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호의문학의숨결을찾아] 서울의 '마지막 산동네'에서
새 둥지 마련한 지인의 문학 응원
그가 본래부터 나와 교분을 맺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나와는 다른 동네의 사람이었다. 언젠가 어떤 문학상 시상식에서 이야기하는 그를 관찰해 본 적이 있는데, 아주 유머러스하고도 엉뚱해 보여서 천상 글 쓰는 사람이겠구나 했다.
이 부근에 오면 나는 가끔 작고한 작가 김소진의 단편소설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를 생각하곤 한다. 그는 아마도 이 근방 어딘가에서 성장한 사람이었을 텐데, 작가가 되고 나서는 일산에 가서 살았고, 어렸을 때 살던 산동네를 찾아가 보는 이야기가 바로 이 소설이다. 작중에서 그의 유년의 산동네는 철거가 한창 진행 중이다.
그러면 또 나의 머릿속은 내가 대학에 다니던 1980년대 중후반의 산동네 풍경 쪽으로 옮아간다. 그 무렵에는 지금은 아파트 지대로 변모한 봉천동, 신림동이 온통 가난한 사람들의 판자촌과 구옥 밀집 지대들이었다. 나 또한 대학 1학년의 기숙사 생활을 뒤로하고는 봉천고개 어느 산동네 집에서 자취를 했던 기억도 있다. 보증금 50만원에 월세 5만원, 철대문 옆에 푸세식 변소가 달렸고, 건물 뒤로 돌아가서 연탄 아궁이가 있는 문으로 출입하는 좁디좁은 골방이 대학 2학년생의 거처였다.
봉천동, 신림동만 아니라 노량진도 지금은 아파트 지대로 바뀌었지만 아주 늦게까지 산동네로 남아 있었다. 상수도 설비조차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아 대문 열고 들어가면 우물물을 쓰고 연탄광 위에 방을 들여 자취생을 받는 집들이 즐비했다. 그 무렵 목동 개발이 시작되었지, 이 개발은 동전의 이면에 구옥, 무허가주택 철거, 철거반대 시위, 도시빈민운동 같은 그늘을 품고 있었다.
장위동이라고 했다. 그의 설명으로는 서울의 마지막 산동네나 다름없다고도 했다. 아직도 서울은 여전히 개발 중이고 옛날식 산동네도 더러더러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이 근방이 현재의 서울에서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동네라는 것이었다. 이차선 ‘큰길’에서 언덕 위로 통하는 골목 어귀에서 그를 만나 길안내를 받으며 차를 몰고 올라가는데, 양옆으로 차가 한 대밖에 들어갈 수 없는 골목들이 늘어서 있다.
이런 골목에 차들이 여섯 대까지도 차례로 들어가 있는 것이 보인다. 막다른 골목 가장 안쪽의 차를 빼려면 바깥쪽의 차들 다섯 대를 차례대로 빼주어야 할 것이다. 어떤 골목은 차 한 대도 들어갈 수 없는, 리어카나 들어갈 수 있을 골목이다. 그러면 나는 또 나와 아주 가까운 사람들이 살던 개발 이전의 합정동 옛날 골목들을 떠올린다. ‘큰’ 골목에서 예닐곱 계단쯤 올라가서 들어가는 좁은 골목에 보증금 200만원짜리 월셋집에 그네들이 살았다.
이 장위동 산동네의 가장 높은 골목 어딘가에 그가 새 거처를 마련한 것이었다. 그의 불운을 안쓰러워하며 따라 들어간 그의 새로운 거처는 뜻밖에도 아늑해 보인다. 비록 옛날집 냄새가 이질감을 느끼게 하기는 해도 방바닥은 따뜻하고 창문 바깥으로는 잘 자라는 나무들과 가지 위에 둥지를 튼 까치들도 보인다.
책들을 둔 서재까지도 따로 둘 수 있다는 너스레와 함께 둘러본 책장에는 오래된 책들, 옛날 작가들의 작품집과 희귀한 철학책, 인문서들이 빼곡하다. 이것들을 다 어떻게 여기까지 옮겼을지 지난 보름 동안 짐을 옮기고 정리한 그의 노력이 ‘가상하기까지’ 하다.
그는 이제 다시 열심히 쓰겠다고 했고, 나는 그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해 주었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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