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예쁜 쓰레기를 거부한다

김민지 풀뿌리 여성주의 활동가 2021. 2. 27.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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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늦은 밤 기분 좋게 세수를 마치고 화장대 앞에 앉았다. 기초화장품 한두 가지만 겨우 쓴다고 생각했는데 화장대에는 의외로 이런저런 병이 꽤 있다. 마트에 장보러 갔다가 충동구매한 발뒤꿈치크림, 친구가 선물로 준 핸드크림, 손님이 쓰다가 두고 간 스킨까지 알록달록 다양한 병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문득 이 알록달록한 화장품병의 뒷면까지 보고 싶어졌다. 나는 얼마나 쓰레기를 만들고 있을까.

김민지 풀뿌리 여성주의 활동가

크림도 스킨도 모두 PP(폴리프로필렌)와 페트 재질이라니 재활용은 되겠구나 싶었는데 마트에서 충동적으로 샀던 튜브형 화장품이 발목을 잡는다. other라고 쓰여 있는 이상 재활용은 무리라고 보면 된다. 사실 잘 바르지도 않아서 언제쯤 내 화장대를 떠날지 알 수 없지만 내 손을 떠난대도 결국 지구 어딘가를 돌아다닐 플라스틱 쓰레기가 될 운명이다. 그래도 나머지 병만큼은 재활용되는 소재라 잘 샀다 싶어 마음을 놓으려다 아차 하고 깨닫는다. 저 예쁜 하늘빛 스킨은 사실 내용물은 하얀색이고 병이 파란색이다. 투명한 페트 생수병을 따로 분리배출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페트류라 해도 색이 들어간 이상 재활용으로의 가치는 뚝 떨어진다.

물론 예쁜 병에 담겨 있는 화장품이 눈에 먼저 들어오지만 세상 모든 예쁜이들을 다 ‘내돈내산’ 할 수는 없는 법, 결국 화장품은 겉모습보다 내 피부에 맞는지 성분이 괜찮은지를 더 염두에 두고 살 수밖에 없다. 게다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부러 환경을 괴롭힐 마음이 없다. 처음부터 용기에 재활용이 가능하다 혹은 어렵다라고 쓰여 있다면 사람들은 대개 재활용되는 병에 든 제품을 살 것이다. 그러니 달랑 소재만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진짜 재활용이 되는지 여부를 알려준다면 소비자들은 예쁜 쓰레기 대신 기꺼이 환경을 택할 수 있다.

사람들은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제품을 끝까지 털어쓰고, 있는 힘껏 짜서 쓰고, 또 열댓번 물로 헹궈 말린 뒤, 요일에 맞춰 재활용쓰레기로 내어놓는 수고를 감내한다. 100년, 아니 어쩌면 500년까지 지구에 남는다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려는 마음으로 이 모든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지만 정작 재활용되는 화장품 용기는 대략 10% 수준이라고 한다.

이미 계도기간을 거쳐 올해부터 포장재에 ‘재활용 최우수’ ‘재활용 어려움’처럼 재활용등급에 대한 정보를 의무적으로 표기해야 했지만 화장품업계는 환경부와의 협의를 통해 또 이 법안을 빠져나갔다. 포장재등급을 표시하는 대신 공병을 회수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다 쓴 화장품 용기를 매장으로 가져다주면 이전보다는 더 환경에 도움이 될 거라 기대할 테고 또 매장마다 공병을 잔뜩 모아둔 모습이 뭔가 그럴듯한 뿌듯함을 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재사용이 가능한 체계를 만들고, 단일소재로 병을 만들어 재활용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소비자들이 기대하는 수준을 맞출 수 있다. 당연하게도 단순히 병만 모은다고 환경에 도움이 될 수가 없다. 새로운 공병회수 정책이 진심으로 환경에 대한 우려를 담았기를 바란다. 화장품업계는 2030년에는 재활용 어려움 용기를 없애겠다고 선언했다. 소비자들은 그저 10년을 다시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예쁜 쓰레기만큼 죄책감이 쌓여간다.

김민지 풀뿌리 여성주의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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