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재훈의 실리콘밸리 인사이더] '기술 발전 촉진' vs '고위험 투자'.. 양날의 칼 SPAC

음재훈 실리콘밸리 벤처투자가 2021. 2. 25.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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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만 기술 벤처 248곳 SPAC 상장.. 전년 대비 4배로 늘어
우량 벤처 빠른 상장 돕지만 부실 기업 투기적 투자 위험도 커
수소차 '니콜라' 사태, 10년간 58% 파산에도 투자 순기능 '주목'

‘기업 인수 목적 회사’를 뜻하는 SPAC(Special Purpose Acquisition Company)는 요즘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이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주제다. 현재 10억달러 이상 기업 가치를 지닌 ‘유니콘 기업' 대부분이 SPAC에서 인수 제의를 받아 고려 중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SPAC는 기업 인수를 목적으로 설립된, 제품도 서비스도 없는 빈 껍질 같은 회사다. 인수 대상이 확보되기 전에 일단 상장부터 한다. 이후 기업 인수를 통해 기존의 기업공개(IPO)보다 더 빠르고, 좋은 조건으로 우회 상장시킨다.

1990년대부터 존재해온 SPAC는 최근 들어 폭발적인 성장을 하고 있다. 지난해 SPAC 상장사 수는 248개로 2019년 대비 4배 이상으로 늘었다. 올해도 기록적인 성장이 예상된다.

/일러스트=이철원

SPAC 붐의 가장 큰 이유는 증시 상장의 문턱이 많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현재 거액의 벤처 투자금을 유치한 유니콘 업체 중에는 상장을 위한 매출, 수익 조건을 맞추지 못하는 곳이 많다. 이런 업체의 투자자들은 상장을 통한 ‘자금 회수(exit)’를 마냥 기다리기보다는 SPAC에 인수돼 우회 상장하는 것을 원한다. 이를 통해 회사의 운영 자금도 확보하고, 투자자도 투자금 회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시장이 늦게 열리거나, 개발 기간이 오래 걸려 자본이 많이 필요한 미래 신기술을 개발하는 업체엔 SPAC가 더할 나위 없이 반갑다. 미국 벤처캐피털 펀드의 만기는 10년이다. 투자 회수까지 그 이상의 시간이 필요한 미래 신기술은 투자하기가 쉽지 않다. 자율 주행, 전기차에 들어가는 신기술 부품의 경우 수년간 개발 끝에 고객에게 채택되더라도 양산(量産)을 거쳐 대규모의 매출이 발생할 때까지는 10년도 빠듯하다. 투자 회수까지 10년 이상 걸릴 투자를 선뜻 할 수 있는 투자자는 드물다. 그런데 SPAC를 통해 펀드 만기 전에 투자 회수가 가능하다면, 이런 산업 분야의 투자 역시 활성화할 것이다. 실제로 자율 주행 자동차용 라이다 센서 업체 벨로다인(Velodyne), 전기차용 고체 리튬 이온 배터리 업체 퀀텀스페이스(Quantumspace), 고급 전기차 업체 피스커(Fisker)는 이미 SPAC를 통해 우회 상장했다.

물론 리스크도 있다. SPAC를 통해 우회 상장하는 업체 가운데 부실한 곳도 있기 때문이다. 상장에 필요한 매출 규모나 수익성을 달성할 가능성이 없는 업체가 운영 자금을 확보하려 SPAC를 활용하는 경우다. 이런 업체가 운영 자금마저 소진하고 나면 결국 파산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초기 투자자들은 높은 기업 가치에 투자금을 회수하고, 뒤늦게 주식을 산 주주들은 큰 손해를 볼 수 있다. 실제로 2003년부터 2013년까지, 10년간 SPAC를 통해 우회 상장한 업체 중 58%가 파산했다고 한다. 이는 일반적인 상장 업체보다 더 높은 비율이다.

작년 3월 전기·수소트럭 업체인 니콜라(Nikola)는 제품도, 매출도 없이 SPAC를 통해 우회 상장했다. ‘넥스트(next) 테슬라’를 찾고 있던 투자자들 덕분에 시가총액이 290억달러까지 수직 상승하며 한때 포드(Ford)사의 시가 총액을 앞서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사업 계획의 현실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면서 결국 대표가 사임했다. 미국 법무부(DOJ)와 증권거래위원회(SEC)에도 기소돼 사기 여부를 조사 중이다. 당연히 주가도 폭락했다.

SPAC의 수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운영진의 경험과 능력이 부족한 SPAC도 상장되고 있다. 앞으로 주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를 낼 업체도 더욱 많아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PAC를 통한 우회 상장 활성화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기존의 업계 틀을 깨고, 미래를 주도할 큰 꿈에 도전하는 창업자가 투자받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꿀 신기술 업체의 성공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렇지만 SPAC 덕분에 그들의 도전이 투자받을 기회가 많아지고 그중 소수라도 성공한다면, 공상과학(SF) 소설이나 영화 같은 현실이 올 수 있을 것이다. 벤처 투자자 입장에서도 SPAC를 통해 자금 회수가 가능해지면서 큰 꿈에 도전하는 더 많은 창업자를 지원할 수 있게 됐다. 미래가 더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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