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행정명령에 한국 반도체·배터리 업계 셈법 분주

피용익 2021. 2. 25.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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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수출 증가 기대 속 미·중 갈등 심화 우려
배터리, 전기차용 배터리 캐파 확대 기회 전망

[이데일리 피용익 김영수 배진솔 기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반도체와 전기차용 배터리 등에 대한 공급망 검토를 지시하면서 한국 업체들에 미칠 영향이 주목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반도체, 전기차용 배터리, 희토류, 의약품 등 4대 핵심 품목의 공급 사슬에 대해 100일간 검토를 진행하도록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 가운데 반도체와 전기차용 배터리는 삼성, SK, LG 등 국내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직간접적 영향이 불가피하다.

검토 결과에 따라 미국은 한국, 일본, 대만 등 동맹국과의 연대를 강화해 공급망에서의 중국 의존도를 낮출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미국 자체 기업을 육성하거나 미국에 동맹국 기업의 공장을 유치하는 식으로 결론이 내려질 가능성도 있다.

아직까지 구체적인 내용이 나오지 않은 가운데 국내 반도체·배터리 업계의 셈법도 복잡해졌다. 특히 이번 조치로 미·중 무역갈등이 심화될 경우 국내 기업들은 거대한 두 시장 사이에서 고심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업계 손익계산 분주…배터리 업계는 반색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에 따르면 지난 2019년 기준 미국이 전 세계 반도체 생산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2.5%에 그친다. 한국, 일본, 대만, 중국 등은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차량용 반도체 등 공급 부족 사태에 미국이 속수무책이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이 공급망 검토를 지시한 것은 이같은 배경에서다.

다만 국내 반도체 업계는 바이든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미칠 영향을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보고 있다. 아직까지 구체적인 정책 내용은 물론 큰 방향조차 정해진 게 없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가 동맹국과의 협력을 강화해 반도체 수입을 늘릴 경우 삼성전자(005930), SK하이닉스(000660) 등 국내 기업에 긍정적이다. 미국 내 반도체 생산량 증대로 가닥을 잡는다면 삼성전자가 검토 중인 미국 공장 증설이 더 유리한 조건으로 추진될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이 마이크론 등 자체 기업 육성을 위해 각종 지원을 강화할 가능성도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현재로선 유불리를 판단하기 어렵다”며 “100일간의 검토 후에 발표되는 내용을 보고 대응을 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터리 업계는 반색하는 분위기다. 당장 전기차 생산 확대에 따른 배터리 수주가 늘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향후 안정적인 공급망까지 확보할 수 있어서다. 업계는 미국의 배터리 생산능력(캐파)이 올해 말 기준 60GWh 미만 수준으로, 수요 대비 공급이 부족한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관계자는 “동맹국인 국내 기업에는 긍정적으로 작용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미국 생산량이 더욱 늘어날 전망인 만큼 사업 기회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며 “기존 미국 공장을 기반으로 향후 적극적으로 캐파 확대 전략 기조를 이어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미중 무역갈등 심화에 불활실성 고조 우려

바이든 대통령의 공급망 검토 지시는 중국의 기술적 부상을 막고 미국의 대중국 의존도를 낮추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이로 인해 미·중 무역갈등을 심화된다면 한국 기업들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신세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현재 반도체 수출액 가운데 중국 비중이 절반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서, SK하이닉스는 우시에서 각각 반도체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바이든 대통령이 지시한 공급망 검토는 기존 트럼프 행정부의 중국 압박과 같은 골자”라며 “결국 미·중 분쟁이 더 격화되면 한국, 대만, 일본 기업들은 미국과 중국 시장을 놓고 고민을 해야 하는 등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기업 관계자도 “미국의 정책에 우리 기업들이 부응한다면 중국이 가만히 있겠느냐”며 “미국과 중국 모두 중요한 시장인데, 이 둘 사이에 끼어서 고민이 깊어질 수 있다”고 했다.

배터리 업계에서도 바이든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마냥 장밋빛으로만 바라볼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관계자는 “미국이 중국산 배터리를 제외하고 한국산 배터리 등 비 중국산 배터리만을 쓰는 대신 중국 기업에도 공급하지 말 것을 요구할 수 있다”며 “이렇게 되면 국내 배터리 업계는 글로벌 수주 전략에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피용익 (yoniki@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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