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의 안과 밖] 아이들을 위한 안전기지

위지영 서울 신남성초 교사 2021. 2. 25.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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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예나(가명) 어머니는 무심했다. 예민하고 강박적 행동을 하는 예나가 걱정되어 연락하면 어머니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때마다 자신이 예나를 잘 알고 있으며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 강조했다. 6학년이 되자 예나의 체중이 심각하게 줄었다. 친구 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아 섭식장애를 앓게 된 것이다. 예나의 섭식장애 기저에는 애착(attachment) 문제가 있었다.

위지영 서울 신남성초 교사

존 볼비는 주 양육자와 아이가 맺는 애착이 정서 발달에 매우 중요하다고 보았다. 안정형 애착 관계를 맺는 양육자는 아이의 요구를 즉시 알아차리고 민감한 감수성으로 대응한다. 아이의 욕구를 수용하거나 자제시키며 적절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부모와 아이가 안정된 애착 관계를 형성하면 아이에게는 안전기지(secure base)가 생긴다. 낯선 놀이에 도전하다 위험을 느끼면 부모의 품으로 돌아와 안정을 찾고 성장한다. 애착 관계가 안정적이면 몸에서 옥시토신 분비가 활성화되어 불안과 스트레스 대처 능력이 높아진다.

안정형 아이는 학교에서도 친구 관계가 원만하고 남의 잘못을 잘 용서한다. 타인과 친밀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적응을 잘한다. 새로운 학습에 흥미를 느끼며 자신감 있게 탐색한다. 갈등이 생길 때 상대를 탓하지 않고 자신의 원하는 바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의사소통 능력도 높다. 불안정형 아이는 사소한 일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감정 표현을 솔직하게 못한다. 학교생활에 부정적으로 적응하고 폭력, 반항 등 반사회적 행동을 보이며 학폭 가해자가 되는 일도 많다.

어린 시절 형성된 애착은 평생 유지되어 인생을 좌우한다. 애착 문제를 가진 성인은 직장생활이나 배우자와의 관계에서도 어려움을 겪는다. 안타까운 일은 불안정형 아이가 부모가 되면 자녀와 불안정형 애착 관계를 맺는 세대 전이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불행의 대물림을 끊고 안정형 애착을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부모나 가족이 안전기지가 안 된다면 아이의 삶에 의미 있는 누군가가 제3의 안전기지가 되어야 한다. 교사는 애착 관계에 실패한 학생을 발견했을 때 협력적 상호작용과 유대감을 형성하는 긍정적인 학교 경험으로 아이를 도울 수 있다.

담임 선생님은 예나의 호소를 있는 그대로 들어주는 것부터 시작했다. 예나와 따로 만나 힘든 감정의 맥락과 이유를 돌아보고 안 좋은 기분에 빠질 때 음식을 거부하는 것 외에 다른 구체적인 방법을 함께 찾았다. 실제 일어난 사건과 그에 대한 감정을 구별하고 자신의 행동을 점검하는 일을 반복했다. 온전한 이해와 공감의 시간이 쌓여가자 예나는 안정되었고 어머니와 병원 상담을 꾸준히 다니며 건강을 회복했다.

아이들을 잘 알고 책임 있게 지켜봐 주는 사회적 안전망은 학교 바깥에도 필요하다.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에서 덴마크는 적게는 3년 길게는 9년 동안 담임을 맡는 교사, 한동네에서 은퇴할 때까지 약 25년간 마을 주민의 건강을 맡는 주치의, 동네 아저씨처럼 편안하게 무엇이든 상담할 수 있는 종교지도자가 마을에 함께 살고 있어 아이들이 안도감을 느낀다고 했다. 위로가 필요할 때 함께 성찰의 시간을 나눌 수 있는 안전기지가 있다면 아이들은 역경에 부딪혀도 살아갈 의미를 찾을 것이다.

위지영 서울 신남성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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