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왕설래] 분노의 포도

강호원 2021. 2. 26.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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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사랑하는 사람은 증오하지 않으며, 땅을 위한 기도에는 저주가 없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존 스타인벡이 소설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에 쓴 글이다.

정부가 주택 공공개발에 나섰다.

세 든 이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를, 집주인은 헐값에 땅을 빼앗기지 않을까를 걱정한다.

얼마나 많은 '분노의 이주'가 기다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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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사랑하는 사람은 증오하지 않으며, 땅을 위한 기도에는 저주가 없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존 스타인벡이 소설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에 쓴 글이다.

1900년대 초반 미국 오클라호마주. 땅을 사랑한 그들은 삶의 터전인 농장을 떠나야 했다. 밀려드는 대규모 농업자본. 삽과 괭이로 일군 밭으로는 먹고살기조차 어렵다. 그들의 옥수수는 이미 가격 경쟁력을 잃어버렸으니. 서부 캘리포니아로 떠난다. 태평양의 햇살 아래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 면화밭…. 그곳에서는 먹고살 걱정만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하지만 일자리가 없다. 벌써 그곳엔 수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가장 노릇을 해야 하는 장남 톰 조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성직자의 눈에는 어찌 비쳤을까. 짐 케이시 목사, “제대로 살지도 못하는데 천국의 희망이 무슨 소용이겠어? 우리의 영혼이 슬픔에 잠겨 기가 꺾였는데….” 절망 속에 싹튼 분노는 포도알처럼 맺혔다.

우리 역사는 더 아프다. ‘전두환 시절’인 1980년대. 서울은 만원이었다. 서울로 몰려든 사람들. 몸을 누일 집조차 없다. 주택 500만호 건설 계획이 세워진 것은 그때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무허가 판자촌을 허물었다. 아파트를 지어야 했으니. 상계동 아파트단지가 들어선 것도 그즈음이다. 그곳에 살던 사람들은 어찌 됐을까. 눈물을 머금고 떠나야 했다. 판잣집과 움집 지을 곳을 찾아. 1980년대의 저항. 그런 시대 상황이 또 하나의 배경을 이룬다.

정부가 주택 공공개발에 나섰다. 서울에만 32만호를 짓겠다고 했다. ‘뻥튀기한 숫자’라고도 한다. 어디를 개발할까. 쪽방촌에는 걱정이 태산처럼 쌓인다. 세 든 이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를, 집주인은 헐값에 땅을 빼앗기지 않을까를 걱정한다.

임대주택을 주겠다는 달콤한 약속. 믿어도 될까. ‘캘리포니아에 가면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환상과 엇비슷하다. 왜? 아파트는 언제쯤 지어질까, 그때까지 어디에서 버텨야 하나, 임대보증금은 또 어찌 마련해야 하나…. 절망의 한숨들. 얼마나 많은 ‘분노의 이주’가 기다릴까.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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