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 뛰어넘는 공감 스토리"..스티븐연·한예리·윤여정 '미나리'의 힘 [종합]
한인 가족의 미국 정착기 담아
감독 "보편적 정서가 공감 얻는 이유"
윤여정 "美 26관왕? 땅 넓어서 상도 많다 싶어"
[텐아시아=김지원 기자]
"이 이야기를 함에 있어 특정 나라, 국적은 문제가 되지 않아요. 관객들은 전반적으로 스토리에 공감하고 교감하는 것 같아요."
26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영화 '미나리'의 기자간담회에서 정이삭 감독은 이같이 강조했다. 이날 기자간담회에는 정이삭 감독과 배우 스티븐 연, 한예리, 윤여정이 함께했다.
'미나리'는 희망을 찾아 낯선 미국으로 떠나온 한국 가족의 정착기를 그린 이야기. 한국계 미국인인 정이삭 감독이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한 작품이다. 이미 해외 언론과 평단으로부터 극찬을 얻으며 제27회 미국배우조합상(SAG) 앙상블상·여우조연상·남우주연상 등 3개 부문 후보, 제78회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후보를 비롯해 157개 노미네이트, 74관왕을 기록했다. 뿐만 아니라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의 주요 부문 유력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다.
정 감독은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영화가 많은 호평과 극찬을 받고 있는 것이 놀랍고 신기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제 개인적 이야기라서, 이민자 이야기라서, 시대적 상황 담고 있는 이야기라서가 아니라 우리의 보편적 인간적 관계를 보여주기 때문에 공감을 얻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관객들이 극 중 가족이 겪고 있는 다양한 고충과 갈등에 공감해주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가족이 서로 사랑하고 헤쳐나가는 모습을 공감해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버지 제이콥 역을 맡은 스티븐 연은 "저는 4살 때 미국에 이민와서 이민가정에서 자랐다"며 "이민 1세대인 아버지 세대를 더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아버지와 나 사이에는 문화적, 언어적 장벽들이 존재했기에 나는 아버지는 좀 더 추상적, 개념적으로 봤던 것 같다. 이 영화를 통해 아버지 세대와 아버지라는 사람 자체를 더 알게 됐다"고 밝혔다. 또한 "제이콥을 연기할 때 아버지를 롤모델로 삼았다고 할 순 없지만 '내가 내 아버지구나'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틀에 박힌 아저씨의 모습을 연기하고 싶진 않았고 그 시절에 살았던 제이콥이라는 사람 자체를 내가 공감하는 모습으로 연기하고 싶었다. 제이콥 캐릭터를 이해하는 게 쉽진 않았지만 이해해 나가면서 자연스러운 연기를 선보일 수 있었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한예리는 어머니 모니카 역을 맡았다. 한예리는 영화 속 배우들의 모습이 실제 가족처럼 나올 수 있었던 건 서로 함께 지내며 작품에 대해 깊이 이해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예리는 "우리가 에어비앤비로 다 같이 지내게 됐다. 그 집에서 주로 모이고 밥 먹고 시나리오에 대해서도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았다"고 밝혔다. 또한 "그 때 번역본을 문어체에서 구어체로 좀 더 바꿀 수도 있었다. 촬영 들어가기 전에 모여서 한 주 한 주 찍을 분량의 대본을 수정해나갔다. 그런 시간이 있었기에 좀 더 빠르게 진행됐고 깊이 있게 시나리오에 대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밝혔다.
스티븐 연은 한예리에 대해 "진솔하고 진실된 분이다. 자연스럽게 연기했다. 제이콥-모니카 부부가 어떤 부부였을까, 서로에게 어떤 존재였을까 얘길했는데 생각이 항상 같진 않았지만 '좋은 다름'이었다고 생각한다. 서로의 생각을 인정하는 방식으로 연기했다"고 말했다. 또한 "극 중 폴을 초대해서 식사를 하고 난 후 부부가 약간 다투는 장면이 있는데 NG 없이 한번에 찍었다. 감독님의 연출력 덕분이기도 했다"며 "한예리와의 연기는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고 즐거운 경험이었다"고 전했다.
