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범 대신 기러기알 200개? 북극곰의 고민
해빙 사라져 물범 사냥 못하면 대체 '불가'..외뿔고래는 숨구멍 못 찾아
사라지는 얼음 때문에 북극곰과 외뿔고래가 생리적 한계 상황에 몰리고 있다. 북극 최상위 포식자인 이들은 북극 환경에 완벽하게 적응했지만 북극의 온난화가 지구 평균보다 2배나 빨리 진행하면서 오히려 생존 위기에 몰리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두 동물은 바다에 얼음이 줄면서 이동하는 데 전보다 3∼4배 더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다.
앤서니 파가노 미국 샌디에이고 동물원 보전연구소 박사 등은 25일 ‘실험생물학 저널’에 실린 리뷰 논문을 통해 두 대형 포식자가 겪는 ‘에너지 적자’ 상황을 최근의 연구결과를 종합해 진단했다. 논문의 주요 내용을 간추려 소개한다.
열흘 동안 462㎞ 헤엄치기도
북극곰은 가장 최근 진화한 해양 포유동물이다. 48만∼34만년 전 불곰의 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이 포식자는 큰 몸집과 흰 털 납작한 두개골 등 극지 환경에 맞도록 진화했다.
북극곰은 먹이를 고리무늬물범과 턱수염물범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한다. 해빙 위에 낳은 물범 새끼가 젖을 떼는 봄과 초여름이 사냥 피크철로 이때 연간 에너지 필요량의 3분의 2를 물범의 지방층을 섭취해 충당한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해빙이 일찍 녹고 늦게 얼면서 물범을 사냥할 수 있는 기간이 갈수록 줄고 있다. 북극 해빙의 면적은 9월을 기준으로 1979년 이래 10년에 13.3%꼴로 줄어들고 있다.
북극곰은 매복 사냥 전문가여서 얼음에 뚫린 숨구멍에서 물범을 노린다.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하는 전략이기도 하다. 그러나 얼음이 줄고 바다가 늘면서 이제는 물범 한 마리를 사냥하기 위해 평균 3.4일을 헤엄쳐야 한다.
애초 헤엄치기는 부차적인 이동방법이어서 북극곰의 수영은 걷는 것보다 4.3배 많은 에너지를 잡아먹는다. 그렇지만 물범을 사냥하려면 장거리 수영이 불가피하다.
연구자들은 “북극곰이 50㎞ 이상 장거리를 헤엄치는 일이 늘었고 그 과정에서 종종 익사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극단적인 예로 2012년 알래스카 북동쪽 보퍼트 해에서 성체 암컷 한 마리가 무려 열흘 동안 462㎞를 헤엄쳐 다른 해빙을 찾아가기도 했다. 연구자들은 “이 정도의 여행을 하면서 소비하는 칼로리는 고리무늬물범 4마리 이상을 먹어야 충당할 수 있다”고 밝혔다.
경험 없는 어린 물범을 잔뜩 잡아먹은 북극곰은 다시 얼음이 얼 때까지 장기간 단식한다. 임신한 암컷은 최장 8달 동안 단식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해빙이 줄어 물범을 충분히 사냥하지 못한 북극곰은 육지에서 지방층을 채워야 한다.
그러나 여러 연구자가 계산한 결과를 보면 육지 먹이로 물범을 대체하기는 만만치 않다. 성체 고리무늬물범 지방층의 소화 가능한 에너지를 얻으려면 순록이라면 1.5마리, 북극곤들매기는 37마리, 흰기러기는 74마리, 흰기러기 알은 216개, 검은시로미 열매는 300만 개를 먹어야 한다(▶흰 북극곰의 ‘샛노란 앞발’…굶주림에 오리알 깨먹고 연명).
연구자들은 “해빙 위에서 사냥할 시간이 줄어들고 단식 기간이 늘어나면 결국 번식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며 “지구 전체 북극곰의 개체수는 금세기 말까지 3분의 1∼3분의 2로 줄어들 것”이란 예측 모델링 결과를 소개했다.
얼음 밑 1500m 잠수
외뿔고래는 가장 극지에 잘 적응한 고래이다. 해빙 사이로 바다가 3% 이하로 열린 곳에 서식한다. 외뿔고래는 길이 4∼5m의 중형이지만 1500m까지 잠수한다. 근육에 다량의 산소를 저장한 뒤 느리고 오랜 시간 동안 잠수해 바다 밑바닥에서 극지 넙치와 극지 대구 등을 사냥한다.
이 고래는 약 20분 동안 긴 잠수를 마치고 숨을 쉬러 나왔을 때 해빙 사이의 숨구멍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날씨가 변덕스럽게 바뀌면서 숨구멍이 옮겨가거나 아예 사라지기도 한다.
또 해빙이 사라지면서 범고래가 새로운 포식자로 등장하고 있다. 북극 항로가 열리면서 선박의 소음, 유전 개발 등 인위적 교란도 늘어난다. 연구자들은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는 느린 행동을 진화한 외뿔고래가 새로운 위협과 교란에 회피 행동이나 잠수 연장으로 대응하면서 생존을 위협받고 있다”고 밝혔다.
북극곰과 외뿔고래는 기후변화의 영향을 가장 민감하게 받는 지표종이자 최상위 포식자로서 전체 북극 생태계에서 중요한 기능을 한다. 연구자들은 “두 최상위 포식자의 감소는 전체 북극 해양 생태계의 급격한 변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논문에 적었다.
인용 논문: Journal of Experimental Biology, DOI: 10.1242/jeb.228049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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