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11년 앞선 독립기념비, 알고보니 일왕 출생 기념비
변형·재사용 충북만 8개
"철거보단 내력 알려야"
[경향신문]
충북 음성군 설성공원에는 일제강점기인 1934년에 세워진 비석이 있다. 높이 2m57㎝에 전면에 한자로 ‘독립기념비(獨立記念碑)’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광복보다 무려 11년 먼저 독립을 축하하는 비석이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이 비석은 일본 왕세자 아키히토 출생을 기념하기 위해 당시 음성군수가 만든 것이다. 광복 이후 철거하지 못하고 글씨만 바꿔 지금까지 남아 있다.
충북지역 일제 잔재물 일부가 변형·재사용돼 온 것으로 확인됐다. 25일 경향신문이 확보한 충북문화재연구원의 ‘충북 친일 잔재청산을 위한 기초조사’ 자료를 보면 일제강점기 당시 조형물 중 8개가 원래의 용도와 다르게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충북문화재연구원은 충북도의 의뢰로 지난해 5월부터 지난 1월까지 8개월 동안 충북지역 일제 잔재물 중 31개를 대상으로 이번 조사를 진행했다.
옥천군 옥천읍 죽향초 이순신 동상의 좌대도 일제 잔재물인 것으로 확인됐다. 죽향초는 1909년에 개교한 학교다. 일제강점기 당시 죽향초에는 일본 무사 구스노키 마사시게 동상을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광복 이후 사라진 일본 무사 동상의 좌대에 이순신 동상이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구스노키 마사시게는 일본 가마쿠라 시대 무장으로 일왕에 대한 충성심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괴산군 사리면 하도리 마을 입구의 비석 3개도 신사에서 가져온 것으로 연구원은 보고 있다. 약 80㎝ 높이의 비석들은 ‘단합’ ‘자립갱생’ 등의 구호가 적혀 있다. 박정희 정권 당시 ‘국가재건 국민운동’을 진행하면서 마을 인근 신사에 있던 비석들을 활용해 세웠다. 옥천 향토전시관 표지석도 황국신민서사비로 만들었다.
충북문화재연구원 관계자는 “타 지자체에서도 일제 잔재물이 원래 형태에서 변형된 사례가 많다”며 “전국적으로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박걸순 충북대 사학과 교수는 “일제 탄압을 상징하는 잔존물이지만 역사자료인 만큼 무조건 철거하기보다는 해당 조형물에 내력을 기록해 놓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충북도의회는 오는 3월 임시회에서 친일 잔재물의 활용·폐기 여부를 결정하는 ‘충북 친일잔재 발굴 및 교육에 관한 조례’를 처리할 예정이다. 이상식 도의원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 존치해 교육자료로 활용할지 또는 철거해 민족정신을 지킬지 등을 판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삭 기자 isak8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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