한예리 역시 "장면마다 '우리가 어떤 걸 해야한다'고 하진 않았지만 제이콥과 모니카처럼 그 장소에 있었다. 스티븐은 너무 솔직하게 본인이 필요한 것을 얘기했고 도와줄 수 있는지 물었다. 이 배우가 건강하고 진심으로 영화를 대하고 있구나 생각했다"고 칭찬했다. 또한 "에너지가 좋은 사람이어서 서로 에너지가 충돌할 때도 저는 그걸 느끼고, 느낀 만큼 리액션하면 됐다. 제이콥의 뜨거운 마음이나 열정, 외로운 감정까지 충분히 느낄 수 있어서 최고의 파트너였다"고 덧붙였다.
할머니 순자 역의 윤여정은 미국에서 연기상 26관왕에 올랐다. 윤여정은 "축하해주셔서 감사한데 사실 상패는 하나 받았다. 그래서 체감을 못하고 있다. 제가 할리우드 배우도 아니고 이런 경험도 없어서 '나라가 넓어서 상이 많구나' 하고 있다"며 입담을 자랑했다.
윤여정은 제이콥 가족의 변화를 일으키는 할머니 캐릭터를 입체적이고 재치 있게 표현해냈다. 전형적이지 않은 할머니 캐릭터를 완성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윤여정은 "어떤 감독들은 '이렇게 해달라'면서 배우를 가둬둔다. 감독님께 첫 물음이 '감독님의 할머니를 흉내 내야 하냐'였는데 '선생님이 알아서 하라고'하더라. 속으로 A+ 점수를 줬다. 감독님과 같이 만든 캐릭터"라며 공을 돌렸다.
윤여정은 '미나리'에 대해 "제게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할 때는 다 같이 하고 얼른 끝내고 시원한 곳에 가야겠다는 생각만 했는데 선댄스영화제의 관객들이, 또 미국인들이 좋아해서 좀 놀랐다"고 했다. 또한 "나는 출연자라 작품 자체를 잘 즐기지 못하는데 영화제에서 관객들이 다 울길래 '다들 왜 이렇게 우냐'고 했더니 나만 안 운다더라. 나는 감독님이 무대에 올라갔을 때 사람들이 일어나 박수를 치는데 그 때 울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노배우라서 젊은 사람들이 무언가를 이뤄내는 걸 보면 장하고 그들이 나보다 나은 걸 볼 때 애국심이 폭발한다"며 "제가 상을 이렇게나 받았다는 것도 놀랍다. 우리는 이런 걸 상상하고 만들지 않았다. 경악스러울 뿐이다"면서 웃음을 자아냈다.
이 영화에 제작자로도 참여한 스티븐 연은 "제가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내용이 신선하고 새로웠다. 그 스토리의 시선이 마음에 들었다"고 밝혔다. 또한 "미국에서 한인계 배우로서 일하면서 소수인종을 다루는 스크립트를 많이 받아보게 되는데 관객들에게 그 인종을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작품은 가족에 대한 스토리였고 매우 한국적인 영화라고 생각했다. 제가 공감하는 주제를 다루기도 했고, 감독님의 스토리가 훌륭해서 합류하게 됐다"고 부연했다.
정 감독은 자신의 할머니를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그는 "한국의 인천 송도에서 교수 생활을 했는데 교수실에서 밖의 갯벌이 보였다. 주로 나이가 있으신 여성분이 많이 계셨는데 할머니가 더 생각났다. 할머니는 과부로 살면서 우리 어머니를 키우셨고 갯벌에 나가 조개도 캐고 하셨다. 할머니가 안 계셨다면 내가 여기와서 이렇게 살 수 있었을까 싶다. 할머니 얘길 할 때마다 눈물이 나는데 일부러가 아니라 할머니라는 생각만 하면 울컥한다"며 눈물을 훔쳤다. 그러면서 "우리 영화에 참여한 모든 이가 아티스트가 된다고 생각했다"며 "제 개인적 꿈을 이룬 게 아니라 하나의 힘으로 같이 이뤄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정 감독은 "우리 영화를 식탁에 비유하고 싶다. 식탁은 열려있다. 맛있게 드실 수 있는 음식이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윤여정은 "조미료가 들어가지 않아 담백하고 순수한 맛이다. 한국 관객들이 그동안 너무 양념이 센 음식을 먹어와서 안 먹을 수도 있는데 건강하니 한 번 잡숴 달라"고 부탁해 웃음을 자아냈다.
'미나리'는 오는 3월 3일 개봉한다.
김지원 기자 bella@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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