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과의 협업 통해 미적 욕망의 판타지 표현"

김예진 2021. 2. 25. 23:0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세계미술전 초대작가 두민
극사실적 작품에 더이상 감동없어
작가의 예술혼·AI의 테크닉 결합
AI아트로 미술의 새로운 영역 개척
주사위는 나의 긍정 욕망·열정·심장
매너리즘 안빠지려 쪼개고 분해
이제는 '경계의 화가' 되기위해 노력
인간 대 인공지능(AI). 2016년 바둑 천재 이세돌과 인공지능 알파고가 벌인 ‘세기의 대결’ 이후 인간과 인공지능의 대결은 언제나 화제였다. 최근엔 예능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흥미 삼아 골프, 주식투자 등 갖가지 분야에서 인간과 인공지능을 대결시키곤 한다. 흥미를 넘어 진지하게 이런 대결이 인류의 미래라고 생각하면 간담이 서늘해진다. 인간과 인공지능은 결국 생사를 걸고 싸울 것인가. 이 물음에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뚜렷한 주관으로 작업하는 작가가 있다. 세계일보 창간 32주년 기념 세계미술전 초대작가 두민(사진)이다.

그는 2019년 화가 최초로 인공지능과 협업한 작가임을 자신 있게, 또 자랑스럽게 소개한다. 기존 미술계에서는 둔감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물결에 그는 재빨리 관심을 가졌다. 인간과 인공지능은 대립이 아니며, 그러니 대결할 필요도 없다는 확신을 밑바탕에 단단히 깔아두고, 인공지능과 협업한다. 매년 주목받는 국내외 작가를 소개해 온 세계미술전이 올해는 ‘AI아트’라는 분야를 개척하고 있는 작가 두민을 초대했다. 서울 중구 소공동 금산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미술전에서 그를 만났다.

―전시 제목 ‘엔트로피 일루전(Entropy illusion)’은 무슨 의미인가.

“엔트로피는 나의 미적 욕망을 뜻한다. 열역학 제2법칙으로 에너지의 흐름을 설명하는 과학용어 엔트로피는 모든 에너지가 늘 시간의 흐름 안에서 일정한 방향으로 증가한다고 설명한다. 세상 모든 물질의 엔트로피는 자발적 과정에서는 항상 증가하고, 가역적 과정에서는 변화하지 않는다고 한다. 일루전은 환상 또는 판타지를 의미한다. 실재하지 않는 형상을 마치 실재하는 것처럼 지각하는 작용, 형상을 일컫는다. 예술이 창조해내는 모든 것이 현실처럼 보이지만 허구에 불과하며, 특히 미술작품의 본질은 곧 일루전이다. 결국 ‘엔트로피 일루전’은 나의 ‘미적 욕망의 판타지’를 보여주는 전시다.”
‘The boundary of Golden fantasy’(2020)
‘Fortune-Janus’(2009)
―주사위를 소재로 한 극사실적 작품들로 뛰어난 기예와 실력을 인정받았던 화가로서, 인공지능의 기술력이 인간 화가에게 위협이라 생각하지 않았나.

“나는, 인간 화가로서 그리기는 하이퍼리얼리즘으로 이미 끝까지 가봤다고,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는 다 했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런 것들은 과거 화가들이 더 잘했다. 가령 중세 그림들이 그렇다. 동시대 사람들은 높은 화소의 사진기술 등 고화질에 노출돼서 그런 극사실적 묘사에 집착하는 것은 더 이상 감동이 없다고 생각했다. 인간 화가는 무엇을 할 수 있나 생각했다. 답은 사고(思考)였다. 인공지능도 딥러닝을 하긴 하지만, 애초 인공지능엔 경험이 없다. 인간은 인생, 환경 속에서 듣고 보고 먹고 어떤 과정에 들어가고 경험치가 쌓인다. 그렇게 만들어지는 인간 화가의 철학, 혼이 있다. 인공지능이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의 화풍을 그대로 따라서 그릴 순 있지만, 렘브란트의 혼은 없는 것이다. 보여주는 테크닉은 재현이 되지만 예술혼, 예술성은 결여돼 있다. 인간 화가에게 사람들은 잘 그리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생각을 담는 주체가 바로 인간 화가다. 기술적으로 ‘와, 이거 놀랍다’라고 하게 하는, 놀라움을 주는 영역은 인공지능이 하게 되고 인간 화가는 다른 것을 하게 되리라고 본다. 그렇게 활동 영역, 시장이 달라질 것이다. 사람들이 필요한 영역, 시장에 가서 필요한 것을 구하는 식으로 인공지능 미술과 인간의 미술이 발전할 것이라고 본다.”

