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정 "나는 노배우..'미나리' 경악스러운 작품" [종합]
정이삭 감독 "자전적 영화, 배우들의 힘 컸다"
윤여정 "아무 생각 없이 촬영, 놀라운 반응"
"제가 할리우드 배우도 아니고 경험이 없어요.
26관왕이라고 하는데 아직 받은 상패는 1개 뿐이에요."
'미나리'로 세계적인 이목을 집중시킨 윤여정이 26관왕이라는 대기록의 소감을 전했다. 26일 진행된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축하해 주셔서 감사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영화 '미나리'는 80년대 초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기 위해 미국 아칸소로 떠나온 한국 가족의 평범하고도 특별한 이야기를 담았다.
자신만의 농장을 만드는 아빠 제이콥(스티븐 연)과 생계를 위해 익숙치 않은 병아리 감별사 일을 시작한 엄마 모니카(한예리), 딸 앤(노엘 케이트 조), 장난꾸러기 막내 데이빗(앨런김)이 한국에서 미나리씨를 가지고 온 할머니 순자(윤여정)와 묘한 화음을 이루며 사는 모습을 보여준다.
'미나리'는 정이삭 감독의 자적적 이야기다. 그는 실제 미국에 이민 온 부모님을 두었으며, 1978년 미국 콜로라도 덴버에서 태어나 영화의 배경이 되는 미국 남부 아칸소의 한 작은 농장에서 자랐다.
정이삭 감독은 "한인 이민자의 이야기와 한국적 요소들이 있다. 당대 미국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했다. 이민자와 미국 농민의 삶에 대한 연구를 했다. 당시 갖고 있던 기억을 디테일하게 담으려 했다"고 밝혔다.
정 감독이 가장 자신있게 강조한 부분은 바로 배우들의 연기였다. 그는 "배우들이 그 시절의 감정과 정서를 잘 연기해준 것"이라고 했다.
이어 "제작, 연출을 하며 중요한 것은 이 영화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예술인(아티스트)가 되도록 도움을 주는 거다. 각각의 분들이 최대한의 힘을 내도록 독려하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개인적 아이디어를 실행한게 아니라 하나의 힘으로 이뤄낸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미나리'는 고정관념과 감상주의에서 벗어난 이야기라는 극찬을 받으며 국경이나 문화를 뛰어 넘어 가족에 대한 의미를 다시한번 생각해보는 계기를 만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에 대해 정이삭 감독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은 영화라 신기하고 놀랍고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공감대를 일으키는 이유는, 이민자에 대한 이야기, 시대적 상황을 담는 이야기라서가 아니라 보편적인 인간 관계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 감독은 배우들에게 공을 돌렸다. 그는 "깊이있는 연기력을 보여주셨다. 모든 배우들이 열린 마음을 갖고 배역에 임했다. 얼굴 표정만 봐도 인간애가 묻어나는 연기를 섬세하게 해주셨다"고 애정을 드러냈다.
윤여정은 "처음에 아이작(정이삭 감독)의 이야기라고 해서 그의 할머니를 연기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선생님이 알아서 하라고 하더라. 그래서 속으로 A+를 주고 괜찮다고 생각했다. 배우를 가두지 않는 감독"이라고 칭찬했다.
이어 캐릭터에 대해 "모두들 제가 코미디 같이 등장했다고 하는데 코미디 한거 아닌데 자꾸 코미디라고 한다. 제가 그렇게 계획적으로 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렇게 보셨으면 괜찮다. 자유롭게 보실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제이콥 역의 스티븐 연은 연기와 제작을 동시에 맡았다. 그는 "저 또한 어린시절 미국으로 이민을 온 2세대 이민자"라며 "이 영화로 아버지에 대해 이해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그는 "아버지를 아버지란 주체로 보기보다는 문화적, 언어적 장벽들이 존재했기 때문에 개념적, 추상적으로 봤었다. 하지만 이 영화를 통해 많이 이해하고 아버지란 '사람'에 대해 많이 알게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제이콥 롤 모델로 삼았다고 말할 수 없지만 배역을 소화해 나가면서 '내가 내 아버지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틀에 박힌 아저씨의 모습을 연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 시절 제이콥 자체를 제가 공감하는 모습으로 연기하고 팠다"고 힘주어 말했다.
한예리 또한 "저희 세대에 있는 친구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부모님과 그 세대와 소통할 수 있는 계기를 갖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 저 역시 부모님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다"고 거들었다.
배우들은 촬영 기간 내내 같은 숙소에서 지냈다. 촬영이 끝난 후에도 한집에서 같이 살면서 가족처럼 옹기종기 모여 수다를 떨기도 하고, 영화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했다고 한다.
