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쿠데타는 쿠데타다 / 정인환

정인환 2021. 2. 25.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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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으로 정권을 빼앗는 일'을 쿠데타라 한다.

다시 고난에 찬 투쟁에 나선 미얀마를 바라보며, 어느 쿠데타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미얀마 쿠데타 직후 바이든 행정부는 쿠데타란 표현을 피했다.

미 국무부는 이틀 뒤에야 "모든 사실을 검토한 끝에 버마(미얀마) 군부가 적법하게 선출된 정부 수반을 축출한 것은 군사쿠데타에 해당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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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칼럼]

정인환ㅣ베이징 특파원

‘무력으로 정권을 빼앗는 일’을 쿠데타라 한다. 다시 고난에 찬 투쟁에 나선 미얀마를 바라보며, 어느 쿠데타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튀니지에서 시작된 ‘아랍의 봄’은 2011년 벽두부터 이집트에서 꽃을 피웠다. 30년에 다가서던 호스니 무바라크의 군사독재가 단숨에 무너져 내렸다. 군부의 빈자리를 메운 것은 오랜 세월 탄압을 뚫고 풀뿌리 운동에 매진해온 이슬람주의 정치세력 무슬림형제단이었다. 무슬림형제단이 모태인 자유정의당은 의회 선거에서 압승을 거뒀고, 이 당 소속 무함마드 무르시가 2012년 6월30일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로부터 꼭 1년3일째를 맞은 2013년 7월3일, ‘카이로의 봄’을 부른 혁명의 성지 타흐리르 광장이 군홧발에 짓밟혔다. 혁명을 무너뜨린 노회한 군부의 반역이었다. 쿠데타를 주도한 압둘팟타흐 시시는 무르시 대통령이 임명한 국방장관 겸 군 총사령관이었다.

당시 미국은 쿠데타를 ‘쿠데타’라 부르지 않았다. “이집트 군부가 무르시 대통령을 퇴진시키고 헌법의 효력을 일시 정지시키는 결정을 내렸다”거나, “대단히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 등의 표현만 썼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당시 부통령으로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 함께 외교정책을 좌우하고 있었다.

크고 작은 유혈사태가 줄을 이었다. 급기야 그해 8월 중순 무르시 대통령의 복귀를 촉구하는 시위대 600여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은 데 이어, 1주일 남짓 만에 이집트 전역에서 사망자가 1000명을 넘어섰다. 민간인 시위대가 대부분이었다.

학살극 소식이 전해진 직후,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은 휴가지에서 전격 기자회견을 열어 “이집트와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그해 9월로 예정된 양국군 정례 합동훈련이 취소됐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집트는 아랍권 국가로선 처음으로 1979년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이후 이집트는 이스라엘에 이은 미국 제2위의 원조 수혜국이 됐다. 연평균 15억달러 이상인 미국의 원조 대부분은 군사원조로 채워진다. 미국 법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쿠데타로 무너뜨린 국가에는 군사원조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호스니 무바라크는 독재자였지만, 미국과 친한 독재자였다. ‘카이로의 봄’ 당시에도 미국은 무바라크의 퇴진을 주장하지 않았다. 미국은 쿠데타를 쿠데타라 부르지 않았다. 시시는 지금껏 이집트 대통령이다.

미얀마 쿠데타 직후 바이든 행정부는 쿠데타란 표현을 피했다. 미 국무부는 이틀 뒤에야 “모든 사실을 검토한 끝에 버마(미얀마) 군부가 적법하게 선출된 정부 수반을 축출한 것은 군사쿠데타에 해당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검토했다는 ‘모든 사실’엔 쿠데타 규정이 몰고 올 지정학적 이해득실도 포함됐을 터다.

중국도 쿠데타를 쿠데타라 부르지 않았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1일 정례 브리핑에서 “미얀마에서 발생한 사안에 주목하고 있다”며 “중국은 미얀마의 좋은 이웃국가이며, 미얀마의 각 세력이 헌법과 법률에 따라 갈등을 적절히 처리하고, 정치·사회의 안정을 지키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집트 쿠데타 때도 마찬가지였다. 화춘잉 당시 외교부 대변인은 2013년 7월4일 정례 브리핑에서 “상황을 면밀히 살피고 있다. 이집트 각계가 폭력사태를 피하고, 대화와 협상을 통해 갈등을 풀고, 화해와 안정을 실현하기를 바란다. 중국과 이집트의 우호관계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늘에서 네 글자가 휘날린다. ‘내-정-간-섭.’ 중국은 하는 것도, 받는 것도 원치 않는다.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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