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말했는데 형사 처벌?" vs "개인 사생활 보호돼야"

이희진 2021. 2. 25.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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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적시 명예훼손' 합헌, 법조계서도 갑론을박
‘사실을 말해 타인의 명예가 훼손됐다는 이유로 형사 처벌을 받는 것이 정당한가.’

일반 국민들과 일부 법조인의 오랜 지적에 헌법재판소가 답을 내놨다. 헌재는 25일 진실된 사실을 말했더라도 타인의 명예를 훼손했다면 처벌할 수 있도록 한 형법 제307조 1항에 대해 5(합헌)대 4(일부 위헌)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사실 적시 명예훼손’ 조항이 옳다고 본 것이다.

헌재는 “개인의 외적 명예는 일단 훼손되면 완전한 회복이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며 “명예와 체면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에서는 명예훼손적 표현행위로 피해를 입은 개인이 자살과 같은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례도 발생하는 등 사회적 피해가 매우 심각하다”고 판단했다.

이어 “심판대상 조항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를 금지함으로써 개인의 명예, 즉 인격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므로 입법 목적의 정당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헌재의 이날 판단은 2017년 8월 동물병원에서 치료받은 반려견이 부당한 진료 탓에 실명 위기에 처했다고 생각한 A씨가 헌법소원을 제기한 데 따른 것이다. A씨는 수의사의 잘못된 진료 행위를 소셜미디어(SNS)에 게시하려 했지만 이 경우 사실을 적시하더라도 명예훼손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표현의 자유가 침해된다”며 2017년 헌법소원을 냈다.

법조계는 판결에 대해 다양한 입장을 보였다. 개인의 사생활이 보호돼어야 한다는 점에서 사실 적시 명예훼손 조항이 필요하다는 입장과 사실 적시에 따른 형사 처벌은 과하다는 입장이 팽팽히 맞섰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진실한 사실을 적시한 명예훼손도 공공의 목적이 아니라 단순한 비난 목적이었다면 처벌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어야 개인의 사생활도 보호된다고 본다”며 “만약 사실 적시 명예훼손에 대해 처벌이 어렵다고 한다면 요즘 같은 상황에선 개인의 사생활이 너무 폭로돼 혼란스러워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무분별한 폭로행위는 자제돼야 한다”며 “공공의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부분을 조금 넓게 해석을 하면 될 문제”라고 제안했다.

서울변호사회장을 지낸 김한규 변호사도 “이번에 헌법소원을 제기한 A씨의 경우도 진짜로 수의사가 부당한 진료를 했는지 여부는 확인이 안 된다”며 “확인이 안 되면 당사자는 곤란한 상황이 온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변호사는 “만약 사실 적시 명예훼손 조항이 폐지된다면 적어도 민사상으로라도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배상받는 시스템이 현행 법제도에서는 보장이 안 되고 있다”며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인격권에 대한 보호가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실 적시 명예훼손 조항의 존치 필요성이 있다”고 역설했다.

강호석 변호사(법무법인 정향)는 “5대 4가 나온 걸 보니 헌법재판소도 표현의 자유와 개인의 명예 보호 사이의 균형추를 맞추는 걸 고심하는 것 같다”며 “사실 적시 명예훼손 조항이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측면이 없다고 부인하기는 어렵지만 피해자들이 받는 고통을 무시할 수 없다”며 유보적 입장을 보였다.

반면 일부 법조인들은 사실 적시 명예훼손 조항이 최대한 빨리 없어져야 한다고 봤다. 사실을 말했는데 형사 처벌을 받는 것은 과하다는 이유에서다. 신민영 변호사(법무법인 예현)는 “사실을 말했는데 처벌된다는 건 표현의 자유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지만 국민들 직관에도 어긋난다”며 “민사 문제로 해결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신 변호사는 “일부 위헌 입장을 낸 재판관이 4명이라는 점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며 “4명이나 해당 조항의 위헌성을 인정한 것이기에 입법부가 이 뜻을 무겁게 받아들여서 입법적으로 해결해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장희진 변호사(지음법률사무소) 역시 “사실 적시 명예훼손에 걸리는 건 보통 공익적인 목적에서 이야기한 경우”라며 “형사 처벌 대신 민사적으로 해결하면 될 문제로 본다”고 밝혔다.

이희진 기자 he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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