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난리 딛고 활짝 핀 화개장터… 구경 한번 와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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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오후 경남 하동군 화개장터. 장터 주력 상품인 약초와 나물 상점 앞이 손님들로 북적였다. “우리는 국산만 취급하기 때문에 다른 곳과 비교할 수 없다”는 상인, “그래도 조금만 더 깎아달라”는 손님의 가격 흥정이 치열했다.
‘국민 장터’ 화개장터에 ‘봄’이 찾아왔다. 지난해 여름 유례없는 집중 호우로 물난리를 겪은 지 반년 만이다. 주말인 지난 20일과 21일 이틀간 전국에서 4500명이 넘는 방문객이 화개장터를 찾았다. 주말이면 1만여명을 훌쩍 넘겼던 코로나 사태 이전에 비하면 절반 수준이지만, 상인들은 “고마운 국민 덕택에 이렇게 장사한다”며 활짝 웃었다.
‘아날로그 감성’이 물씬하던 화개장터는 지난 수해(水害)를 딛고 일어나며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신식 장터’로 탈바꿈했다.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따로 없다. 김유열 화개장터 상인회장은 “이곳이 절망의 공간이 아닌 희망의 공간으로 기억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디지털 기술 접목한 ‘신식 장터’로 변신
이날 대전에서 가족과 함께 화개장터를 찾은 김기환씨는 장터 곳곳에서 약초와 기념품을 구입했지만 빈손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최근 화개장터가 도입한 디지털 매장 덕분에 스마트폰 하나로 결제와 택배 배송까지 모두 끝냈기 때문이다. 김씨 가족은 화개장터 물건들을 다음 날 집에서 편히 배송받았다.
지난 8일 화개장터 입구의 특산물 판매장에 디지털 매장인 ‘플래그십 스토어’가 문을 열었다. 화개장터를 대표하는 특산물과 인기 상품을 골라 전시하고, 온·오프라인 플랫폼을 통해 구매하는 방식이다. 진열한 상품 아래 디지털 QR 코드가 보였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스캔하니 온라인 판매 사이트로 연결됐다. 판매 상인 얼굴과 제품 상세 정보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결제도 온라인으로 간편하게 했다. 현금을 쓸 필요가 없었다. 상인회 소속 상점 74곳 중 절반이 넘는 36곳이 참여하고 있었다. 김정곤 사단법인 하동차생산자협의회 사무국장은 “개장 한 달이 채 안 돼 조금 더 지켜봐야 하지만, 상인과 손님의 반응이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수해 반년, 절망 딛고 희망 품어
지난해 8월 7일과 8일 이틀간 하동군에는 560㎜가 넘는 기록적 폭우가 쏟아졌다. “하늘이 뚫렸다”는 얘기가 나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수위 조절을 위해 섬진강 상류 댐이 방류하자 강 하류 하동군 일대는 순식간에 물바다가 됐다. 주택 84동, 400가구가 물에 잠겼다. 화개장터 상점 100여곳도 침수 피해를 당했다. 상인들 낙심은 특히 컸다. 이들은 지난 2014년 11월 27일 새벽에 발생한 불로 점포 80곳 중 40곳이 잿더미가 되는 피해를 입은 바 있다. 이듬해 4월 이곳으로 옮겨 재개장했는데, 5년 만에 물난리를 겪은 것이다.
비가 그친 화개장터에 전국 각지에서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다. 자원봉사자들이 한여름 뙤약볕 아래 구슬땀을 흘렸고, 국내와 해외에서 성금과 위문품을 보냈다. 수해 발생 48일 만에 화개장터는 다시 문을 열었다. 장터 상인 김금자씨는 “복구를 하다가 다리를 다쳐 눈앞이 캄캄했는데, 다 국민들 덕분”이라며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화개장터 중심으로 하동 곳곳 변신 준비 중
화개장터 변신은 진행형이다. 올해 전국 특성화 시장 육성 사업에 선정됐다. 전통에 혁신 미래를 담는 것이 핵심이다. 최근 소비 트렌드에 맞춰 현금과 신용카드 외에도 상품권과 모바일 화폐 등 다양한 결제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상품 진열부터 고객 응대 등 서비스 혁신도 추진하고 있다. 체험 관광 콘텐츠와 특성화 브랜드 개발 등 역량 육성 사업도 진행한다.
지자체도 팔을 걷어붙였다. 고질적 문제점이던 주차난을 해결하기 위해, 장터 주변에 86대 규모의 2층짜리 공영 주차장을 조성하고 있다. 조만간 이전하는 화개면사무소에는 증강현실(AR)과 가상현실(VR)을 접목한 체험 프로그램과 역사관, 전시관을 넣어 새로운 볼거리도 마련할 계획이다. 섬진강 주변의 광양시, 곡성·구례군 등과는 ‘섬진강권 통합 관광벨트’ 구축에 나섰다. 각 지자체가 추진하는 축제와 인프라를 공유하고 확대해 남부권을 대표하는 관광 권역으로 만든다는 구상이다. 최근에는 서울시와 한국관광공사가 추진하는 ‘K트래블 버스 사업’에 기초 지자체 중 하동군이 유일하게 선정된 것도 기회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차를 처음 재배한 시배지(始培地)인 하동은 내년 하동세계차(茶)엑스포 개최를 앞두고 있다. 윤상기 하동군수는 “천년이 넘는 우리 차 문화에 가상현실 등 디지털 옷을 입혀 스마트 엑스포를 선보일 것”이라며 “코로나 이후 달라진 라이프스타일과 관광·여행 패러다임에 맞춰 안전하고 새로운 방식의 행사로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하동=김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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