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사장', 조인성에게 얼간이 콘셉 씌우자 벌어진 일
'어쩌다 사장', 시골슈퍼 자체가 주는 정서적 훈훈함만으로도
[엔터미디어=정덕현] 강원도 화천, 눈이 내려 하얀 세상이 된 그 곳을 달리는 버스 안에 마스크로 가려도 가려지지 않는 배우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조인성이 차창 밖으로 스쳐지나가는 풍경들을 바라본다. 그 시각 원천리라는 이정표가 써진 곳에 차태현이 외지인에게도 전혀 경계심이 없는 검둥개와 나란히 앉아 그를 기다린다. 거짓말처럼 눈이 그치고 원천리 버스정류장에 내린 '꺽다리' 조인성. 두 사람은 바로 근처의 보기에도 정겨운 시골슈퍼를 마주하고는 "하긴 하는 모양"이라며 걱정 반 기대 반의 웃음을 터트린다. tvN 예능 <어쩌다 사장>의 오프닝은 그 시작만으로도 어딘가 도시에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을 촉촉하게 건드린다.
시골슈퍼라니. 도시의 편의점이나 대형마트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는 정이 벌써부터 느껴진다. 그냥 슈퍼가 아니라, 동네사람들이 찾아와 물건도 사고 음식도 먹고 두런두런 이야기꽃도 피우는 사랑방에 가까운 곳. <어쩌다 사장>은 그 무엇보다 이런 시골슈퍼를 선택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것이 전해주는 정서적 훈훈함이 만만찮다. 우리에게는 KBS <1박2일>의 영원한 막내PD로 더 기억에 남고, 한참 성장해 <1박2일>의 메인PD를 맡아 이를 부활시켰던 PD로 기억되며, tvN으로 이적해 최근에는 <서울촌놈>을 만들었던 류호진 PD표 따뜻한 예능의 향이 바로 그 시골슈퍼에서부터 풀풀 피어난다. '촌의 정겨움'을 이토록 잘 담아내는 PD가 있을까.
그 곳에서 열흘간 휴가를 받은 사장님 대신 가게를 맡아 '어쩌다 사장' 일을 하게 된 도시 얼간이 차태현과 조인성. 차태현이야 <1박2일> 시절부터 <서울촌놈>까지 계속 인연을 이어온 류호진 PD의 페르소나지만, 조인성이 메인으로 예능에 출연하고 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물론 조인성도 과거 <1박2일>의 게스트로 출연해 화제를 모은 바 있지만, <어쩌다 사장>에서 그는 음식과 술을 찾아온 손님들을 맞이해야 하는 '가맥 담당' 사장 역할을 해야 한다. 벌써부터 의지가 충만해 대게라면에 쓸 대게 100인분 양을 손질해놓고, 저녁에는 명란계란말이에 먹태구이를 안주로 선보일 거라고 한다. 어딘지 쉽지만은 않아 보여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작은 시골슈퍼라지만 의외로 해야 할 일들이 넘쳐난다. 무엇보다 가게 상품들이 다양해 손님들이 원하는 물건을 찾는 건 물론이고, 그 값을 일일이 계산하는 것도 어렵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슈퍼의 단골손님들이 알아서 물건을 척척 찾아내고, 심지어 가격도 알려줄 정도로 더 잘 안다는 사실이다. 버스표까지 끊어줘야 하는데 가는 곳마다 가격이 다르고 그 때마다 전표를 써줘야 하는 일도 결국 손님들이 가르쳐줘 알게 되고, 그 흔한 호빵 기계 돌리는 법도 단골손님이 가르쳐준다. '노잼'이라고 조인성은 말하지만 주인과 손님의 입장이 역전되기도 하는 그 '도시 얼간이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빵빵 터진다.
하지만 웃음보다 더 이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잡아끄는 건 시골슈퍼를 중심으로 그곳 주민들과 나누는 따뜻한 정이다. 찾는 분들이 언제든 마실 수 있게 커피자판기 위에 동전을 놓아두셨던 사장님의 '영업철학(?)'은 다름 아닌 푸근한 인심이다. 사장과 손님이 아니라, 동네 사랑방 주인과 가족 같고 친구 같은 동네 사람들의 관계를, 이제 열흘간 차태현과 조인성은 슈퍼를 운영하며 고스란히 느끼게 될 터이다.
물론 손님이 동시에 찾아와 멘붕에 빠지기도 하지만, 오히려 손님들이 나서 그들을 도와주는 정경이라니. <어쩌다 사장>이 첫 임무지(?)로 선택한 시골슈퍼는 그래서 이 프로그램의 체험이 단지 일의 경험만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그 곳 사장님의 자리에 들어감으로써 그 곳을 찾는 시골 사람들이 갖고 있는 정서들을 경험하게 해주는 것. 아마도 시청자들은 바로 이 지점에 마음을 빼앗길 것으로 보인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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