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서 막판 5연승… 한국, 3년 만에 농심배 탈환
“뒤에 박정환 사범님이 계셔서 편하게 둘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꼭 마무리하고 싶은 생각도 간절했어요.”
한국의 우승을 결정지은 직후 신진서(21) 9단이 터뜨린 첫 마디다. 닷새간의 연전(連戰)으로 다소 피로에 지친 모습이었으나 성취감이 더 큰 듯 표정은 홀가분했다.
25일 인터넷으로 진행된 제22회 농심배 세계 바둑최강전 13국서 신진서가 중국 최종 주자 커제(24)를 꺾고 대회를 마무리했다. 185수 끝 흑 불계승. 막판 한 차례 위기 국면을 맞기도 했으나 전체적으로 신진서가 압도한 내용이었다.
이 승리로 한국은 19회 대회 이후 3년 만에 농심배를 탈환, 통산 13회 우승을 기록하며 중국(8회) 및 일본(1회)과 격차를 벌렸다. 한⋅중⋅일 3국 단체 연승전인 농심배는 우승국에만 5억원 상금이 지급된다.
이번 대회서 신진서가 세운 기록 중 가장 의미 있는 부분은 ‘마무리 5연승’이 꼽힌다. 도중에 5~6연승을 거두는 경우는 종종 나오지만 우승 결정 때까지 5연승으로 대회를 마무리한 예는 6회 대회 때의 이창호가 유일했다. ‘상하이의 기적’으로 불리며 세계 바둑사 최고 순간 중 하나로 꼽혀온 신화를 16년 만에 재현해 낸 것.
한국 최종 주자(5번)를 맡아 대기 중이던 박정환 9단은 이번 대회서 돌 한 번 쥐지 않고 우승을 함께했다. 한⋅중⋅일 3국서 5명씩 출전하는 농심배서 한국이 4명만으로 우승을 결정한 것은 19회 대회 이후 3년 만이다. 당시에도 최종 주자 박정환이 4장 김지석의 막판 2연승에 힘입어 ‘무혈입성’했었다.
신진서는 이번 대회 개막을 앞두고 “지난해 박정환 사범님이 홀로 남아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며 매우 죄송했다. 올해는 쉬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고 그 약속을 실행했다. 19회와 21회 대회 때 1승도 올리지 못했던 아쉬움도 한 방에 풀었다.
커제를 상대로 마무리했다는 점도 의미가 크다. 국내 4관왕, 2020년 바둑 대상(大賞) MVP 등극, 비공식 세계 1위(고 레이팅)를 지키고 있는 신진서지만 커제는 아직 완전히 넘지 못한 벽이었다. 2019년 초 제4회 바이링배 결승에 이어 지난해 삼성화재배 결승 때는 ‘클릭 미스’ 사건으로 어이없는 패배를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연말 중국 갑조리그서 모처럼 설욕한 뒤 이번 승리까지 2연승, 반격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제 커제에 대한 상대 전적은 5승 10패가 됐다. 신진서는 “나보다 다섯 살 안팎 세대 기사 중 최다 우승을 기록하는 게 목표인데, 그러려면 커제(8회 우승)전서 지면 안 된다”고 말해왔다.
우승 확정 후 가진 회견에서 신 9단은 “커제와는 언제 두어도 5대5 승부다. 그가 나를 이길 때마다 도발적인 멘트를 해 힘들 때가 많았다. 하지만 그것이 내가 일어서는 자극제가 됐다”고 했다. 커제는 자국 기자들과의 회견에서 “반전의 기회를 모색해 보았지만 여의치 않았다. 내 실력이 부족했다고 인정한다”고 말했다. 신진서는 “올해는 외국 기사에게 한 판도 지지 않겠다”던 연초의 약속을 충실히 지켜나가고 있다. 이날까지 8전 전승 중이다.
신진서 시대는 지금부터 시작이란 게 바둑계의 진단이다. 첫 국제 메이저 타이틀이던 2020년 제24회 LG배를 입단 동기 신민준에게 물려주었지만 잉씨배와 춘란배 등 2개 메이저 결승에 올라있다. 그는 “두 대회 모두 꼭 우승해야 한다는 생각 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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