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어떤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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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전 겨울, 논산에서 신병 훈련을 마치고 가족과 면회하던 날이었다. 배달 착오로 당일 아침 안내 편지를 받은 어머니가 부랴부랴 출발했지만 도착했을 땐 면회가 끝난 뒤였다. 막사로 돌아가기 위해 연병장에 서 있는 아들을 발견한 어머니가 달려와 다급하게 외쳤다. “얘, 장갑 벗어봐!” 왜 그러시냐고 여쭤봤다. 이렇게 대답하셨다. “손만 보면 다 안다. 네가 어떻게 지내는지.”
▶'곤충기'를 쓴 프랑스 곤충학자 파브르의 손은 실험으로 늘 더러웠다. 사람들은 그 손을 ‘직공의 손’이라며 놀렸다. 그가 아비뇽에서 중학교 교사로 근무할 때 정부 고위 관리가 찾아와 악수를 청했다. 실험 중이라 손이 더러워졌다며 사양하자 관리가 그의 손을 잡으면서 사람들 앞에서 말했다. “이 손은 일하는 손입니다. 여러분이 사는 마을을 발전시킬 손입니다. 저는 이런 손이 더 많아지길 바랍니다. ”
▶사람 손에는 뼈가 27개 있다. 신체 부위에서 가장 많다. 발에는 26개가 있다. 손은 구부리기 펴기 모으기 벌리기 맞서기 등 5개 운동을 한다. 이 다섯 운동의 무수한 조합이 문화를 일구고 문명을 발달시켰다. 1963년 영국 인류학자 루이스 리키가 탄자니아 올두바이 계곡에서 발견한 원시인류는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 손을 가졌다.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이란 뜻의 ‘호모 하빌리스’는 인간 됨의 조건이 손에 있다는 의미다.
▶24일 자 조선일보 1면에 참혹하게 망가진 어떤 사람의 손 사진이 실렸다. 지난해 3월 대구를 덮친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던 대구의료원 이학도 간호사의 손이다. 대한간호협회가 코로나와 맞서 싸우던 간호사들의 사연을 모아 낸 수기 모음집 ‘코로나 영웅, 대한민국을 간호하다’에 수록됐다. 이 간호사 손은 감염을 막기 위해 쉴 새 없이 소독하고 겹겹이 낀 보호장갑 안에서 물에 불은 듯 쪼글쪼글해졌고 피부 여기저기가 헐고 벗겨졌다. 인터넷 댓글 창에 고마움이 쏟아졌다. “고맙고 미안하고 눈물 난다” “고생할 거라 생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손이다!” 이 간호사의 손을 보면 숭고함까지 느끼게 된다.
▶의사들 손도 그 못지않게 헌신했다. “피, 땀, 눈물로 시민을 구하자”며 인술을 호소한 당시 대구시의사회 편지는 수많은 이의 심금을 울렸다. 방호복 속에서 악전고투하다 실신하기도 했다. 이번 주 코로나19 백신 투여가 시작된다. 집단면역이 형성될 때까지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기댈 수밖에 없다. 이 기나긴 싸움의 끝도 결국 그들의 ‘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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