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열심히' 일하는 국회가 두렵다

기자 2021. 2. 25.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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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조 시장경제와민주주의연구소 이사장

법안 처리 量에선 신기록 수준

20代 2만 건 발의 9138건 처리

4년간 美 1000건, 日은 500건

21대엔 ‘닥치고 입법’ 더 폭주

가덕도法에 윤석열 출마방지법

헌법 위배에 타법 충돌 수두룩

세계에서 어느 나라 의회가 가장 열심히 일할까? 제출된 법안과 처리된 법안의 수만 놓고 보면 단연 대한민국 국회가 아닐까 싶다. 직전 제20대 국회의 경우, 2만4073건의 법안이 제출됐고 그중 9138건이 처리됐다. 회기에 따라 변동이 있지만, 미국은 4년 동안 대략 1000건, 일본은 500건의 법안이 처리되는 데 그친다.

하지만 양(量)이 질(質)을 담보하는 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많은 양 때문에 졸속 처리, 부실 입법이 많았다. 지난해 5월 30일 임기를 시작한 21대 국회는 더 열심이다. 지난 1월 말까지 발의된 의원 법안은 7182건에 이른다. 20대 국회에서 같은 기간에 발의된 법안(4755건)의 1.5배 규모다. 이런 속도라면 임기 말에는 4만 건에 이르는 기록을 세울 것이란 추정도 가능하다. 입법이 더욱 부실해질 공산이 크다.

더욱더 우려스러운 것은, 21대 국회가 보이는 입법 ‘폭주’ 경향이다. 우선, 공론과 여야 간 숙의(熟議)의 산물이어야 할 법 제정·개정 과정이 많은 경우 여당의 일방적인 밀어붙이기로 진행되고 있다. 시한을 정해 놓고 마치 군사 작전하듯이 처리한다. 깊이 있는 논의 과정도 없다. ‘연내 통과’가 목표였던 기업규제 3법은 이미 지난해 12월 9일 통과시켰다. ‘1월 내 목표’였던 중대재해처벌법은 재계의 읍소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8일 기어코 속전속결로 처리했다. 언론관계법 개정과 협력이익공유제는 ‘2월 임시국회 내 처리’가 목표다. 이 과정에서 실질적인 의미에서 규정된 공론과 협의의 절차를 밟았는지는 의문이다.

헌법이나 다른 법률과 충돌할 가능성이 큰 입법을 서슴지 않는 것도 문제다. 대표적인 예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된 이른바 ‘윤석열 출마 방지법’이다. 공직자가 출마하려면 선거 90일 전에 그만둬야 하는데, 유독 현직 검사·판사만은 1년 전 사퇴하도록 한 내용이다. 사실상 윤 검찰총장 1인을 겨냥한 법이다. 직업 선택의 자유와 공무담임권이라는 헌법상 국민 기본권을 침해하는 내용이라 법원행정처도 반대했다. 법률이 원칙적으로 불특정한 다수를 대상으로 불특정 사항을 규정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에 비춰 대한민국을 포함, 어느 입헌국가에서도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법이다. 입법을 빙자한 폭거(暴擧)다.

민주당은 또한 검찰에 남은 6대 범죄 수사권을 박탈해 법무부 산하의 ‘중대범죄수사청’으로 넘기고, 검찰에는 기소와 재판 관리만 맡기는 법안도 추진하고 있다. 헌법상 수사·인신구속 권한을 가진 검사 2000여 명을 일시에 허깨비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검찰 말살을 주도하는 의원은 불법 혐의로 검찰이 수사 중인 인사들이다.

여당인 민주당은 부산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을 이달 중에 처리하겠다고 한다. 국민 세금이 10조 원 또는 그 이상 들어갈 국가 기간시설로, 과거에 이미 경제성이 의심스럽다는 판단이 내려진 바 있는데도 아무런 조사·검토도 없이 국회 입법으로 강행하고 있다. 여당 소속 부산시장의 성추행 범죄로 치러지는 4·7 보궐선거를 이렇게 해서라도 이기겠다는 계산으로 보인다.

민주당의 입법 폭주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형사사법 체계를 뿌리째 흔드는 공수처법을, 공수처장 임명과 관련해 야당에 사실상의 거부권을 준다는 명분으로 밀어붙이고는 곧바로 법을 개정해 입법 때의 약속을 저버렸다. 북한 김여정이 ‘법이라도 만들라’고 하자 국내외 비판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대북전단금지법을 만들었다. 5·18에 대해 정부 발표와 다른 주장을 하면 처벌하는 법도 공포됐다. 이른바 ‘가짜뉴스’ 보도 언론에 최대 3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물리는 법안도 추진 중이다. 비판적인 언론에 재갈을 물리겠다는 것이다.

국민의 대의기관으로서 국회는 입법권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무엇이든, 어떻게든 닥치고 입법해도 되는 건 아니다. 입법 과정이 절차적 정당성을 지녀야 하고, 그 내용도 헌법적 원칙에 맞고 다른 법률과 충돌하지 않아야 한다. 국회가 민주적 절차를 무시한 채 경제활동을 제약하는 규제 법률, 정치적인 계산에 따른 처분적 법률, 비판 세력을 무력화하는 입법을 쏟아내는 한 국민은 일하는 국회를 걱정할 수밖에 없다. 너무 열심히 일하는 국회가 두려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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