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헌법 위배 아냐".."표현 자유 위축" 비판도

유설희·전현진 기자 2021. 2. 25.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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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관 5 대 4로 헌소 기각
"인터넷 시대 훼손된 명예
민사 소송으로 구제 어려워"
"국민의 감시·비판 위축"
재판관 4명 '일부 위헌' 판단

[경향신문]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인터넷을 통한 명예훼손 피해가 늘고 있다는 점에서 ‘표현의 자유’보다 ‘인격권’을 우선적으로 보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헌재가 형법상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위헌 여부를 판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헌재는 25일 사실을 공표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사람을 처벌하도록 하는 형법 제307조 제1항에 대해 합헌 결정을 했다. 다만 재판관 5(합헌) 대 4(일부 위헌) 의견으로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형법 307조 1항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해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다만 같은 법 310조는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않는다”고 예외를 둔다.

이모씨는 자신의 반려견에게 실명을 초래한 수의사의 진료 행위에 대해 책,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알리려 했다. 하지만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관련 법 조항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사회 부조리 고발을 위축시킨다는 점에서 위헌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2018년 ‘미투 운동’이 확산될 때도 피해자들이 이 죄로 처벌받을 위험이 있다는 점에서 논란이 됐다.

하지만 헌재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규제함으로써 인격권을 보호해야 할 필요성을 포기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인터넷 발달로 사실적시를 할 수 있는 매체가 다양해졌고, 명예훼손적 표현이 순식간에 전파되며, 명예가 훼손되면 완전한 회복이 불가능한 점을 고려하면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제한해야 할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는 것이다.

헌재는 형사처벌 대신 민사소송을 통해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면 된다는 청구인 측 주장에 민사소송은 실효적 구제 방법이 될 수 없다고 했다. 피해자가 민사소송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점, 징벌적 손해배상이 인정되는 해외와 달리 위자료가 낮게 책정되는 점, 소송기간이 길어질 수 있어 승소하더라도 그사이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기 어렵다는 점 등을 근거로 제시했다.

반면 유남석·이석태·김기영·문형배 재판관은 “개인의 명예보다 진실한 사실에 관한 표현의 자유 보장에 중점을 둘 필요가 있다”는 반대의견을 냈다. 이 죄가 공적 인물·사안에 대한 감시·비판을 봉쇄할 목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사실적시로 손상되는 명예는 보호할 가치가 없는 ‘허명’(헛된 명예)이란 의견도 제시했다.

헌재는 2016년 정보통신망법상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해 재판관 7 대 2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한 바 있다. 5년 전보다 위헌 의견이 늘긴 했지만,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처벌하는 국가가 매우 드물다는 점에서 헌재가 시대에 역행하는 결정을 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사단법인 오픈넷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미투 운동 등 각종 사회 부조리 고발 활동을 위축시키고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현실을 도외시한 헌재 결정에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유설희·전현진 기자 s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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