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옷벗기 포커 하자더라" 뉴욕 주지사 성추행 前참모가 폭로

이철민 선임기자 2021. 2. 25.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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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역시 앞에선 여성 인권 신장을 외치고, 뒤에선 여성 보좌관들을 성희롱·추행하는 인간이었나. 작년에 뉴욕주 장기요양시설에서 숨진 코로나 사망자의 수를 실제보다 절반으로 줄여 8500명으로 축소 은폐한 사실이 드러난 앤드류 쿠오모 뉴욕주지사(민주)에게 이번엔 “주지사가 수년간 여성 직원들을 성추행·희롱하는 일이 만연한 근무 환경을 만들었다”는 폭로가 나왔다. 쿠오모는 2005년 이혼한 이래 여러 여성과 염문을 뿌려왔다.

쿠오모 주지사의 과거 성추행 사실을 폭로한 여성은 2018년까지 뉴욕주 경제개발부 부(副)장관이었던 린지 보일런(36). 한국계 남편과 여섯 살짜리 딸을 둔 여성이다. 현재 뉴욕시 맨해튼구의회 의장직에 출마한 보일런은 애초 작년 12월 13일 트위터에 “맞는다. 뉴욕주지사 쿠오모가 수년간 날 성추행했고, 많은 사람이 봤다. 벌어질 일을 도저히 예상할 수 없었다. 일을 갖고 추궁할까(그거야 좋은 일), 아니면 내 외모를 갖고 괴롭힘 당할까. 아니면 한 대화에서 둘 다 일어날까. 수년간 계속됐다”고 썼다.

그러나 당시엔 묻히는 듯했다. 보일런도 기자들의 문의 전화에 전혀 응하지 않았고, 쿠오모나 측근은 한사코 부인했다. 쿠오모 주지사는 “나는 여성들이 당당하게 나서서 의견을 말하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고 믿으며, 또 이런 권리를 위해 싸워 온 사람”이라면서 “그러나 이것[보일런의 트윗]은 진실이 아니다”고 일축했다.

보일런은 24일 블로그 미디엄을 통해 자신이 겪은 성희롱과 추행 사실을 보다 구체적으로 적었다. 애초 작년 12월 트위터 폭로는 “수치스럽게 숨기고 공개할 생각이 없었던 한 조각의 진실이었는데, 바이든 정부에서 쿠오모가 법무장관 후보로 거론된다는 뉴스에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나온 것이었다. “앤드류 쿠오모가 주지사 권력을 남용해 나와 많은 여성을 성희롱한 사실을 전세계에 알리기로 했다”고 했다.

보일런은 “쿠오모는 정부 안에서 성추행과 윽박지름이 용인될 뿐 아니라, 예상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며 “그가 어떤 여성에게 부적절한 행동을 하면, 이는 그가 그 여성을 좋아한다는 뜻이었고, 상대 여성은 ‘옳은 일’을 해야 한다”고 썼다. 또 최근 뉴욕 시의원인 (한국계) 론 킴이 코로나 사망자 축소 집계 경위를 캤다가, 쿠오모 주지사로부터 “당신을 파멸시키겠다(I will destroy you)”라는 협박 전화를 받은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보일런도 론 킴이 받은 협박 전화도 자신의 추가 폭로에 용기를 줬다고 했다.

웰슬리대와 컬럼비아대 경영학 석사(MBA) 출신인 보일런은 2105년 뉴욕주 개발프로젝트에 부대표로 참여하면서 쿠오모 주정부에 합류했다. 그리고 주(州)경제개발청의 비서실장, 주 경제개발부 부(副)장관으로 고속 승진했다. 2016년 1월 쿠오모는 처음 만난 보일런에게 지나친 관심을 보였고, 보일런의 상관은 “주지사가 당신에게 흠뻑 빠졌다”고 했다. 한 친구는 승진 소식에 “쿠오모 주변에서 조심하라”고 했다. 보일런은 “실력으로 인정받고 싶은데, 권력을 가진 남자는 정작 그 여성의 가치를 몸와 외모에 두는 불편한 감정”을 겪어야 했다.

◇쿠오모 “옷벗기 포커 게임하자” 제안

2017년 뉴욕주 서부에서 돌아오는 비행기의 좁은 구석에서 쿠오모 주지사가 그에게 ‘옷벗기 포커’를 하자고 했다. 여성 홍보비서, 경찰관도 함께였다. 보일런은 “나도 그 생각을 했다”며 어색하게 응수하며 빠져 나왔지만, “내가 이런 문화에 얼마나 순치(馴致)돼 있는지 그 순간 깨달았다”고 했다.

쿠오모는 보일런(왼쪽)에게 "자신의 여자친구 리사 쉴즈의 더 예쁜 여동생 같다"며 회의에서 보일런을 "리사"라고 불렀다.

한번은 쿠오모 주지사실의 비서로부터 “주지사가 당신에게 리사 쉴즈의 사진을 찾아보라고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리사 쉴즈는 당시 쿠오모의 여자친구였다. 주지사는 “보일런이 쉴즈보다 예쁜 여동생 같다”며 회의 중에도 그를 “리사”라고 불렀다. 보일런은 그 무렵 친구들에게 “주지사가 자꾸 엉덩이, 팔, 다리를 만지려 한다”고 불평했고, 그의 엄마는 “쿠오모는 성차별적인 돼지니까, 함께 있는 자리를 피하라”고 문자했다.

◇클린턴의 섹스 스캔들에 나오는 ‘시가’ 박스를 자랑하고

쿠오모는 공공연하게 여직원들의 체중을 조롱하고, 보일런에게 남자가 여자를 사로잡는 것은 “돈과 권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번은 자신이 주택도시개발부 장관 시절 빌 클린턴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시가(cigar) 박스라며, 보일런에게 자랑하기도 했다. 클린턴과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의 섹스 스캔들에도 등장했던 시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갑자기 키스 당했지만, 저항 못해

그리고 2018년 뉴욕시 맨해튼에 있는 주지사 사무실에서 쿠오모는 보고를 마치고 나가는 보일런의 앞을 막고 갑자기 입술에 키스를 했다. 당시 보일런은 아무 일도 없었던 양 빨리 걸어나간다는 생각뿐이었다. 남들이 ‘자신에게 흠뻑 빠진 주지사 덕분에 고속 승진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 다는 우려가 키스 자체보다도 수치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보일런은 그 해 9월 단체 이메일로 사직(辭職) 사실을 밝혔다.

여성 동료에 대한 성희롱-성추행 사실이 폭로된 앤드류 쿠오모 뉴욕주지사. 24일 뉴욕시 퀸즈구의 백신접종 센터 개소식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보일런은 24일 “그토록 오래 희생양이 되고, 주지사의 그런 행동이 잘못이라는 걸 알면서도 무시하려 했던 것에 대해 스스로 용서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주지사는 나의 약한 부분, 일을 잘해 인정받고 싶은 욕망을 악용했고, 나는 이게 내가 살아남아야 할 세상이라고 믿었다”고 썼다.

보일런은 “주지사와 최측근들은 론 킴(시의원)에게 했던 것처럼 나를 음해하려고 들 것”이라며 “이게 쿠오모 정부가 일하는 방식이고, 나도 그 일부였다”고 했다. 그의 예상처럼, 24일 뉴욕 주정부 인사들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나도 봤다, 겪었다”며 보일런의 폭로를 인정하는 발언도 잇달았다. 보일런은 “어떤 여성도 직장에서 받은 협박, 성희롱, 모멸감을 감추도록 강요 받아서는 안 되며” “누구도 진실을 말했다고 또 희생돼선 안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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