―과학자, 컴퓨터공학자들도 인공지능을 통해 ‘알고리즘 페인팅’과 같은 예술작품을 선보인다. 화가가 인공지능을 이용해 그린 작품과 과학자가 인공지능으로 그린 작품은 어떻게 다른가.

“완전한 차이가 있다. 인공지능으로 예술작품을 시도하는 과학자들과 세미나도 해보고 대화도 해볼 기회가 있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눠 보면 미술을 계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과학자들은 자신의 기술력으로 무엇을 재현할까, 또는 인공지능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감성이 배제돼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작가 정신, 철학을 화폭에 녹여내려 하고, 그걸 위해서 인공지능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생각한다. 결과물에 대해 설명할 때도, 과학자들은 어떤 기술로 한 것인지를 위주로 설명한다. 예술가들이 하는 것과 가장 큰 차이가 그거다. 미술, 미학적 부분보다 테크닉에 집중한다. 우리는 예술을 산술화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고 오히려 그것에 집중한다.”
‘commune with…수원화성’(2020)
‘commune with…독도’(2019)
―‘주사위의 화가’라 불릴 정도로 주사위를 주되게 그려왔는데, 인공지능과 협력한 작품에서는 독도와 수원화성을 그렸다. 소재를 달리한 이유는.

“수원화성의 경우 작품을 제안한 측의 요청도 있었지만, 나 역시 인공지능과의 작품에선 완전히 새로운 걸 해보고 싶었다. 첫 작품인 독도 풍경은, 대학 시절 이후 처음으로 그린 풍경화다. 주사위 작품들에서 주로 노랑, 빨강 등의 색을 써왔지만, 여기선 녹색, 푸른색을 주로 많이 쓰기도 했다. 이런 색을 쓴 것 역시 대학 시절 이후 20여년 만이다.”

―인공지능 협업 작품 제작 과정이 궁금하다.

“가령 수원화성의 경우, 인공지능에 고흐 스타일을 딥러닝시켰다. 그 후 도출해 낸 여러 가지 버전의 이미지 중에서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가장 잘 나온 버전을 고르고 캔버스 하단에 프린팅한다. (두민 작가의 AI아트 작품은 주로 풍경화로, 작품 중앙을 기준으로 윗부분에 직접 주된 대상을 그리고, 아랫부분은 물에 비친 그림자와 같은 형상을 AI로 그리게 하는 스타일을 선보였다.) 그렇게 인공지능이 그린 그림자를 먼저 배치한 뒤, 나머지 공간을 채워가며 완성한다. 밤하늘을 검정색이 아니라 푸른색으로 했는데, 물을 상징하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그린 부분이 물에 비친 그림자로, 중간에 위치한 사람은 우산을 들고 물을 상징하는 밤하늘의 야경과 어우러진다.”

―환상적이고 영롱하게 그려진 주사위를 통해서 운명 속으로 던져지는 인간, 그 순간의 충동과 설렘을 표현해왔다. 초기 주사위 작품들은 카지노 칩과 함께 쌓아 올린 형태를 극사실적으로 표현한 것들이었으나, 이후 변화를 거듭하며 추상화되고 있다. 물 위를 튀어오르고 움직이는 역동적인 찰나의 순간, 거울에 비추어진 듯 대칭을 이루는 화면, 흡사 우주 속에 던져지는 듯 빠르게 흩어지는 배경 등이 점차 나타났다. 10여 년간 주사위를 그려온 지금은 또 다른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주사위는 여전히 나의 긍정의 욕망, 작가로서의 열정, 작가의 심장이다. 하지만 작가가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스스로를 파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은 주사위를 쪼개고 분해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의 이분법, 인간의 양면성을 반영하면서 대칭을 이루는 화면이 생겨났고, 기존엔 묘사했던 주사위를 지금은 해체하면서 배경을 빼는 등 간결해졌다. ‘주사위 작가’로 유명해졌지만, 동시에 ‘주사위 작가’라는 타이틀에서 벗어나는 게 내 과제였다. ‘주사위 화가’가 아니라, ‘경계의 화가’로 불리기 위해 노력한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