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수의마음치유] 주식, 돈 그리고 삶

남상훈 2021. 2. 25.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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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이 좋아지지 않아 애먹고 있던 환자가 이번 진료시간에는 호전된 상태로 내원했다.

"최근에 투자한 주식값이 많이 올랐는데, 그랬더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어요"라고 했다.

주식으로 돈을 벌 수는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는, 일에 헌신하며 돈 벌 때 느끼는 성장의 뿌듯함을 얻을 수는 없었다.

그때부터 주식으로 돈을 벌어보겠다는 생각은 안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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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광풍에 '포모 증후군'까지 생겨
일·일상 못즐기면 더 큰 손실 아닐까
우울증이 좋아지지 않아 애먹고 있던 환자가 이번 진료시간에는 호전된 상태로 내원했다. 해결하기 힘든 현실적인 문제가 있어서 쉬이 좋아지지 않던 환자였다. 그런데 기분이 밝아져서 ‘무슨 이유 때문일까?’ 궁금했다. “최근에 일상생활에 변화가 있었나요?”라고 물었다. 나는 내심 “운동을 열심히 했어요”라거나 “새로운 취미에 빠져서 기분이 좋아졌어요”라는 대답이 나올 거라 예상했는데, 웬걸. “최근에 투자한 주식값이 많이 올랐는데, 그랬더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어요”라고 했다.

공황장애로 치료 중인 직장인에게 “일 외에 요즘 관심 갖고 집중하는 것이 무엇인가요”라고 물었더니 “주식”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선생님은 주식하지 않으세요”라고 되묻길래 나는 가로로 고개를 저었다. 그랬더니 “선생님, 이제 주식은 상식이에요”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성격 좋은 남편과 살지만 벌어오는 월급이 적다며 아쉬워하던 워킹맘이 얼마 전 상담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괜찮아요. 내가 이번에 주식으로 남편 연봉만큼 벌었거든요” 그야말로 주식 광풍이다.

‘고립공포감’(FOMO, fear of missing out) 따위의 약자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요즘 같은 상승장에서 주식투자를 하지 않으면 뒤처질 거라는 불안감이 살짝 들 때도 있다. 주식으로 순식간에 대박난 사람들의 소식을 들으면 ‘이런 걸 두고 벼락거지가 된다는 거구나’라고 생각한다.

돈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면, 그 이유는 불확실한 삶에서 통제력을 가질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대박을 꿈꾸는 이들의 마음에도 ‘빚 갚고 내 집 사서 안정적으로 살고 싶다’라거나 ‘돈 벌면 싫어하는 일 때려치우고, 하고 싶은 일만 할 것이다’라는 기대가 숨겨져 있기 마련이다. 돈이 행복을 보장하진 못해도, 불운이 찾아왔을 때 불행의 나락으로 추락하지 않도록 삶을 지켜줄 수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나는 주식투자를 하지 않을 것이다. 20년 전쯤에 전공의 시절 모아두었던 두어 달치 월급으로 주식투자를 잠깐 한 적이 있다. 주변에 주식 공부를 많이 한 동료가 있었는데 종목 하나를 추천해 줬다. 사자마자 가격이 올랐다. 이래서 주식을 하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잠시 기뻤다. 하지만 얼마 못 가 “이건 아니다”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누군가 알려주는 정보로 혹은 초심자의 행운으로 잠시 돈을 벌 수 있겠지만 지속되기는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밥벌이를 위해 일을 하고 틈틈이 자기계발도 해야 하는데, 주식까지 공부한다는 건 내게 불가능했다. 주식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종목의 현 주가가 싸다 판단되면 전방 산업이 유망한지 분석하고 성장 가능성이 있는지 조사해라”라고 하지만 평범한 직장인이 무슨 수로 이런 걸 꿰뚫을 수 있겠는가. 나의 미래도 모르겠는데 “기업의 미래를 보고 투자하라”는 말이 허황되게 여겨졌다. 주가를 수시로 확인하면서 주의력이 흩어지고 현재에 집중하지 못했다. 주식으로 돈을 벌 수는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는, 일에 헌신하며 돈 벌 때 느끼는 성장의 뿌듯함을 얻을 수는 없었다.

그때부터 주식으로 돈을 벌어보겠다는 생각은 안 하게 됐다. 그것보다 “내가 진정 원하는, 돈 이면에 숨겨진 무형의 가치는 무엇일까”를 생각한다. “주식시장을 살피며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넣는 동안 잃는 것은 없을까”를 따져보게 되었다. 금전적 손실을 봐야만 손실일까? 일상에 몰입하지 못하고 땀 흘려 번 돈이 하찮게 보이고 일에 대한 태도가 변질되고 만다면, 그게 더 큰 손실일 테다.

김병수 정신건강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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