정이삭 감독은 가족 간 대화를 한국어로 썼는데, 미국에서만 살아온 그의 대본은 대부분 문어체였다. 그래서 배우들과 직접 아이디어와 의견을 내어 대본을 더욱 사실적으로 만들어갔다.
한예리는 "윤여정 선생님 등과 함께 에어비앤비에서 함께 지냈다. 번역본을 문어체에서 구어체로 가깝게 바꿀 수 있었다. 촬영 전 모여서 한주동안 찍을 대본을 수정할 수 잇었다. 시나리오에 대해 깊이있게 대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스티븐 연은 "감독의 캐스팅 수완이 돋보였다. 훌륭한 배우들과 함께였다. 다같이 헌신하며 많은 노력을 했다. 정 감독의 시나리오 또한 훌륭했기에 돋보이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이어 "완벽한 시나리오에 적합한 배우들이 시너지를 낸 것 같다. 윤 선생님, 예리 씨 등 합심해서 위대한 것을 같이 만들어나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족처럼 생각했다. 다른 숙소에 묵고 있었다. 윤 선생님, 예리씨가 머무는 곳에 가서 밥도 먹고 세탁도 하고 진짜 제이콥 같았다"고 했다.
정이삭 감독은 윤여정의 많은 아이디어를 차용했다. 윤여정은 자신의 미국에서 살았던 경험을 솔직히 털어놨고, 많은 부분 영화에 담겼다.
윤여정은 "국제결혼을 한 친구가 있는데 친구의 남편이 밤을 입으로 씹어 손자에게 주더라. 거짓말이 아니고 친구의 남편 이야기라 아이작(정이삭 감독)에게 했다. 그게 반영됐다. 또 한국 할머니는 바닥에서 자지 않나. 아이작이 미국에서 태어났기에 그 부분을 얘기해줬다. 한국 할머니라면 귀하고 아픈 손자와 함께 자겠다고 하지 않았을 것 같았다"고 밝혔다.
윤여정은 정이삭 감독이 모든 것을 포용하는 감독이라며 치켜세웠다. 그는 "한번도 그럴까요? 라는 게 없었다. 제 의견을 존중해서, 바로 세트를 바꿨다. 아! 대사에 '원더풀'이 들어가는데, 그 것도 내 아이디어다. 이렇게 보니 한 거 많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미국 현지 촬영 중 가장 힘들었던 것은 더위였다. 윤여정은 "에어컨이 고장나기도 했고, 동시녹음을 해야 하는 때는 트레일러에서 에어컨을 껐다.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더웠다. 다 잊을 수 있게 해준 건, 숙소에 가면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맨날 밥 타령하는 것 같은데, 일 할 땐 열심히 한다"며 빙긋이 웃었다.
윤여정은 '미나리'에 대해 "제게 굉장한, 경악을 금치 못하는 놀라움을 준 작품"이라고 했다.
그는 "촬영 할 때는 아무 생각 없이 다 같이 했다. 일을 빨리 끝내고 시원한데로 가야겠다는 생각만 했을 정도다. 선댄스 영화제에서 사람들이 좋아하길래 좀 놀랐다. 아이작에게 '여기까지 해서 너무 고맙다'고 그랬다. 영화를 보면서는 예리, 스티븐, 내가 뭐 잘못했나 그런거만 연구했다. 그런데 본 사람들이 막 울고 그러더라. 왜들 이렇게 우니? 했더니 '선생님만 안 운다'고 하더라"라며 일화를 전했다. 이어 "아이작이 저를 불러서 나갔더니 관객들이 일어서서 박수를 치더라. 저는 그때 울었다"고 했다.
윤여정은 "나는 나이 많은 노배우"라며 "젊은 사람들이 이뤄내는거 볼 때 장하고, 나보다 나은 거 볼때 애국심이 폭발한다. 저는 지금 상을 받았다는 것도 너무 놀라운 일이다. 이런걸 상상하고 만들지 않았다. 경악스러울 뿐이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마지막으로 윤여정은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전했다. "제 일정은 며칠 일찍 끝났었다. 어느날 아이작이 스태프들을 데리고 우리 집(숙소)에 와서는 큰절을 하더라. 빅 서프라이즈였다. 호주 사람도 있고 그랬는데…너무 깜짝 놀랐는데 아무도 사진을 찍지 못했다. 다 절을 하고 있었더라. 촬영이 힘들었는데 큰절은 또 어디서 배워왔는지, 제일 기억에 남는 순간이다."
영화 '미나리'는 오는 3월 3일 개봉된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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