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글 바로쓰기 - 이오덕 [이태겸의 내 인생의 책 ⑤]
[경향신문]
이 책을 접했을 때 나는 영화를 갓 시작하고 있었다. 무엇이든 글을 써보려 애쓰고 있었다.
내게 책이 충격적이었던 건 내 글쓰기가 엉터리여서가 아니다. 근본이 없다는 것을 알게 해줬기 때문이다. 내 글은 영어·중국어·일본어의 힘에 형체를 찾을 수 없었다. 어머니도 그랬지만 빗대어 말하며 은유·풍자하고 운율 있는 우리네 말법은 나로서는 좇을 수 없는 외국어였다.
우연히 논문을 곁눈질할 때면 한 문장을 이해하기도 힘들 때가 있다. 우리네 글말에는 외국어, 특히 영어 어순의 힘이 강력하다. 잘 보면 도시풍경치고 한국말 없는 곳은 많아도 영어 없는 곳은 없으니 사실 영어는 우리나라 말이 아니라고 단정하기 힘들다.
언어학자는 아니지만 한국어와 영어의 사고체계가 다르다는 것은 안다. 언어(대사)는 심리와 정서를 보여준다. 한국인은 거의 천재일 확률이 높은데 여러 나라 말의 사고체계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혼란한 한국어일 수도, 쉼 없이 변하는 한국어일 수도 있다. 사람들의 말법은 점점 더 섞이고 있는 것 같다.
과거에는 구어에 영어 습관이 많지 않았으나 지금은 말할 때도 수식구조를 쓰는 이들이 적지 않다. 우리나라 사람들 심리는 다른 나라에 비해 빠르게 이동 중인 것 같다.
영화는 사람들의 심리를 동반자 삼기 위해 노력한다. 어디에 도착할지 모르는 한국어라는 배는 영화인인 내게는 그래서 공부거리가 된다. 새 언어가 미래산업을 적극 환영하고 세계와 교류하는 한국인이 늘어날수록, 우리를 부정하는 우리가 많아질수록 우리네 심리도 바뀌어갈 것이다. 이오덕 선생의 책과 말법이 훌륭하다 여기는 건, 복잡한 언어 속에 살아가는 현대 한국인의 말뿌리를 알게 하기 때문이다.
나는 영화인으로서 언어를 바라본다. 글 마지막에 느끼는 한 가지 조금 확실해 보이는 건, 우리는 한글은 쓰지만 (이오덕의) 한국어는 쓰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태겸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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