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 붙는 '홍콩의 중국화'.."충성서약 안하면 5년간 공직출마 금지"
홍콩 정부가 23일 입법회(의회) 의원과 구의원 자격, 충성 서약 등에 대한 조례 초안을 발표했다.
홍콩 공직자는 현재 지난해 6월 30일 시행된 홍콩보안법에 따라 취임할 때 홍콩의 ‘미니 헌법’ 격인 홍콩기본법 등을 준수하겠다는 충성 서약을 하는데, 초안에 따르면 이를 거부할 경우 5년간 공직 출마가 금지된다.
충성 서약에 반(反)하는 ‘비(非)애국적 행위’로는 홍콩 독립을 주장하거나 홍콩보안법을 위반하는 행위 뿐 아니라 ‘홍콩 전체 이익에 해를 끼치는 행위’ ‘홍콩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법안에 대한 무차별적 반대’ 등도 포함시켰다. 충성 서약 의무 대상도 기존 행정장관, 입법회 의원, 판사, 행정부 고위 관료 등에서 구의원으로까지 확대했다.
에릭 창 홍콩 정치체제·내륙사무장관은 "공산당이 다스리는 체제를 존중하지 않으면서 국가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다"며 개정안의 취지를 설명했다. 그는 "법안이 소급적용되지는 않겠지만 일부 과거 행동들이 (자격 심사시) 고려 대상이 될 수 있음은 부인하지 않겠다"고도 덧붙였다.
홍콩 야권인 범민주진영은 거세게 반발했다. 청탯훙 구의원은 "개정안은 모든 범민주진영을 의회에서 몰아내겠다는 것"이라며 "정부가 게임의 규칙을 완전히 바꾸려는 것"이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홍콩 일간지 명보는 "일부 의원들은 충성 서약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홍콩 지식층도 우려를 표명했다. 정부가 애국심을 어떻게 정의할 것이며, 이를 어떤 잣대로 평가할 것인지 모호하다는 지적이다. 홍콩대 장다밍 교수는 자격 박탈 요건이 사람에 따라 주관적으로 적용될 있다며 "개정안은 법적 언어가 아니라 정치적 언어다. 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에 자격을 즉시 정지할 수 있다는 것은 재판 전에 판결을 내리는 것으로 형사 재판이 아닌 까닭에 무죄 추정의 원칙이 적용될 수도 없다"고 짚었다.
캐리 람 행정장관의 자문기구 ‘행정회의’ 소속 로니 통 위원은 "애국자는 정치적 감각으로 법적으로 정의될 수 있다"며 "충성 서약을 성공적으로 이행하는 자가 애국자이며 그렇지 않은 자는 애국자가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행정장관이나 행정장관이 임명한 관리가 충성 서약을 주재하며, 서약의 진실성을 판단할 수 있다.
오는 9월 홍콩 입법회 선거를 앞두고 홍콩 정치권 내 반중 인사의 씨를 말리려는 중국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총 70석인 홍콩 입법회는 이미 지난해 야당 의원들의 의원직 박탈과 자진 사퇴로 친(親)중 성향의 의원들로만 채워진 상태다. 홍콩 당국은 지난달 홍콩보안법 위반 혐의로 야권 정치인 등 53명을 체포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중국 정부가 다음달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 홍콩 행정장관 선거를 결정짓는 구의회 선거인단을 아예 없애거나 대폭 축소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원래대로라면 선거인단 117석은 승자독식 방식에 따라 2019년 구의회 선거에서 승리한 범민주진영에 넘어가게 된다. 그러나 이는 ‘애국자가 홍콩을 다스린다(愛國者治港)’는 중국의 입장과 반대되는 만큼 중국 정부가 향후 어떤 형태로든 개입할 것이란 분석이다.
중국 정부의 홍콩 책임자인 샤바오룽 중국 국무원 홍콩·마카오사무판공실 주임은 22일 "(홍콩) 선거 제도의 정비를 서둘러야 한다" "선거 제도 개선은 반드시 중앙 주도하에 진행돼야 한다"며 체제 개혁을 암시하기도 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4일 소식통을 인용해 "아직은 의견을 듣는 단계지만, 중국 정부는 홍콩 선거제 전면 손질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보도했다.
유럽연합(EU)은 중국이 홍콩의 선거제나 사법 독립을 훼손할 경우, 추가 대응에 나서겠다고 경고했다. EU 대외정책을 총괄하는 호세프 보렐 외교·안보 정책 고위대표는 22일 기자회견에서 "홍콩의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며 "지난해 홍콩보안법 시행에 따른 EU의 대응책에 두 가지 단계를 추가한다"고 밝혔다. EU는 앞서 홍콩에 대한 수출통제, 범민주 활동가의 재판 참관, 신규 협상 중단 등을 포함한 홍콩보안법 대응책을 발표한 바 있다.
보렐 대표는 첫 번째 단계가 "적절한 기관이나 정당과의 협력 등 홍콩 시민사회에 대한 지원 확대를 위한 조치를 포함한다"고 했다. 두 번째 단계는 구체적인 내용 설명 없이 "홍콩의 사법 독립이 훼손되거나 선거제도가 공격적으로 개혁되는 등 상황이 더 악화할 경우에 취해질 것"이라고만 했다.
중국은 국제사회의 압박에 개의치 않을 가능성이 높다. 중국은 지난해 홍콩보안법 제정 당시에도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의 반대를 무시하고 양회에서 법안을 통과시켰다. 총칙 등 모두 6개장, 66개조, 9800자로 이뤄진 홍콩보안법은 홍콩의 국가안보를 해치는 이른바 ‘4대 범죄’ 행위를 △분리독립 △체제전복 △테러행위 △외세결탁 등으로 규정한다. 이들 행위를 ‘폭력 또는 기타의 방법’으로 ‘가담, 모의 또는 실행’을 주도할 경우 최저 징역 10년에서 종신형까지 처벌받을 수 있으며, 단순 가담자도 최고 징역 3년형을 구형받을 수 있다.
중국은 지난해 홍콩보안법 집행기관 격인 국가안보국(NSO)도 신설했다. NSO는 홍콩의 국가안보 관련 정보를 수집·분석하며, 관련 사건들을 직접 처리한다. 홍콩 주재 외국 정부 기관, 국제기구, 외국계 비정부기구(NGO)와 언론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는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 하지만 홍콩법의 적용은 받지 않고, 홍콩 정부는 이들의 활동에 협조하고 업무를 방해해서도 안 된다.
중국은 22일 홍콩 경찰학교에 중국식 제식훈련도 도입했다.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이와 관련, SCMP는 내년 홍콩 반환 25주년 기념식에서 중국군이 전수한 제식훈련을 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 매체들은 그간 홍콩 경찰이 영국식 제식훈련을 유지하고 있다며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24일에도 홍콩 경찰의 영국식 제식훈련을 "식민지 유산"이라고 부르며 "점진적으로 바뀔 것"이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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