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처럼 질긴 가족의 힘 낯선 땅 뿌리내리다
1980년대 美 이주 한인 정착 얘기
아이들 봐줄 친정엄마 '순자' 합류
격려와 위안으로 적응하도록 도와
신파로 흐르지 않고 담백하게 그려
美 선호 개척사·가족애 모두 담아
각종 시상식서 69관왕 차지 인기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 대상과 관객상을 시작으로 전미비평가위원회 각본상, 여우조연상 등 미국 내 각종 시상식에서 69관왕을 차지하며 인기 돌풍을 일으킨 영화 ‘미나리’의 정이삭(리 아이작 정) 감독이 털어놓은 연출의 변이다. ‘미나리’는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후보에도 올라있다.
존 포드 감독의 ‘분노의 포도’(1940)와 조지 스티븐스 감독의 ‘자이언트’(1956), 윌리엄 와일러 감독이 그린 ‘거대한 서부’(1958), 그리고 테런스 맬릭 감독의 ‘천국의 나날들’(1978)과 닮았다.
할리우드 영화는 가정을 소중히 그린다. 그들의 가정관은 서부개척 시대에서 기인한다. 서부로 이주해간 미국인들이 광야에 집을 지을 때 가장 우선해야 할 일은 가정의 보호였다. 언제 어디서 인디언들이 습격해 올지, 백인 무법자들이 들이닥쳐 약탈과 살육을 자행할지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할리우드 영화에는 목숨을 걸고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가정을 지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우리에게도 이렇게 넓은 땅이 생긴 거야. 엄마한테 (여기가) 좋다고 얘기해.”
자신만의 채소 농장을 가꾸고 싶은 아빠 제이컵(스티븐 연)이 여섯 살 아들 데이비드(앨런 김)을 끌어들인다. 선천성 심장병을 가진 아들의 건강을 걱정하는 엄마 모니카(한예리)는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라도 캘리포니아 도시로 돌아가 살기를 원한다. 병아리 감별사 일을 시작한 모니카는 두 아이를 보살펴줄 베이비시터로 한국에 있는 엄마 순자(윤여정)를 불러들인다.
먼 길을 온 순자는 고춧가루와 멸치, 한약부터 내놓는다. 트레일러에 사는 게 미안하다는 딸에게는 대수롭지 않게 바퀴 달린 집이 재미있기만 하다며 사위 몰래 두툼한 돈봉투까지 건넨다. 제이컵이 고군분투하며 농장을 일굴 때, 아무 데서나 잘 자란다며 무심히 미나리씨를 뿌리기도 한다.
데이비드는 자신에게 쓴 한약을 먹이는 할머니가 밉기만 하다. 쿠키를 구워주지도 않고 오히려 손주들을 데리고 고스톱을 치는 순자에게 “진짜 할머니가 아닌 것 같다”며 투정과 심술을 부린다.
손자와 할머니 사이의 반전은 데이비드가 옷서랍에 다쳤을 때 일어난다. 상처가 난 발목을 손 빠르게 처치하는 할머니. 그리고 ‘스트롱 보이’라며 다독여준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던 격려에 힘을 얻은 손자는 비로소 할머니에게 마음을 열고 곁을 내주기 시작한다. 이처럼 순자는 고유한 방법으로 가족을 안심시키고 뿌리내릴 수 있도록 돕는 존재다.
“미나리는 아무 데서나 잘 자라서 누구든 뽑아 먹고 건강해질 수 있어. 김치나 찌개에 넣어서 먹을 수도 있고 아플 땐 약도 되고… 원더풀 미나리.”(순자)
그러던 어느 날, 순자는 풍을 맞아 드러눕게 된다.
삶에 짓눌린 부부는 다투던 끝에 대략 합의한다. 모니카는 애들을 데리고 도시로 가고, 제이컵은 남아서 농사를 짓기로. 하지만 위기 앞에서 부부는 다시 하나가 된다. 창고에 불이 난 것이다. 연기를 마시면서도 불 속에 함께 뛰어들어 수확한 농산물을 끄집어낸다.
반신이 불편한 순자는 쓰레기를 태우다 낸 불을 보고 넋을 잃은 채, 쓸모없게 된 자신을 책망하면서 무작정 어둠 속으로 걸어간다. 이때 태어나 한번도 뛰어 본 적이 없던 데이비드가 힘차게 달려가 할머니 앞을 막아선다. “할머니 가지 마요. 우리랑 같이 집으로 가요.” 가족이란 이런 것이다.
무성하게 잘 자란 미나리 밭을 보면서 제이컵이 데이비드에게 말한다.
“할머니가 좋은 자리 찾았어. 맛있겠다.”
삶의 지혜는 그렇게 대를 이어간다.
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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