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포커스] 부총리 바꿔도 또 ‘바보 형’ 만들면 소용없다

이진석 경제부장 2021. 2. 25.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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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농구 4년 내리 꼴찌팀, 감독 바뀐 후 9년간 8번 우승
배경엔 구단주 전폭지원 있어… 대통령 인식 안 바뀌면 도루묵

“거울을 보면서 늘 물어봐요. 너 최선을 다하고 있냐?”

21일 오후 부산 금정구 스포원파크 BNK 센터에서 열린 '2020-2021 KB국민은행 Liiv m 여자프로농구' BNK 썸와 우리은행 위비 경기, 우승을 차지한 우리은행 선수들, 트로피를 든 박혜진, 위성우 감독이 기념촬영 하고 있다. 이날 경기에서 우리은행 선수들은 WKBL 역대 최다인 13번째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다./뉴시스

8년 전인 2013년 3월 첫 우승 직후 서울 장위동 체육관에서 만난 위성우 우리은행 여자 농구팀 감독은 이런 말을 했다. “선수들에게 최선을 다하라고 요구하려면 나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4년 내리 최하위였던 팀을 이끌고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감독이 바뀌었을 뿐 선수 명단은 꼴찌일 때와 달라진 것이 없었다. 외국인 용병은 마흔 살이었다. 다른 팀에서 나이가 많다고 외면했던 선수였다. 그는 선수 시절 ‘식스맨’이었다. 다섯 명이 하는 농구에서 여섯 번째 선수는 교체 선수라는 뜻이다. 평균 출전 시간 13분 11초, 평균 득점 3.44점. 그런 그가 감독이 된 첫해 우승을 시작으로 올해까지 8년간 8번 우승했다. 며칠 전 전화에서도 여전했다. “대충 하면 안 되니까 최선을 다해야죠.” 9번째 우승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그의 팀은 리더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극적인 사례다. 그에게 강연을 요청하는 기업이 많았다고 한다. “말주변이 없어서 정중히 사양한다”고 했다. 조직을 이끄는 힘은 어떤 것인지, 리더가 달라지면 어떤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지 듣고 싶었던 모양이다.

외환 위기, 금융 위기 이후 최악이라는 경제 지표들이 쏟아지지만 그보다 더 바닥인 것은 경제 사령탑이라는 홍남기 부총리에 대한 평가다. 한 경제 부처의 고위 간부는 “부총리의 연설이나 회의 발언을 읽어보지 않는다”고 했다. “이전 부총리들의 발언은 밑줄을 긋기도 하고, 행간을 읽으려고 노력도 했는데 요샌 그럴 필요를 느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지난 시절 경제 부처들을 설명하는 영어 단어가 하나씩 있었다. 경제기획원은 ‘아너러블(honorable·명예로운)’이었고, 재무부는 ‘파워풀(powerful·힘 있는)’이었다. 기획재정부는 힘도 없고, 명예롭지도 않아 보인다. 한 경제 관료는 “기획재정부에는 ‘호러블(horrible·끔찍한)’이 어울릴 것 같다”고 했다.

4월에 서울과 부산 시장을 새로 뽑고 나면 경제팀 개각이 있을 것이라고 한다. 경제부총리가 교체된다는 말이 많다. 만년 꼴찌에서 우승팀에 오른 우리은행 여자농구팀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영상으로 열린 제30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뉴시스

어려운 일일 것 같다. 내년 3월이면 대선이고, 두 달 뒤 새 정부가 들어선다. 올해 4월 개각에서 부총리를 교체한다고 해도 국회 청문회 일정 등을 감안하면 5월은 넘어야 취임하게 된다. 일할 수 있는 시간이 1년도 안 된다. 게다가 대선을 앞두고 대대적인 세금 퍼주기에 열을 올릴 여당에 밀리지 않을 도리가 없을 것이다. 혹시라도 “이러면 안 된다”고 막아서봐야 ‘동네 바보형 2호’가 되는 처지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경제 관료들은 “홍 부총리는 미적거리기라도 했는데 하마평에 오른 후보들 중 일부는 공인된 문재인 정부 사람들이라 아예 그런 일도 없을 것 같다”고 한다.

더 어려울 것 같은 일이 있다. “우리은행 농구팀은 감독만 바뀌었을 뿐인데 꼴찌팀이 우승팀으로 변신했다”고들 하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위성우 감독은 “구단주인 우리은행장이 ‘믿고 맡기겠다. 우승을 하는 데 필요한 건 뭐든지 도와주겠다’고 했다. 배짱이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임 경제부총리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에서 승리하고, 일자리가 늘어나게 만들어달라. 그렇게 하는 데 필요한 건 뭐든지 도와주겠다.” 답을 이미 알고 있는 국민이 많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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