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궤도' 이탈한 文대통령의 '부산행'

2021. 2. 25.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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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무부처도 반대한 가덕도신공항 방문, '총선용' 선물 공세

[임경구 기자(hilltop@pressian.com)]
4.7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한 달 여 앞둔 25일, 문재인 대통령이 부산 가덕도 신공항 예정지를 전격 방문해 더불어민주당이 추진 중인 가덕도신공항특별법에 전폭적인 힘을 실었다.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조차 특별법안에 난색을 표했고 국회의 법안 처리가 완료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장미빛 청사진'을 덧칠한 격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부산에서 열린 동남권 메가시티 구축 전략보고 행사에 직접 참석했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의 부산 방문은 보궐선거와 무관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소통 행보의 일환으로 오래전 결정된 행사"라고 확대해석을 경계했지만, 동남권 메가시티 구상의 핵심이 가덕도 신공항 사업인 만큼, 부산시장 선거를 겨냥한 표심몰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동남권 메가시티는 부산‧울산‧경남(부울경)에 통합형 생활권과 경제권을 구축하겠다는 구상으로, 이날 행사에는 김경수 경남도지사, 송철호 울산시장, 이병진 부산시장 권한대행이 문 대통령과 동행했다.

부울경 행사여서 참석이 불가피한 측면을 고려하더라도, 김 지사는 소위 '드루킹 사건'으로 2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으며, 송 시장은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문 대통령의 측근들이라는 점에서 논란의 소지를 남겼다.

이낙연 대표와 김태년 원내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를 비롯해 홍남기 경제부총리와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도 이 행사에 참석했다.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을 둘러싸고 민주당과 국토부‧기획재정부 등 정부부처 사이에 드러난 이견을 봉합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특히 문 대통령은 가덕신공항 추진 상황에 대한 브리핑을 받은 뒤, "가덕도에 신 관문 공항이 들어서면 세계로 뻗어가고 세계에서 들어오는 24시간 하늘길이 열리게 된다"며 "하늘길과 바닷길, 육지길이 하나로 만나 명실상부한 세계적 물류 허브로 발돋움 할 것"이라고 적극 홍보했다. 또한 "신공항의 파급효과를 극대화하고 동남권 경제·생활공동체 구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육·해·공의 교통·물류 인프라를 더욱 긴밀히 연결하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정치권도 함께 힘을 모으고 있다. 경제성은 물론 환경, 안전과 같은 기술적 문제도 면밀하게 점검해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묵은 숙원이 하루라도 빨리 이루어질 수 있도록 조속한 입법을 희망한다. 정부도 특별법이 제정되는 대로 관련 절차를 최대한 신속히 진행하고,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을 약속드린다"고 했다.

문 대통령의 가덕도신공항 '예찬론'은 부산시장 선거를 앞둔 민주당 입법 드라이브의 연장선으로 풀이된다.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 환경영향평가 간소화 등 특례조항이 적용된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은 국회 국토위를 통과해 오는 26일 본회의 처리를 앞둔 상태이지만,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민주당 소속인 조응천 의원조차 지난 17일 국회 국토위 소위에서 "실시 설계가 나오기 전에 일단 공사부터 한다? 우리 동네 하천 정비할 때도 그렇게 안 한다"고 난색을 표했음에도, 특별법을 밀어붙이고 있는 여권의 속도전을 제어하지는 못했다.

가덕도특별법에 대한 국토부의 반대 입장도 확연히 드러났다. 국토부는 국회에 제출한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 검토보고서'에서 안전성, 환경성, 경제성 등에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며 "(이를) 인지한 상황에서 특별법을 수용하면 성실 의무 위반 우려가 있다"면서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에 반대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에 해당할 수 있다"고 밝혔다.

부산시가 신공항 사업비로 7조5000억 원을 추산한 것과 달리, 국토부 보고서는 "접근교통망 확충, 국제선과 국내선, 군 시설 등을 갖추는 비용을 고려하면 사업비가 모두 28조6000억 원에 이른다"고도 했다.

'오거돈 성추행'이 유발한 선거에 여당 총력지원한 文대통령

이처럼 주무부처가 가덕도 신공항 추진을 둘러싼 반대 입장을 밝혔음에도 문 대통령이 가덕도 '현장 방문'을 강행한 점은 이례적이다.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데다 예타 면제, 환경영향 평가 간소화 등의 날개까지 단 국책사업을 대통령이 전면에 나선 셈이어서 부산시장 선거를 겨냥한 총력전이라는 의심을 산다.

이로써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행 사건으로 인해 치러지는 선거인 탓에 열세를 면치 못하는 민주당이 사활을 걸고 내민 '반전 카드'에 가세한 문 대통령은 정치적으로든 정책적으로든 정상 궤도를 벗어났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졌다.

정세균 국무총리도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을 둘러싼 당정 이견 봉합에 전전긍긍했다. 정 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가진 브리핑에서 국토부의 반대 입장에 관한 질문을 받고 "특별법 (통과) 이전에는 '김해공항 업그레이드'가 정부 정책이기 때문에 공직자 입장에서는 이를 토대로 답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특별법 (제정) 이후에는 특별법에 따라 정부가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태도를 결정해야 된다"면서 "정부는 만약 국회에서 입법이 정상적으로 이뤄지면, 그 법을 존중할 것"이라고 했다.

가덕도신공항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정부도 새로운 법을 따라야 한다는 취지의 설명이지만, 법안의 타당성을 면밀히 살펴보고 반대 의견을 낸 주무부처 국토부는 난감한 처지에 몰리게 됐다. 게다가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빠져나오기 전에 대통령과 총리가 입법절차 완료를 기정사실화한 점도 시기적으로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문 대통령의 '부산행'을 필두로 한 여권의 '선거용 무리수'가 본격화되자 신공항 특별법에 찬성하는 국민의힘도 "대통령의 노골적 선거 개입은 탄핵 사유에 해당한다"(주호영 원내대표)고 날을 세웠다.

정의당 역시 문 대통령의 가덕도 방문을 "MB정부의 '4대강 닮은꼴'인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에 대통령까지 나서서 쐐기를 박겠다는 것은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부가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비판했다.

정호진 수석대변인은 "아무리 보궐선거 때문이라지만 행정절차도 무시하고 4대강 사업비를 뛰어넘은 천문학적인 혈세가 투입되는 공항 건설을 이렇게 날림으로 해도 되느냐는 탄식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며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을 막장 법안이란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고 했다.

정 대변인은 "사업성과 환경성, 안전성 등 모든 분야에서 부적격하다는 우려가 대통령에게는 들리지 않는 것이냐"며 "국토부를 비롯한 관계부처가 반대의견을 내놓았음에도 집권 여당이 밀어붙이겠다는 것은 명백한 입법권 남용"이라고 했다. 또한 "상황이 이런데 문 대통령의 갑작스런 부산 방문은 힘으로 법안을 밀어붙이겠다는 집권여당의 일방통행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다른 정부도 아닌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임기 1년 부산시장 자리를 위해 백년지대계인 공항건설을 선거지대계로 전락시켰다는 오명을 듣고 싶은 것이냐"며 특별법 철회를 촉구했다.

[임경구 기자(hilltop@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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