에서 ‘언니의 무게’를 통해 동생 천지가 죽은 뒤 남겨진 언니 만지의 안부를 전한다. 만지는 동생이 겪은 괴롭힘을 막아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빠져 산다. 천지를 괴롭힌 아이에게까지 마음을 쓰는 언니로서의 무게가 가슴 시리게 담겼다. 만지에게 엄마 현숙이 전하는 “너는 너로만 살라”는 위로 한마디는 묵직하게 다가온다.
원작을 읽어야만 즐길 수 있는 책은 아니다. 원작 속 세상 이전 혹은 이후의 새로운 주인공을 내세우기도 했다. 미래세대의 새로운 생명을 그린 소설 ‘싱커’(2010년)의 저자 배미주는 한 역학조사관이 기후변화로 물에 잠긴 옛 서울로 파견되는 이야기를 그렸다. 완성도 높은 신작 소설집이자, 원작으로 이끄는 매력을 갖췄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문득 세 번째, 네 번째 엔딩을 그리게 된다. 작품 속에서 스쳐지나간 인물이라도 모든 삶은 조명 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첫 번째, 두 번째 작품에서 주인공이 아니었던 인물들도 모두 행복하기를 바라본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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