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어린이를 보는 눈, 어린이가 보는 것

김지은 서울예대 문예학부 교수 아동문학평론가 2021. 2. 2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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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엄마는 내가 엄마 책에 나오는 마래였으면 좋겠지?”

김지은 서울예대 문예학부 교수 아동문학평론가

황지영의 동화 <리얼 마래>에 나오는 문장이다. 열두 살 마래는 태어나면서부터 부모의 블로그에 연재되는 삶을 살았다. 가볍게 육아일기를 올리던 마래의 부모는 함께한 책과 여행담을 비롯해 마래가 성장하며 겪은 중요한 순간을 블로그에 올린다. 자유롭고 진취적인 마래 가족의 육아 이야기는 양육자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얻는다. 그러나 정작 마래는 자신의 이미지와 스토리를 미디어에 게시하고 전파해도 된다고 말한 적이 없다. 아기였을 때는 동의 자체가 불가능했고 지금은 전혀 원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부럽다,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고통을 받는다. 고민하던 마래는 부모에게 더 이상 자신에 관한 어떤 사실도 미디어에 올리지 말라고 선언한다. 마래의 부모는 당혹감을 느낀다.

우리 사회는 미디어 속의 어린이, 어린이와 미디어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는가. 어린이는 어른과 동등한 초상권과 인격권이 있는데 그 권리를 인지하기도 전에 침해당하는 경우가 많다. 권리의 침해자는 가족부터 여행지에서 만난 모르는 어른까지 다양하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보면 어린이 사진은 제한적으로, 종종 제한 없이 유포된다. 귀여워서, 좋은 의도로 찍은 사진이니까, 아이가 괜찮다고 했으니까 게시해도 된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 결코 아니다. 최소한 보호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신원이 드러나는 사진을 삭제해달라고 요청하면 아직 아이인데 뭐 어떠냐는 대답을 들을 때가 있다. 그러나 ‘어린이’의 자리에 어른을 대입해보면, 왜 안 되는지 바로 깨달을 수 있다. 누군가가 “당신이 아름다워서 찍었다”면서 클로즈업한 신체 사진을 게시하고 유포한다면, “괜찮아요. 저를 예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할 수 있을까?

보호자가 게시에 동의해도 문제는 남는다. 어린이는 어른보다 더 많은 범죄의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2016년 페이스북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났던 ‘마더후드 챌린지(Motherhood Challenge)’에 대해 프랑스 헌병대가 메시지를 내보낸 적이 있다. 이 챌린지는 자녀 사진 3장을 올리고 다음 사람을 지목하면 그가 또 3장을 올리면서 가족애를 공유하는 것이었다. 헌병대는 “부모가 자녀들의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는 일은 아주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프랑스는 2016년 10월7일부터 정보처리와 자유에 관한 법(Loi informatique et libertes) 제40조 안에 ‘미성년자들을 위한 잊혀질 권리(droit a l’oubli pour les mineurs)’라는 특별 조항을 마련했다. 양육자나 친구가 제한된 지인에게만 사진을 배포하는 경우 이 조항에 저촉되지 않지만 그 지인이 어린이의 사진을 재배포할 가능성까지 통제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이를 염두에 두고 행동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어린이의 초상권과 인격권을 엄격히 존중하는 사회 분위기가 있어야만 어린이들도 자신과 타인의 이미지를 신중하게 대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근본적인 문제는 어린이의 이미지와 범죄의 연결고리를 도려내지 못하는 우리 사회에 있다. 지난 25일에도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인물의 얼굴이나 특정 부위를 합성한, 일명 ‘딥페이크’ 기술로 제작된 허위 영상물을 SNS에 유포한 혐의로 10대와 20대 남성이 6명이 검거되었다. 경찰은 유사한 범죄 13건에 대해 내사를 진행 중이며 이러한 불법 허위 영상물의 대다수가 속칭 ‘지능’이라고 불리는 지인능욕물이라고 밝혔다. 10대 가해자의 지인인 피해자는 10대일 가능성이 높다. 위험을 모르는 어린이들은 미디어에 사진을 올리고 그 사진은 범죄의 표적이 된다. 1인 미디어 안에서 벌어지는 범죄에 촉각을 기울여야 하고 강력한 수사와 처벌 의지를 보여야 한다. 이것이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대전제다. 그래야 교육도 설득력을 갖는다.

김지은 서울예대 문예학부 교수 아동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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