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현실] 지혜로운 어려움

이정철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 2021. 2. 25.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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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조선은 개혁의 나라였다. 조선이 성공시킨 개혁들 중에 대동법이 있다. 예나 지금이나 국가가 가장 하기 어려운 게 세금제도 개혁이다. 그 내용이 파격적이다. 간단히 말하면 이렇다. 한 마을에 10가구가 산다고 치자. 대동법 이전에는 빈부와 무관하게 가구별로 1년에 100만원씩 냈다. 실제 현실은 그보다 더 안 좋았다. 수령과 가깝거나 힘 있는 가구는 세금을 안 내거나 100만원보다 적게 냈다. 대동법은 가구가 아닌 땅에 세금을 부과했다. 땅 없는 가구는 세금을 안 내고, 땅 많은 가구는 그 규모에 비례해서 내게 했다. 과세 대상 자체가 달라졌던 것이다.

이정철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

인조반정(1623) 후 새 정권은 쿠데타 명분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개혁이 필요했다. 그래서 추진한 것이 대동법이다. 이 당시 입법의 중심인물이 조익이었다. 개혁의 전체 청사진을 그린 사람이다. 대동법 입법이 추진되자마자 즉각 수많은 반대 목소리가 쏟아졌다. 그러자 그는 장문의 상소를 올려서 반대 주장들을 몇 가지로 정리했다. 크게 말도 안 되는 주장과 말이 되는 주장으로 나누었다. 앞쪽이 훨씬 많았다.

말도 안 되는 주장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첫째, 부자들은 땅이 많아서 내야 할 쌀도 많은데 운반할 일손이 적어서 내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조익은 땅이 많은 사람이 쌀을 운반할 노동력이 없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반박했다. 그 많은 땅에 소작으로 농사짓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세금 낼 쌀을 한곳에 쌓아놓으면 화재 위험이 있다는 보관상의 문제가 제기되었다. 조익은 쌀 창고에 화재가 발생한 적은 없고, 그것은 공연한 걱정이라고 반박했다. 세 번째 반론으로는, 기존의 관행은 오래된 것인데 그것을 갑자기 꺾으려는 것은 무리한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관행은 그 자체로 정당하다는 말이다. 조익은 이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야말로 국가의 정당한 명령을 거부하고 백성들의 재산을 빼앗는 자들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원칙론자였다.

대동법에 대한 반론에는 말이 되는 것도 있었다. 조익도 인정한 반론은 호남에서 서울까지 쌀을 배로 운반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선박의 해상 침몰 가능성이다. 이 지적에 대해 조익은 스스로 이 문제를 깊이 분석했다. 그는 배가 가라앉는 경우를 3가지로 정리했다. 그리고 각각의 경우에 대응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들을 제시했다. 대동법의 즉각적 실시에 반대하는 좀 더 근거 있는 주장은, 대동법 실시 전에 가구별 소유 토지를 다시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닌 확실히 이유가 있는 반대였다. 이 주장은 후에 받아들여졌다.

인조반정 직후 추진되었던 대동법은 실패했다. 입법에 대한 반대가 많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추진 방법이 현명하지 않았다. 실패의 직접적 이유는 처음에 생각했던 입법 내용의 절반만 실시하고 차츰 확대하자는 안이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현실론이자 절차론이다. 반만 실시한다고 해서 당시에 ‘반대동’이라고 불렸다. 그런데 반만 실시된 개혁은 그 효과가 즉각 소멸되었고, 이것은 반개혁 세력이 개혁무용론을 주장하는 강력한 근거가 되었다.

개혁이 어려운 이유는 단지 개혁 동력을 만들기 어려워서만은 아니다. 말이 안 되는 반대가 많지만 말이 되는 반대도 있기 때문이다. 둘을 정밀하게 구분하기가 쉽지 않고, 말이 되는 반론을 개혁의 새 동력으로 삼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개혁은 원칙적이면서도 유연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 이상을 추구하되 철저히 현실적이어야 한다. 현재 중대재해처벌법, 공수처법 등 권력기관 개혁 입법, 코로나19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 보상 입법 등 여러 종류의 개혁이 추진되고 있다. 우리 삶은 사회제도 위에서 진행된다. 민주주의는 결국 좋은 제도로 완성될 수밖에 없다. 지혜로운 개혁만 성공했다.

이정철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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