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한국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있다

2021. 2. 25.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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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동길 숭실대 명예교수·경제학
류동길 숭실대 명예교수·경제학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라는 사법부의 수장이 권력의 눈치를 본다면 민주주의는 무너진다. "지금 뭐 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고 있는데 내가 사표 수리했다 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냐 말이야. 정치적인 상황도 살펴야 되고." 신병을 이유로 사표를 제출한 임성근 부장판사에게 김명수 대법원장이 했다는 말이다. 그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잡아뗐지만 녹취록이 공개되자 거짓말임이 드러났다.

임성근 부장판사는 탄핵의 실효성이 없는데도 민주당이 주도한 국회는 탄핵을 밀어붙였다. 정권에 비협조적인 판사들에게 어떤 암시를 주려는 뜻이 담겨있다는 걸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이 탄핵소추안에 대한 헌재의 최종 판단은 임 부장판사가 법복을 벗은 뒤 나올 것이다.

거짓말 논란이 계속되자 대법원장은 보름 만에 내놓은 사과 입장문에서 "사표에 대한 정치적 고려는 없었다"고 했다. 녹취록에 기록돼있는 것과 다르다. 이것 또한 거짓말이다. 정치나 여론으로부터 독립해 남의 거짓을 재판하는 사법부의 수장이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이런 거짓말을 한다.

나치독일 히틀러와 베네수엘라 차베스의 경우에서 보듯이 선거로 뽑힌 지도자가 민주주의 제도를 무너뜨리는 경우는 즐비하다. 하버드대 스티븐 레브츠키와 대니얼 지블랫 두 교수는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선출된 지도자가 민주주의를 허무는 방식을 축구경기에 비유해서 설명한다, 심판 매수와 상대편 주전선수 출전금지, 경기규칙 변경 등 자신에게 유리하게 기울어진 경기장을 만든다는 것이다. 이 책은 독재자의 성향을 가진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의 자리에서 미국의 민주주의를 어떻게 파괴하고 있는가를 분석한 것이다.

이 분석을 한국에 대입하면 어떨까. 심판은 사법부와 검찰이다. 정권이 심판인 대법원장을 매수한 것인지 대법원장이 스스로 정권의 눈치를 본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사법부가 정권에 장악돼있다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결코 안녕하지 않다. 또 다른 심판인 검찰총장은 예외적으로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버티는 데에는 분명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자유선거로 정부를 구성한다 하더라도 제왕적 대통령이 군림하면 견제와 균형의 틀은 무너지고 삼권분립은 별 의미가 없어진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통계를 조작해서 탈(脫)원전이 추진되고 비리를 감추려고 원전 자료를 삭제하거나 원전수사를 방해하는 소동이 벌어지는 걸 보라.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건 또 있다. 정책의 현실성이나 적합성을 외면하고 유권자 지지를 위한 단기적 이익만 생각하며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는 포퓰리즘이 그것이다.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와 내년 대선을 앞두고 무책임한 공약이 쏟아진다. 모두 돈 뿌리기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4차 재난지원금은 아직 이르다"고 했다. 그런데 지난 19일에는 "코로나에서 벗어날 상황이 되면 국민 위로지원금 지급을 검토할 수 있다"고 했다. 4차 재난지원금 논의도 끝나지 않았고 코로나에서 언제 벗어날지도 알 수 없는데 5차 지원금을 주겠다고 예고했다. 아무리 표가 급하다고 해도 도를 넘은 것이다.

나라 곳간 사정이야 어떻든 국민이 낸 세금으로 국민을 위로하겠다니 웃을 일인가, 울어야할 일인가. 이제 돈 뿌리기는 선거용 카드가 돼있다. 선거 때마다 돈 뿌리기와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면 국가경제는 파국으로 갈 수밖에 없다. 경제가 파국으로 치달으면 독재가 등장하고 포퓰리즘이 판을 치게 되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가 무너지면 시장경제도 무너진다. 나라 곳간 생각 않고 돈 뿌리고, 온갖 규제로 기업을 옥죄면서 정부가 일자리 같지 않은 알바 일자리 만들고, 잘못된 정책으로 집값과 세금을 올려놓는 나라에서 시장경제가 어떻게 활성화될 수 있겠는가. 코로나 극복과 경제 활성화는 시급한 과제다. 하지만 우리의 근본적 과제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질서 지키기다. 이를 지키지 못하면 사회주의와 통제경제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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